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 실적 신통치 않은 이유

초반 열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출시 한달을 기점으로 확실하게 꺾였다. 서민 자산을 증식시켜주겠다면서 론칭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얘기다. 의무가입기간의 존재, 무의미한 세제혜택 등 문제는 출시 전부터 시장에서 제기했던 것들이다. 한마디로 ‘알면서 당한’ 셈인데, ISA를 살릴 대책은 없을까.

▲ 지난 3월 출시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인기가 빠르게 식고 있다.[사진=뉴시스]

“실패한 정책 상품이다.” “아직은 더 기다려봐야 한다.” 정부가 서민 자산 증식을 목표로 출시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출시 5개월 만에 시장에서 외면을 받고 있어서다. ISA는 출시 전부터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 계좌에 예·적금, 펀드, 파생결합증권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담아 관리할 수 있는데다 상품별로 존재했던 비과세 혜택을 계좌별로 전환하면서 ‘만능통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ISA를 판매하는 금융회사의 대대적인 마케팅까지 가세해 ISA를 향한 기대치는 한껏 부풀어 올랐다. 시장의 기대는 가입계좌 수로 나타났다. 출시 첫날이던 3월 14일 ISA에 가입한 소비자는 총 32만2990명, 금액으로는 1095억원에 달했다. 이는 2013년 재출시된 재형저축이 첫날 기록한 27만9180계좌, 가입금액 198억원, 2014년 론칭된 소장펀드의 1만7372계좌, 16억6000만원을 크게 뛰어넘은 수치였다.

지난 3월 29일에는 가입자수 102만7633을 기록하며 출시 12일만에 1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반짝 인기에 그쳤다. 출시 한달째인 4월부터 가입자 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4월 ISA 가입자 수는 3월 대비 52.6%나 감소했다. 이런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ISA 가입자의 전월 대비 증감률은 5월 -36.5%, 6월 -36.8% 등 꾸준한 하락세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ISA는 실패한 걸까. 한편에선 이렇게 말한다. “장기운용 상품인 만큼 초기 실적으로 성패를 판단하기 어렵다.” 일임형 ISA의 수익률 비교공시가 이뤄져 상품 간 차이를 확인하면 투자자의 가입이 증가할 거란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ISA를 둘러싼 통계는 이런 주장을 비튼다. 지난 7월 18일 ISA 계좌 이전 제도가 시행되고 일임형 모델포트폴리오의 3개월 수익률이 공시됐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자 시장에서는 ISA가 소장펀드, 재형저축 등의 실패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형저축과 소장펀드는 모두 첫달 각각 118만9999계좌, 15만8451계좌 판매실적을 올리며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지만 끝은 초라했다.

출시 한달 만에 인기 시들해져

ISA를 실패한 정책금융상품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가입금액 1만원을 밑도는 이른바 ‘깡통계좌’의 비중(6월 말 기준 57.8%)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회사의 과도한 마케탕에서 기인한 결과다. 실질적인 투자를 위해 계좌를 개설한 것이 아니라 금융회사의 권유, 지인영업 등으로 ISA 계좌수가 부풀려졌다는 얘기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실질적인 투자라고 보기 힘든 10만원 이하 계좌가 80%에 달한다”며 “금융당국이 발표한 자료를 더 세분해보면 의미 있는 잔액이 있는 ISA 계좌는 10% 안팎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문제점은 ISA가 중산층·서민 재산형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ISA 가입자 중 연소득 5000만원 이하 근로자, 종합소득 3500만원 이하의 사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6월말 기준 23.6%에 머물러 있다. 청년층(5.5%)을 합쳐도 비중은 30.0%를 넘지 못한다. 상품의 혜택을 받아야 할 서민층과 중산층이 ISA와 담을 쌓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결과가 초래된 이유 중 하나는 의무가입기간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ISA는 소장펀드(5년)와 재형저축(7년)처럼 의무 가입기간(5년·근로소득 5000만원 이하는 3년)을 거쳐야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서 “중산층에게 3~5년 자금을 묵혀두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금융공학대학원)는 “ISA는 여유자산이 적어도 몇천만원 정도는 있어야 의미 있는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이라며 “소득이 정체되고 빚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할 여유가 있는 계층을 서민이라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산이 없는 서민의 재산을 여윳돈을 활용하는 금융상품으로 늘리겠다는 발상부터 무리가 있었다”면서 “금융상품이나 세제혜택보다는 국민연금 등 4대 연금을 강화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셋째 문제점은 상품의 위험성이 비해 세제혜택이 적다는 것이다. ISA는 의무가입기간 5년에 발생한 수익 중 200만원(연소득 5000만원 이하는 25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2000만원을 5년간 투자한다고 가정했을 때 10%(연 2%) 이상의 수익이 발생해야 200만원의 비과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애기다.

그렇다고 200만원 전부가 혜택인 것도 아니다. 금융회사 수수료를 제외하면 혜택은 이보다 훨씬 더 줄어든다. ISA가 아닌 일반 상품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0만원에 일반 상품에 수익률 연 2.0%를 적용하면 이자소득세 15.4%를 제외하고도 169만2000원의 순이익을 올릴 수 있다. 결국 ISA를 통해 수익을 내려면 위험성이 큰 상품에 손을 대야 하는데, 이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ISA 다모아’에 공시된 은행·증권사 일임형 ISA 모델포트폴리오(MP) 143개 가운데 2% 이상의 수익률을 올린 MP는 13개다.

▲ ISA가 정책 목표인 서민 자산형성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 중 중위험 상품은 2개, 나머지는 모두 초고위험(6개), 고위험(5개) 상품이었다. ISA의 투자자 대부분이 리스크를 담보로 베팅을 했다는 얘기다. 김우철 서울시립대(세무학) 교수는 “ISA의 반응이 갑자기 냉랭해진 건 IS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센티브가 피부로 다가오지 않아서다”면서 “투자를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 국민에게는 사실상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서민에게 문턱 높은 ISA

최근 ISA의 가입 대상을 확대하고 세제 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온다. 하지만 제도 개선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출시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품의 구조를 건드리는 건 시장이 제기한 문제를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서다. 게다가 나라 곳간에 구멍이 뚫린 현재,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건 어려운 과제다. 조남희 대표는 “ISA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려면 가입 대상을 확대하고 세제 혜택을 500만원 이상으로 상향해야 한다”며 “하지만 이는 세수부족을 겪고 있는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획기적인 제도 개선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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