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학을 처음 읽다

<사진=뉴스페이퍼제작>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우리는 친일문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대개는 모 시인이, 모 소설가가 친일을 했다더라, 일제를 찬양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더라 정도의 지식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교과서에는 친일작가들의 작품이 실려 있지만 청년들을 전쟁으로 내몰기 위해, 일제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쓰인 시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노쳔명의 ‘사슴’은 실려있지만 ‘싱가파 함락’은 실려있지 않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실려있지만 ‘나가자 청년학도야’는 실려 있지 않다. 그들의 친일행적을 배우지 않는 한 우리에게 노천명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어를 사용한 시인이며 최남선은 최초의 신체시를 쓴 역사적 인물이다.

3.1 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총감독을 맡고 있는 서해성 소설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째서 우리는 친일문학인들에 대해 공부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제기한다.

질문을 제기하고 동시에 친일문학이 어떻게 우리나라를 치욕스럽게 만들었지를 알아보는 뜻 깊은 행사가 진행됐다. 19일 저녁 7시 덕수궁 함녕전 앞마당에서 진행된 “친일문학을 읽다 – 그때 시가 있었네”이다. 부제인 ‘그때 시가 있었네’의 ‘그때’는 일제가 지배와 착취를 정당화 할 때다. 일제가 청년들을 태평양 전선으로 내몰 때, 가미가제 특공으로 한 청년이 죽어 사라질 때, 일제의 지배가 정당하다는 논지를 펼칠 때, ‘그때’ 변절한 친일문학인들은 시와 문학을 통해 일제의 목소리가 되기를 자처했다.

이날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1부에서는 사회 각 분야의 인사들이 친일시를 육성으로 낭송하고 낭송작품에 대해 홍기돈 교수가 해설을 붙이고 짧은 대담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서해성 소설가가 함녕전을 가리키고 있다

행사에 앞서 서해성 소설가는 “감회가 굉장히 깊다.”고 전했다. 친일작품을 육성으로 읽고 비판하는 행사 자체가 거의 처음 있는 일이며, 행사가 진행되는 덕수궁 함녕전은 일제에게 내쫓긴 고종황제가 세상을 뜬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해성 소설가는 “이런 곳에서 우리가 친일문학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역사적인 일”이며 자리를 빛내준 시민들 모두가 역사적 인물들이라고 말했다.

시 낭송에는 대학생부터 시인, 사회운동가, 교수 등 각계각층이 참여했다.

가장 먼저 낭송을 맡은 황인찬 시인은 이광수의 ‘전망’을 육성으로 낭송했다.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을 쓴 것으로 알려진 이광수는 실은 변절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이광수의 ‘전망’은 일제를 중심으로 태평양을 통합하는 ‘대동아공영’을 찬양하는 작품이다.

 

저 남반구의 여왕 오스트레일리아도

그 곁에서 쉬어나갈 수 없는 뉴우질랜드도

기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하와이도

그것은 모두 아시아 대륙의 자녀들이다

한편으로 아시아 대륙을 정복하며

한편으론 태평양의 섬들을 보호 육성하며

우리의 일본은 군림한다

신의 나라, 천황의 나라, 부유한 나라,

아름다움과 사랑의 나라

 

황인찬 시인은 시를 낭독한 후 “친일문인들에 대해 공부할 때 그들의 위업과 친일행적을 함께 알아야 한다라는 생각은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다. 그러나 친일작품 자체를 소리 내어 읽어보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뜻 깊은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가 이 시를 읽으며 느낀 불편함을 공유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이현범 학생은 매일신보에 최남선이 기고했던 ‘나가자 청년학도야’의 일부를 낭송했다. ‘나가자 청년학도야’는 일제의 전쟁을 ‘성전’으로 미화하며 청년들에게 입대를 종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국민으로서의 충성과 조선 남아의 의기를 발휘하여 부여된 광영의 이 기회에 분발 용악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진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군 입대까지 한 달 가량 남았다는 이현범 학생은 “당시 살았던 학생이라면 권위 있는 문학가의 이런 글에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극배우이기도 한 장수진 시인은 노천명의 ‘신가파 함락’을 낭송하고 “‘사슴’같은 시를 쓰는 아름다운 언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폭격하는 장면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폭격을 축하하는 파티를 하자고 말하는 끔찍한 존재가 되버린 것”이라고 말하며 “시인이 쓰지 말아야 할 글이 권력자에 대한 찬양, 권력 그 자체를 숭배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아세아 세기적인 여명은 왔다

영, 미의 독아(毒牙)에서

일본군은 마침내 신가파를 빼서내고야 말았다

 

온갖 죄악이 음모되는 불야의 성

싱가폴이 불의 세례를 받는

이 장엄한 최후의 저녁

 

홍기돈 교수는 “이 시를 쓴 전날 싱가폴이 함락된다. 일제가 말레이반도를 장악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상징적 지역이 싱가폴이었다. 노천명은 일본이 싱가폴을 함락하니 곧 일본이 세계를 정복할 거라 판단을 내린 것. 싱가폴 함락 다음 날 격정적으로 써낸 시가 바로 신가파 함락”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모윤숙의 ‘어린날개 – 히로오카 소년 항공병에게’, 서정주의 ‘마쓰이 오장 송가’가 낭송되며 두 친일문인이 시를 통해 어떻게 사람들을 전쟁으로 내몰았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에는 한국의 대표시인인 고은 시인도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1933년 태어나 유년기를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낸 고은 시인은 1945년 8월 15일을 “모든 조선동포들에게는 민족 해방의 의미였겠지만 저에게는 이름과 모어를 찾는 모국어의 해방이었다.”고 회상한다.

“이육사 시인의 따님 이옥비 여사가 오신다고 해서 꼭 뵈어야겠다는 생각에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는 고은 시인은 이육사 시인을 가리켜 “처음”이라고 표현하고 이와 관련된 기억을 이야기했다. “해방 이후 처음 접한 국어교과서에서, 태어나 처음 접한 시가 이육사의 광야였다. 이육사라는 세계는 제 운명의 최초이자 처음”이라며 이육사의 ‘광야’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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