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지표로 본 서울시민의 삶

출근길 미세먼지는 목을 막는다. 퇴근은 늦고 야간은 잦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감당키 어려운 수준이다. 서울시에 사는 사람들이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유다. 이를 잘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경제협력기구(OECD)가 발표한 ‘더 나은 삶 지수’다. 우리나라, 특히 서울의 삶의 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158개국 중 47위를 차지했다.[사진=뉴시스]

# 서울의 한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최정아(28)씨는 올 1월 사표를 던지고 호주 브리즈번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가 브리즈번에서 찾은 직장은 채소 공장. 컨베이너 벨트에서 썩은 양파를 골라내는 게 주요 업무다. 하루 9시간씩 주 6일 근무하며 그가 받는 월 평균 실수령액은 520만원. 시급으로 환산하면 약 2만4000원이다. 몸을 쓰는 직업이라 호주의 최저시급(17.29달러·약 1만5000원)보다 훨씬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

정아씨의 보금자리는 공장 근처의 한 셰어하우스. 방 하나를 렌트해 집주인과 함께 살고 있는데, 방세는 보증금 13만원(150달러)에 월 45만원으로 우리나라 월세와 비슷하다. 집 주변엔 ‘서울숲’ 규모의 공원이 2곳이나 있고, 근처 마트에선 크고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서울보다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티켓 가격이 한국과 비슷한 영화와 뮤지컬도 부담없이 즐기고 있다. 정아씨는 “서울에선 매일같이 야근을 해가며 받은 월급으로도 빠듯하게 생활했었다”며 “브리즈번 생활비와 월세가 서울과 크게 차이 나진 않지만, 기본급이 높고 생활 환경이 쾌적해 삶에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아씨는 당분간 서울로 돌아올 계획이 없다고 했다.

# 캐나다 퀘백주에 있는 A어학원에서 코디네이터로 근무 중인 김하나(29)씨. 이민 2세인 그는 캐나다로 이민 또는 유학 온 다국적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영어·프랑스어는 물론 스페인어·일본어·중국어, 그리고 한국어까지 총 6개 국어에 능하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도 어학원으로 택했다.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5시가 되면 칼퇴근한다. 가끔 추가근무를 할 땐 시급의 50%를 더 받는다. 노동자가 칼퇴근을 하고 초과근무 수당을 받는 게 이곳에선 상식이다. 이 법을 지키지 않는 고용주는 강도 높은 처벌을 받는다.

하나씨가 30%의 세금을 떼고 받는 월 실수령액은 약 300만원. 개인차가 있지만 세금환급 비율도 꽤 높은 편이다. 매달 빠져나가는 목돈인 아파트 렌트비(약 100만원)는 룸메이트와 절반씩 내고 있어 부담이 적다. 덕분에 하나씨는 취미생활도 맘껏 즐긴다. 매주 65달러(약 6만원)짜리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러 다니고 15달러(약 1만4000원)짜리 오페라 감상도 즐긴다. 서울에서 2년간 원어민 영어교사로 일하기도 했던 하나씨는 “삶을 즐기기 위해선 돈도 필요하지만, 시간과 시스템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는 것을 서울생활 2년 동안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서울시민의 삶의 질 만족도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물가는 치솟고 전세난은 계속된다. 임금은 오르지 않고 노동강도는 갈수록 세진다. 이는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인구의 약 5분의 1이 서울에 몰려 있으니, ‘한국’의 민낯이기도 하다. 서울시민으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각박한 생활은 세계 유수의 기구·기관이 발표한 각종 지표에서도 잘 드러난다.

갈수록 떨어지는 서울시민 만족도

먼저 UN이 발표한 2015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984점을 받아 158개 조사 대상국 중 47위라는 불명예를 차지했다. 156개국 가운데 41위(6.267점)를 기록했던 2013년보다 순위가 더 떨어졌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과 보건컨설팅 회사 헬스웨이가 발표한 2014년 ‘웰빙지수’에서도 우리나라는 145개 조사대상국 중 117위를 차지했다. 75위였던 2013년보다 42단계나 하락했다.

서울시민의 각박한 삶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 지수’에서 정점을 찍는다. ‘더 나은 삶 지수’는 OECD가 34개 회원국을 포함한 38개 조사대상국의 주거·소득·직업·공동체·교육·환경·시민참여·건강·삶의 만족·안전·일과 삶의 균형 등 총 11개 부문을 평가해 국가별 삶의 질을 가늠하는 지표다. 우리나라는 올해 조사 대상 38개국 중 28위에 그쳤다. 2012년 24위보다 4계단이나 떨어졌다. 올해 상위 순위는 노르웨이, 호주, 덴마크, 스위스, 캐나다가 나란히 차지했다.

▲ 캐나다 몬트리올 시민들은 올 4월 주정부에 최저시급(약 9645원)의 인상을 요구했다.[사진=뉴시스]
OECD 지표에 따르면 서울시민은 심각하게 오염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국의 전체 환경 지수는 38개국 중 37위, 그중 대기오염 지표는 38위로 꼴찌를 했다. 국내 평균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29.1㎍/㎥로 OECD 평균(14.05㎍/㎥)의 두배, 세계보건기구(WHO) 지침(10㎍/㎥)의 세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공기가 가장 깨끗한 호주(5.9㎍/㎥)보다는 5배나 오염된 상태다.

야근이 일상인 직장인의 삶도 OECD 지표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국은 ‘일과 삶의 균형’ 항목에서 터키(38위)·멕시코(37위)를 간신히 제친 36위에 그쳤다. 주 50시간 이상 일한 임금노동자의 비율도 23.1%로 OECD 평균(13.0%)보다 10.1%포인트나 더 높았다. 반면 여가나 개인 생활에는 주 평균 14.7시간(27위)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하는 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쉬고 있다는 얘기다.

일은 많이 하는데 소득이 적은 현실도 숫자로 나타났다. 한국의 인구대비 평균 가계가처분소득(소비나 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은 1만9372달러(약 2247만1520원)로 OECD 평균(2만9016달러·약 3365만8560원)보다 66.7% 낮은 수준이다. 

서울시민 기본권 보장 받나

OECD 지표는 한국인에게 적절한 노동시간과 급여, 충분한 휴식, 쾌적환 자연환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전문가들은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던 사항들이 이번 OECD 지표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됐다’고 분석한다.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등은 이미 수차례 개선을 요구했던 사항들”이라며 “노동권이나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될 때 삶의 질도 함께 올라간다”고 말했다. 살기 힘들다는 시민들의 외침에 정부 당국이 귀를 기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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