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남유연 객원칼럼니스트]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움들을 담은 예술작품들이 있다. 그 중에는 매니악한 방식의 예술도 존재한다. 불편함과 괴로움을 수반하는 그로테스크의 예술이 그렇다. 그로테스크 초현실주의 애니메이션의 거장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회고전이 네마프(The 17th Seoul International New Media Festival)에서 열렸다.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의 작품들은 기괴함과 섬뜩함을 수반한 그로테스크로써 날카롭게 인간의 내면, 사회상, 정치상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8편의 단편과 6편의 장편 영화를 만들었다. 네마프에서는 <앨리스(Alice)>, <오테사넥(Little Otik)>, <자버워키(Jabberwocky)> 등등의 작품들이 상영되었다. 그의 제자 미할 차브카가 강연을 하고, 또 다른 제자 아네타 차브코바가 포럼 토론을 주도했다. 네마프에서의 그의 회고전을 기념하여 얀 슈반크마이에르와 그의 작품들에 대해 들여다보려 한다. 기괴함과 섬뜩함을 지닌 초현실주의적인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그가 택했던 형식과 내용의 독창성을 알아보면서 그가 추구했던 예술을 엿볼 수 있다.

얀 슈반크마이어르의 생애와 그의 작품 배경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태생과 그가 겪은 역사가 그의 작품들에 영향을 미쳤다.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1934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그는 음악‧연극 아카데미에서 인형극(Marionette and puppet theatre)를 전공했다. 그는 연극 공부를 지속하다가 영화에 비해 연극이 가지는 한계를 느껴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체코는 인형극 전통이 오래됐고, 인형극과 밀접하게 관련된 체코 애니메이션에는 인형극을 활용한 것들이 많다.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체코 애니메이션을 계승하면서도, ‘환상’ 묘사에 초점을 맞췄던 다른 체코 애니메이터들과 달리 ‘잔인한 현실’에 관심을 가진다.

체코 역사를 알면, 약소국 국민으로 암울한 역사적 격동기를 겪은 얀 슈반크마이에르가 ‘잔인한 현실’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의 작품에는 체코 역사와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두드러지는데, 그만큼 체코 역사는 암울했다. 체코는 몇 백 년동안 지속적 지배를 받았다. 체코는 16세기 초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체코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립하지만, 1939년 히틀러에 의해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련에게 일부 지역을 할양하고 독립하지만 사회주의 국가가 된다. 1968년에 민주화운동 ‘프라하의 봄’이 일어나지만 소련군의 개입으로 좌절당한다. 암울한 역사 속에서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환상세계로 도피하기보다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사건의 핵심을 집어내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로테스크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의 작품들을 들여다보기 전에, 그의 주된 표현인 ‘그로테스크’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그로테스크는 “예술상에 나타난 괴이하고 황당무계한 괴기미”로, 유쾌함과 불쾌함의 양극을 오가는 감흥이다. 이때의 유쾌함은 산뜻함이나 상쾌함이 아닌, 규범이나 타인의 시선 때문에 넘지 못했던 선을 넘는 모습을 작품에서 발견하면서 느끼는 희열로서의 유쾌함이다. 작품들 속에서 기괴한 이질감이 느껴지며, 부조화가 부각될 때 우리는 그로테스크함을 느낀다. 그로테스크는 시각적으로뿐만 아니라 청각적, 촉각적으로도 표현된다.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의 작품에는 ‘신체’에 대한 그로테스크가 두드러진다. 신체에 대한 공격과 해체, 결합이 등장한다. 이는 인간의 잠재의식 속의 모순적 욕망을 시각화한 것이다. 그로테스크는 작가의 창의력과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그로테스크에서는 심리적 공포와 희극적 요소가 동시에 등장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섬뜩한 무언가와 맞닥뜨리는 것이다. 희극적 요소는 혼란과 역겨움을 더해 작가의 해석과 개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희극적 요소는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영화전략으로도 여겨진다. 공산주의 국가였던 체코는 예술과 정치를 검열했으며,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1972-1979년 사이에 영화제작 금지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사회비판에 희극적 요소, 유머를 더하여 정치적 검열을 피하려 했다.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시각뿐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과장된 기괴한 소리를 이용하여 그로테스크를 극대화했다. 영상을 통해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유추하고 느끼는 촉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촉각적 상상이 더 용이하도록 Tactile Art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관련 저서로는 ‘Touching and Imagining’이 있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에까지 신경 썼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다양한 감각을 전달하는 풍부한 작품이다.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그로테스크는 다른 영화감독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테리 길리엄, 퀘이 형제(스티븐 퀘이와 티모시 퀘이), 팀 버튼 등 세계적인 감독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신체에 대한 파괴적 그로테스크, 기괴한 인형과 소품의 사용 등은 얀 슈반크마이에르 작품의 영향이다.

[왼쪽부터 각각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 퀘이 형제의 <Street of Crocodiles>, 로버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섬뜩한 장면과 인형의 사용, 기괴한 인물들의 표정이 두드러진다.]

형식적 독창성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의 단편 영화를 한 편만 보아도 그의 영화의 형식이 독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체코 출신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인형극(Marionette and puppet theatre)을 전공했으며, 체코의 인형극 애니메이션(Puppet Animation)을 계승했다. 그는 수작업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들과 소품들을 사용하며, 이것들은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네마프에서도 상영되었던 장편영화 <앨리스(Alice)>에서 사용되었던 소품들이 <자버워키(Jabberwocky)>에서도 등장한다. <앨리스(Alice)>뿐 아니라 그의 많은 작품들에서는 사람과 닮은 인형들이 나오고 인간이 인형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그런 요소들에서 사람들은 기괴함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인형과 소품을 활용하며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영화를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촬영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사용된 형식들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영화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의 영화들은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영화로 분류된다. 아방가르드 영화, 전위 영화는 1920년대 유럽에서 시작된 실험영화로, 아방가르드라는 의미 속에 초현실주의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무의미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와 함께 등장했으며,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이 주가 된다. 아방가르드 문화는 기존 예술을 부수려는 부정의 문화로, 할리우드 주류 영화의 내러티브 관습을 거부한다. 끊임없는 실험정신을 가진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작품들에서는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으며, 클리셰가 등장하지 않는다. 

인형과 소품을 활용해 Stop Motion Animation 기법으로 촬영한 'Jabberwocky(1971)'의 한 장면

초현실주의의 특징은 ‘데페이즈망(추방하는 것)’, 즉, 뜬금없는 것이 화면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데페이즈망은 일상에서 사물을 추방하여 이상한 데에 두는 것이며,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물건이 있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미술 작품은 종종 접해보셨을 수 있다. 왼쪽의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데페이즈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빗방울 대신 우산을 쓴 사내가 떨어지는 장면은 정말이지 뜬금없는 일이다.

초현실주의 미술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의 '겨울비'

데페이즈망으로 인해 화면에서 합리성은 사라지고 꿈과 같은 세계가 펼쳐진다. 초현실주의 영화에서는 영화의 신(scene) 각각에서 데페이즈망, 어그러진 이미지가 나타나며, 이야기의 흐름도 예측할 수 없게, 논리적이지 않게 진행된다. 초현실주의 영화는 아방가르드 영화의 분류 중 하나이다. 초현실주의 영화는 파괴적 반(反)예술 운동이었던 다다이즘에 뿌리를 두지만, 파괴보다는 꿈과 환상에 근거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고자 했다. 비논리적, 일탈적이고 충동적인 이미지를 나열하여 억눌린 의식세계를 벗어난 무의식의 세계, 내면적 이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려 한다.  초현실주의 영화는 초현실주의 미술과 달리, 훨씬 다양한 감각으로써 데페이즈망과 비논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영화는 종합 예술로, 청각적 효과를 삽입할 수 있고 촉각을 더욱 효과적으로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시각과 일치하지 않는 청각적 효과는 데페이즈망을 극대화시킨다.

-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초현실적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했다. 이는 촬영대상의 움직임에 한 프레임씩변화를 주면서 촬영하는 기법이다. 촬영된 이미지들은 연속적으로 영사되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Food(1992)’의 한 장면 :
Claymation과 Pixilation 기법이 쓰였다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 기법에서는 배우나 특정 인형들이 연속적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촬영이 가능하여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비현실적인 화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 점토로 만든 물체들이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촬영되면, 이는 클레이메이션(Claymation)이라 불린다.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많은 작품들에서 클레이메이션기법이 드러난다. 나아가, 그는 픽실레이션(Pixilation) 기법도 사용했다. 이는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 기법 중 하나로, 사람을 피사체로 이용하는 애니메이션 기법이다. 실제 배우와 애니메이션 속 피사체를 섞어서 표현할 수 있으며, 이로써 현실과 허상을 넘나드는 초현실적 이미지를 재현한다. 

내용적 독창성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은 영화의 기법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내용적 측면에서도 독창적이었다. 부조리와 소외, 애니미즘, 그리고 비현실, 꿈과 내면세계에 대한 표현, 문학에서 받은 영감의 네 가지이다. 

- 부조리와 소외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작품에는 부조리와 소외가 역설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저항적 정치관을 가지고 작품들에서 정부∙권력에 대한 저항의식을 드러낸다. 유머와 그로테스크를 조화시켜 사회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풍자와 조롱을 작품에 담아냈다. 관객은 작품을 통해 편견을 깨는 통찰을 경험할 수 있다. 그는 체코의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이 실패하는 것을 지켜보았던 세대로서 블랙 코미디의 형식으로 사회를 비판한다. 1968년 작 <The Flat>에서는 절망적인 체코 사회를 반영했다. <Leonardo’sDiary>에서는 체코인의 일상적 삶과 정치관을 반영했는데, 체코 당국의 검열을 무시해 1972년에서 1979년까지 영화제작 금지처분을 받았다. 금지 처분을 받은 동안 그는 대표작 <대화의 가능성(1982)> 삼부작을 완성했다. 삼부작에는 각각 계급 간 대화, 이성 간 대화, 소통이 부재한 현대인들 간의 대화가 나타난다. 1983년작 <ThePendulum>은 억압받는 체코 현실을 빗대어 묘사한다. 1988년 작 <사나이 게임>은 ‘살인축구’라고도 불리는 작품으로 축구선수들은 서로를 우스꽝스럽고도 기괴하게 죽임으로써 점수를 얻는다. 대중매체의 폭력성과 여론조작, 그에 따른 개인의 몰개성화와 소외현상을 비판한다.

'영원한 대화'의 한 장면. 기계로 된 왼쪽의 얼굴이 노동자계급을, 농산물로 이루어진 오른쪽의 얼굴이 농민계급을 대변한다.

<대화의 가능성> 삼부작은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대표작이면서 그가 즐겨 사용한 형식적 특징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부조리와 소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한다. 삼부작 중 계급 간의 대화를 표현한 1부 <영원한 대화>에서는 탁월한 상징성이 드러난다. 기계로 꼴라쥬된 얼굴의 사람(노동자계급)이 농산물로 꼴라쥬된 얼굴의 사람(농민계급)을 잡아먹고, 원고지와 연필로 꼴라쥬된 얼굴의 사람(지식인계급)은 노동자계급의 얼굴을 잡아먹는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얼굴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행위를 통해 ‘착취’를 연상하도록 했다. 혁신적인 표현이 떠올리기 쉬운 유비를 통해 드러난다. 착취를 반복하며 각 계급의 얼굴들은 서로 섞이면서 같은 점토로 만들어진 같은 얼굴을 갖게 되는데, 이는 단순한 ‘착취’의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먹고 먹히는 착취의 과정을 겪으며 착취의 행위만이 남아버린 소외현상을 보여준다. 모든 것은 착취를 위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과거 계급갈등이 현대로 오며 다양한 층위의 계층갈등으로 변화해온 흐름이 작품 속에 담겨 있다. 지식인, 노동자, 농민이라는 뚜렷한 계급의 구분은 없음에도 2017년 현재까지 ‘갑질’로 대변되는 착취의 양상이 나타나는 것을 1982년 작품에서 선견지명처럼 보여준다. 

- 애니미즘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의 작품에서는 애니미즘 사상이 드러난다. 애니미즘은 사물에 영혼과 움직임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애니메이션은 애초에 멈춰있는 어떤 것에 움직임을 가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으로, 애니미즘이 바탕이 된다. 그의 장편 중 하나인 <오테사넥(Little Otik)>에서 주인공 부부는 아기처럼 생긴 나무뿌리에 애정을 주고, 나무뿌리는 마치 진짜 아기처럼 생명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게 된다. 잘려진 무생물인 나무뿌리에 영혼이 깃들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들에서는 사물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주인공이 사람이라 해도 마치 사물처럼 비춰진다. 애니미즘은 기술적 독창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Jabberwocky'의 한 장면 : 옷걸이에 걸린 옷이 마치 사람이 춤추듯 움직이는데, 애니미즘 사상이 드러난다. 벽에서 나뭇가지가 자라나고 있는데, 이는 꿈과 비현실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사람을 피사체로, 물건처럼 만들어버리는 픽실레이션 (Pixilation) 기법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표현 방법으로써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은 인간이 다른 사물과 동물, 힘들에 대해 우월하게 여겨지지 않도록 한다. 인간을 다른 것들과 동등하게 시각화하는 것이다. 영화 <앨리스(Alice)>에서 앨리스는 인형으로 변하기도 하며, 앨리스는 다른 물건들과 동등한 관계를 맺으며 모험한다. 사물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모습이 드러난다. 애니미즘은 인간중심적 규정과 사고를 해체시킨다. ‘올바른’, ‘객관적인’ 것을 사라지게 하여 세계와 인간 간의 소통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간중심적이지 않은 그의 독특한 시선이 드러난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지 않고 타자의 입장, 사물이나 동물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된다. 

-비현실, 꿈과 내면세계에 대한 표현

초현실주의 영화답게,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영화에서는 비현실, 꿈과 내면세계에 대한 표현이 나타난다. 그는 작품들에서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면서도 기괴한 이미지들을 사용했다. 장편영화 <앨리스(Alice)>에서는 사람이 인형으로 변하고, 박제된 인형이 살아 움직인다. 시각적 정보와 일치하지 않는 소리가 나온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만 실제 영상에서는 동물이 울고 있는 장면이 연출된다. 2010년 작 <살아남은 삶(Surviving Life)>에서는 꼴라쥬적 특성을 섞은 몽환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했다. 이러한 꿈과 같은 비현실 세계를 만들어내어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상반된 욕망들이 존재하는 내면세계를 표현했다. 단편영화 <음식(Food)>의 점심(Lunch) 에피소드에서는 자신보다 모자란 사람에 대한 뒤틀린 폭력성과 파괴 욕구가 존재하는 내면세계가 표현되었다. 이러한 폭력성은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아 숨겨야 하고, 가지고 있다 해도 무의식 세계에 속해 있어 알아채기 힘든 내면세계의 욕구이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할 만큼 폭력적이면서 동시에 해방적이고 쾌락적인 행동들이 그로테스크를 통해 표현되어 관객은 인간 본성 속에 잔혹함이 존재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작품 속에서 발견한다. 관객들은 이를 꿰뚫어보는 감독의 통찰력에 감탄하면서 어째서 이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그로테스크가 쓰였는지 납득하게 된다.

- 문학에서 받은 영감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문학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 이를 활용하거나 재해석했다. 애드거 앨런 포와 마르키 드 사드와 같은 작가들에게서 영감을 얻었고, 문학작품을 재해석하기도 했다. 그가 문학을 재해석하여 만든 작품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재해석한 <Alice(1988)>, 파우스트를 재해석한 <Faust(1994)>가 있다. 원작을 알고 영화를 보더라도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작품들은 획기적이다. 

이번 네마프 축제를 통해 한국에서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얀 슈반크마이에르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확대되었으면 한다. 탁월하고 독창적 방식으로 통찰이 표현된 그의 작품들은 아름답다. 그는 사회비판과 인간본성에 대한 고찰을 초현실주의 영화로써 실험적으로 담아냈으며, Stop Motion Animation과 Pixilation 기법을 활용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사회 부조리와 인간 소외, 애니미즘과 비현실적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그로테스크가 담아내는 이질성과 양면성에 대해 고찰하며 그로테스크 속 아름다움을 환기할 수 있다.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영화와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조소, 그림, 꼴라쥬, 설치 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메시지를 전달했다. 영화 속에서 청각적 효과와 간접적인 촉각적 효과를 사용하여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예술가이다. 테리 길리엄과 퀘이 형제, 팀 버튼이 그랬던 것처럼, 예술가들은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실험정신뿐 아니라 그의 작품들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은 만 8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독창적이며, 그는 새로운 매체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고 있다. 그는 언뜻 보기에 공포스럽고 기피하고 싶은 그로테스크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견고한 예술 세계를 개척해왔다. 정치적으로 대담한 작품들, 인간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담은 작품들을 만들어낸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018년에는 그의 마지막 신작 <Insects>가 발표될 것이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그의 모든 창의성과 기술적 정수를 마지막 작품에 쏟아넣었다고 한다. <Insects> 관련 인터뷰(링크)를 첨부할 테니 한 번 보시기를 권한다.

참고문헌 : 

- 조중현, 2000년 12월, 「얀 슈반크마이에르(Jan Svankmajer)의 애니메이션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연구」,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pp. 119-161 
- 서영주, 2015년 2월, 「감각 경험을 확장시키는 애니메이션의 실험적 실천 연구 - 애니메이터의 매체 수행 방식을 중심으로 -」,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영상예술학-애니메이션이론 전공, 박사학위 논문
- Laura Ivins-Hulley, 2015년 5월, 「CINEMA AS SURREALIST TOOL: THE FILMS OF JAN ŠVANKMAJER」, Indiana University Communication and Culture, 박사 학위 논문, p.254
- 정헌, 2013. 2. 25., 「영화 역사와 미학」, 커뮤니케이션북스
- 송미숙, 김재웅, (2008),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작품에 나타난 인체의 변형을 통한 초현실주의적 특성에 관한 연구」, 디지털디자인학연구, 8(1), 285-295.
- 이혜원 (2008). 애니메이션을 통해 변형된 미술 이미지에 관한 연구. 한국애니메이션학회 학술대회지, 105-108

 

남유연 칼럼니스트 

이력 :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 Pratt Institute Fine art - Painting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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