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한명희 심리치료사] 2017년 당신의 봄은 어떠 하셨습니까? 대통령 탄핵결정이 되던 순간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었나요?

나름 인본주의자인 나는 그랬다. 아픈 살을 도려내는 수술을 지켜보는 마음으로 대통령 탄핵결정이 되던 순간이 지나갔고, 눈물의 환호를 나누려 광화문으로 가자 했다. 그리고 태극기 할머니들 손을 잡아 드리리라 했었는데... 태극기 부대의 비보를 전해 듣고 발길을 돌렸다. 

610, 518, 419, 43, 31...그러고 보니 참으로 찬란한 봄이 우리에게는 숫자로 아로 새겨져 있다. 그래서 봄이면 벚꽃과 함께 최루탄이 연상된다. 대한민국 386이 공유하는 감각적 기억이다. 헌데 많이 아픈 감각이다. 최근 세월호의 아픔도 봄이었고 대통령의 자살로 아파하던 것도 봄이다. 젊은 세대에게도 이제 봄의 아픔은 대물림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극 "고령수감자" 사진 = 박도형 기자>

이런 아픔의 대물림을 멈추자고 위로를 보내는 연극을 만났다. ‘고령 수감자’ ( 극단 가음, 사성구 작, 정호붕 연출, 2017년 9월 13일부터 17일, 열림홀)는 비전향 빨치산 할머니와 바카스 할머니가 같은 감방 안에서 옥신각신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살 날이 얼마 남았는지도 알 수 없고 기억도 희미해져 오락가락 하면서도 이념을 가지고 서로를 비난하며 머리채를 잡는다. 헌데 이들은 진정 이념 때문에 이 감방에서 여생을 마무리하는 것일까? 아니다. 먹을 것이 없어 마트에서 음식을 훔칠 수 밖에 없었고 노인을 상대로 몸을 팔아야 했던 가난하고 외로운 노년을 이념도 사회도 돌봐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지 빨치산 할머니는 자신이 혁명전사라고하고 바카스 할머닌 자신이 산업화의 역군이라 하며 서로 “네 조국이 너에게 무엇을 해 주었냐”고 비아냥 한다. 웃픈 장면이다.

<연극 "고령수감자" 사진 = 박도형 기자>

그 동안 혁명전사, 산업화의 주역, 베트남 참전 용사, 민주화항쟁 투사 ... 이렇게 역사책에 당시의 흔적만 한줄 기록될 뿐, 이후 각 개인의 삶을 사회가 충분히 책임졌던가... 하물며 일명 ‘양공주’도 관주도로 허울 좋은 말로 어린 처자들을 현혹시켰고, 위안부 할머니들도 그랬다 한다. ISIS는 또 어떠한가... 종종 이념은 공익을 위한 구원처럼 포장되어지고 때로 희생을 넘어 살생을 합리화 한다. 그리고 그 이념의 최전방에는 민초들이 있다. 이 민초들은 종종 삶이 깨져 평생 지워지지 않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안고 살다 가기도 한다.

<연극 "고령수감자" 사진 = 박도형 기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경험 후 삶이 깨져버린 상태로 느끼는 것을 PTSD, 외상후 스트레스라 부른다. PTSD는 고통의 사건 경험 직후 치유적 개입이 있을시 예방이 가능하나 방치해 둘 경우 후유증으로 다양한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며 트라우마를 대물림하게 된다고 한다. 이들의 고통은 개인적인 트라우마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트라우마 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625 전쟁 세대, 베트남 참전세대가 아직 생존해 있고, 수 많은 민주화 투사들의 죽음을 지켜봐야했던 세대에 이어 발전한 문명 덕에 세월호 사건은 온 국민이 트라우마를 경험하기에 충분했다. 트라우마는 직접 상해를 입은 당사자 뿐 아니라 목격자에게도 나타난다.

<연극 "고령수감자" 사진 = 박도형 기자>

트라우마는 우리 뇌에 상처의 기억 때문에 편도체를 너무 민감하게 해서 작은 유사자극에도 경계경보를 발령해 위험 신호를 보내 생존하도록 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다보니 각기 경험한 트라우마의 배경에 따라 다른 방향에서 위험 신호를 감지하게 되고 생존하고자 더욱 격렬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아픈 기억이 다시 아플까봐 너무 무서워 하는 것이다. 무의식을 관장하는 편도체가 활성화되고 의식적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서로 협업을 하지 못 하게 되므로 합리적으로 현실인식을 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외형으로는 그저 이념의 갈등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 기저에는 각기 경험한 주된 트라우마의 사건 경험이 달랐기에 반대편에서 서로가 적 인양 대하게 된 것이라면...이제 누가 옳고 누가 틀린가를 갈음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서로를 경청해 주고 위로해 주는 치유의 과정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트라우마의 대물림을 멈추는 것은 한 세대가 트라우마를 꺼내 치유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연극 "고령수감자" 사진 = 박도형 기자>

연극 속에서 두 할머니는 으르렁 거리다가 서로의 삶의 구비 구비 찢긴 상처들을 듣고는 서로를 품어준다. 이미 일 주일 전 돌아가신 바카스 할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 하는 빨치산 할머니가 ‘조막례’를 부르는 모습은 이념을 넘어 고독한 인간이 위로를 받은 애착대상을 찾는 모습이었다. 또한 조금은 신파처럼 길게 느껴진 빨치산 할머니가 옥살이 중 폐렴으로 죽은 어린 딸의 영혼과의 만남 장면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딸인데 어미로서의 죄책감으로 영혼으로 온 딸 마저 볼 면목이 없어 고개를 돌리며 가라고 하는 그 순간 객석은 모두 흐느끼고 있었다. 어미의 마음은 이념을 넘어선다. 인간 근원을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죽음이라는 코드는 인간의 본질이기도 하다.

<연극 "고령수감자" 사진 = 박도형 기자>

허허롭게도 연극의 마지막, 박카스할머니와 빨치산 할머니는 죽어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어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이 겹쳐 떠오른 이 장면에서 이념으로부터의 해방처럼 느껴졌다. 

대한민국 근대사의 어두운 그림자, 이념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굿처럼 느껴진 이 연극은 이제 막 시작이다. 초연작은 앞으로 더 다듬고 발전시켜갈 것이라 한다. 많은 이들이 이 연극을 보고 서로 소통하고 위로하는 영감을 받아가길 바란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거들랑 그들의 삶을 궁금해 해 보기를, 내 두려움과 상처가 보호되고 위로되기를 기다리듯 그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주기를.

 

 

한명희

심리치료사, 현 TIAT센터장

한국 드라마테라피 아카데미 코스 리더, 상임 트레이너,/영국 드라마테라피스트 협회 소속 드라마치료사, 임상 수퍼바이져 /영국 Health and Care Professions Council 국가 공인 예술 치료사 

Hertfordshire Univrsity Dramatherapy 석사, Central School of Speech and Drama 연극제작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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