寒가위 경제학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시작된 불황. 4~5년이면 ‘불황 터널’을 거뜬히 돌파할 줄 알았지만 이게 웬걸. 7년이 훌쩍 지났는데, 불황의 그림자는 여전히 걷히지 않았다. 지갑이 얇아질 대로 얇아진 서민은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 실질임금은 요지부동인데, 물가는 껑충 뛰어서다. 오죽하면 ‘명절이 두렵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올 추석은 어떨까. ‘한가위 경제학’을 살펴봤다.
2008년 리먼 사태에서 시작된 ‘침체’. 벌써 7년째다. 그동은 우리는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1929년 대공항을 방불케 하는 불황을 경험했고, 지금도 그렇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들어선 내수를 꽁꽁 얼리는 변수가 수없이 터졌다. 메르스 사태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메르스 직격탄’을 맞은 올 2분기 가계 최종소비지출은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난해 2분기와 같은 -0.3%(전기 대비)로 곤두박질쳤다.
가계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최근 선진 12개국과 신흥 14개국의 가계부채 현황을 파악한 결과, 한국의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84%로 조사 대상 신흥국 평균(30%)을 훨씬 웃돌았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는 거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는 2007년보다 12%포인트 높아졌다.
창업을 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자영업계가 포화상태에 다다른지 오래라서다. 국내 자영업자 수는 지난 8월 한달간 3만5000명 감소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18만3000명이나 적다. 최근 5년래 최대 감소폭이다. 섣불리 자영업계에 뛰어들었다간 간신히 모은 종잣돈까지 모두 날릴 판이다. 민족 대명절 추석이 다가왔음에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실감 나지 않는 이유다. 되레 추석이 부담스런 명절이 됐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추석물가, 10년 전부터 꾸준히 상승
실제로 추석상 차리는 비용도 오를 만큼 올랐다. 올해 이 비용은 약 20만1190원(한국물가협회 자료 기준). 10년 전인 2005년 13만400원보다도 7만790원이 올랐다. 50% 상승률이다. 품목별 가격도 상승세를 유지했다. 명절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돼지고기의 등심 1인분(200g) 가격은 10년 전 1200원에서 올해 1600원으로 400원 가량 올랐다. 2005년 돼지고기 등심 4인분을 사먹으려면 4800원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1만원짜리 한장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쇠고기는 고사하고 닭고기도 먹기 힘들어졌다. 10년 전엔 닭고기 1㎏를 먹는데 3500원만 내면 됐는데, 지금은 4500원이 필요하다. 1000원이 별게 아닌 것 같지만 닭요리에 들어가는 채소값까지 감안하면 만만치 않다. 동태포, 조기, 북어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 이상의 조기 한마리 가격은 2005년 4000원에서 올해 5000원으로, 북어포는 같은 기간 3000원에서 3990원으로 소폭 올랐다. 동태포의 가격은 상승폭이 더 컸다. 10년 전 ㎏당 8000원을 주고 살 수 있었지만 이젠 1만원이 족히 필요하다.
모두가 껄껄 웃어야 할 명절을 앞둔 주부들의 한숨이 늘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래시장에서 만난 30대 주부는 “언뜻 상차림 가격이 크게 상승한 것 같지는 않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며 “품목별 가격이 조금씩 오르면 전체 비용은 크게 늘어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구나 추석보너스도 예년만 못해 추석명절 이후 가계를 꾸리는 것조차 어렵다”고 한탄했다.
당신은 추석이 두려운가요?
실제로 직원에게 추석보너스를 줄 수 있는 기업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655명에게 ‘추석 상여금을 받는가’를 물어본 결과, 전체의 48.9%가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의 경우, ‘받는다(44.8%)’보다 ‘받지 못한다(55.2%)’고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여금 수준은 평균 80만1105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기업이 끌어올린 수치다. 대기업의 평균 상여금은 138만7667원에 달한 반면 중소기업은 평균 56만7870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받는 것도 다행이지만 이 정도 상여금으론 상차림 비용, 선물비용, 용돈 등을 감당하기 어렵다. 익명을 원한 40대 가장은 이렇게 말했다. “주위를 보면 직장에 붙어 있는 것만 해도 다행스러울 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간이 웬만큼 크지 않으면 상여금 올려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물가는 매년 오르는데, 받는 돈은 그대로여서 명절이 점점 무서워진다.” 경기불황으로 지갑이 얇아지고 있는 이때, 서민은 추석을 두려워할지 모른다. 언젠가부터 한가위가 한寒가위가 됐다. 웃픈 현실이다.
김은경 더스쿠프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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