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독서의 계절인 가을을 맞아 전국에서는 각종 독서 축제가 한창이다. 이에 서울도서관과 독서대학 르네21은 매달 진행하는 ‘목요대중강좌’ 의 9월 주제를 “한국 소설의 재발견” 으로 선정했다. 9월 목요대중강좌 기간 동안에는 방현석 작가, 정영문 작가, 조해진 작가, 윤후명 작가가 한 주씩 맡아 서울도서관 4층 사서교육장에서 목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강연을 진행한다. 

지난 21일 강의의 주제는 “시대와 호흡하는 문학적 상상력” 이었으며 조해진 소설가가 강사를 맡았다. 조해진 소설가는 2004년 ‘문예중앙’을 통해 문단에 데뷔했으며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와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와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등을 출간했다. 또한 신동엽문학상과 무영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연을 시작하며 조해진 소설가는 “시대와 호흡하는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주제와 어울리는 강연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올해 출간된 소설집 “빛의 호위” 에 수록된 역사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 세 편이었던 것. 조해진 소설가는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와 이 세 편의 소설을 중심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조해진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프리모 레비 

프리모 레비는 유대계 이탈리아인이자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이것이 인간인가’ 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등을 집필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출간하고 약 1년 후인 1987년 4월 11일 프리모 레비는 아파트 계단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프리모 레비의 죽음에 대해서는 우울증으로 인한 투신자살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해진 소설가는 이런 프리모 레비의 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용산 참사 이후 참여한 피켓시위, 박근혜씨의 대통령 당선, 세월호 침몰 사건 등의 사건을 겪으며 “나는 작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 조해진 소설가는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진짜 증인들은 우리 생존가가 아니다” 라는 구절을 읽으며 “저도 구경꾼에 불과하고 자격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전제해야한다는 것을 배웠다” 고 이야기했다.

또한 프리모 레비의 다른 책인 “이것이 인간인가” 의 부록에 실린 인터뷰를 읽고 조해진 소설가는 바늘로 찌르듯 아팠다고 이야기했다. 조해진 소설가는 인터뷰에서 프리모 레비가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획득하고 방어했다.” 며 집단학살을 모른 체한 독일인들 역시 공범자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모르는 것은 결코 면책권이 될 수 없다는 것. 조해진 소설가는 이 글을 읽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며 프리모 레비에게서 적극적으로 변하는 법을 배웠다고 밝혔다. 

동쪽 伯의 숲 

조해진 소설가는 단편소설 ‘동쪽 伯의 숲’ 은 동백림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이야기했다. 동백림 사건은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대규모 공안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문화예술계의 윤이상, 이응로, 천상병을 포함한 194명의 유학생과 교민들이 대남 적화공작을 벌였다며 대대적인 처벌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 최종심에서 간첩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동백림 사건에 대해 조해진 소설가는 “멀쩡한 학생들을 붙잡아 하루아침에 간첩을 만들었던 사건이라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며 관심을 가지고 기사 등을 찾아봤다고 말했다. 

찾아본 자료에 의하면 당시 독일은 간첩으로 조작하기 쉬운 환경이었다고 조해진 소설가는 이야기했다. 당시 베를린은 동서로 분단되어 있었지만 신청자는 그 국경을 넘을 수 있을 정도로 자유도가 있었다는 것. 

조해진 소설가는 “동쪽 伯의 숲” 의 스토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희수는 독일 베를린 작가 행사에서 발터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발터의 할머니 한나는 젊은 시절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한국인과 친분을 맺은 적이 있다는 것. 발터는 항암 치료 때문에 한국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 희수에게 그 유학생을 찾아 한나의 임종을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희수는 처음엔 거절했으나 이후 유학생을 찾아 임종을 전달하고, 유학생은 한나의 묘를 찾게 된다. 

역사적 사건을 소설화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고 조해진 소설가는 이야기했다. 개인의 이야기와 두 시대가 연결되는 지점을 찾고 싶었다는 것. 또한 희수 역시 혼란스러운 시대를 지나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조해진 소설가는 전했다. 

사물과의 작별 

재일조선인을 소재로 한 ‘사물과의 작별’을 소개하며 조해진 소설가는 “당시 재일조선일을 대상으로 한 간첩 조작 사건을 수시로 있었다” 고 이야기했다. 조선과 일본 양국은 이민자들을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았기에 간첩으로 만들기 쉬웠다는 것. 

조해진 소설가는 이런 사건의 희생자인 서경식의 에세이를 읽어보고 그의 형제 서승, 서준식 까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서승과 서준식 역시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했다는 것. 조해진 소설가는 서승의 ‘옥중 19년’ 과 서준식의 ‘옥중서한’ 을 읽고 “십년 이상을 굽히지 버틸 정도로 강한 인물들이지만, 내밀한 글을 보면 대단히 약한 인물들” 이라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조해진 소설가는 이런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며 쓴 “사물과의 작별” 의 스토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지하철 유실물 센터의 직원인 화자에게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고모가 있다. 고모는 화자에게 첫사랑 서군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과거 고모는 서군으로부터 맡게 된 서류를 서군의 대학 조교로 짐작되는 사람에게 전해주는데, 서군이 잡혀가는 걸 보고 ‘내가 서군을 갑첩 만드는 일에 동조했다’ 고 생각하게 된다. 고모는 그런 죄의식을 안고 평생을 살아온 것. 화자는 수소문하여 서군의 소식을 알아본다. 서군은 근육이 마비되는 병에 걸려 장기 입원 중인 상태. 화자는 고모를 서군과 만나게 하지만 둘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고모는 애먼 청년에게 영치물이 담긴 쇼핑백을 전해준다. 

빛의 호위 

단편소설 ‘빛의 호위’ 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조해진 소설가는 “제가 모르는 시대지만 그 역사를 이 시대와 연관해서 지역과 시대를 넘은 소통을 쓰고 싶었다” 고 이야기했다. 

조해진 소설가는 한국어 강사로 일을 하기 위해 폴란드 대학에 방문했을 때 아우슈비츠에 가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때 조해진 소설가가 가장 놀란 건 생활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이 너무도 가까웠다는 것. 조해진 소설가는 “마굿간 수준의 침실 바로 옆에 총살하는 벽이 있고 전체 점호를 하는 큰 마당에 교수대가 있으며, 수용소 안에 가스실이 있었다” 며 “최소한의 분리도 되어있지 않아 너무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고 말했다. 

또한 조해진 소설가는 처음엔 이런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소설화하는 것에 겁을 먹었으나 이명박, 박근혜 시대를 살면서 느낀 게 있어 집필을 결정하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빛의 호위’ 의 스토리를 조해진 소설가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어린 시절 반장이었던 화자는 학교에 안 나오는 권은의 집에 찾아가게 된다. 권은은 사실상 고아의 삶을 살고 있다. 이에 화자는 팔아서 쓰라는 의미로 아버지의 필름카메라를 가져와 권은에게 건넨다. 하지만 권은은 카메라를 팔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통로로 삼아 사진작가가 된다. 유년기의 기억을 미처 회복하지 못한 화자에게 권은은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에 출연한 알마 마이어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고 밝힌다. 알마는 이미 죽고 없지만 유대인으로 지하에 갇혀있을 때 연인이었던 작가 지망생 장의 습작을 보며 견뎠다는 알마의 이야기에 공감하여 편지를 쓰게 된 것. 이후 유년기의 기억을 모두 회복한 화자는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 을 보러 가고 거기서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빛의 호위’ 를 발표하고 조해진 소설가는 ‘사람 사람들’ 이라는 다큐를 어디서 볼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실존하는 영상이 아니라 “제가 만든 소설 속 다큐” 라고 이야기했다. 

조해진 소설가는 “항상 타인의 고통이 있다는 걸 알고, 그들 덕에 내가 특권을 누린다는 걸 의식하려 한다” 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이날 행사는 독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다. 질의응답은 아래와 같이 진행되었다. 

질의응답 

Q. 빛의 호위는 2014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실렸는데 해설을 보면 ‘빛의 호위’ 가 진짜 증여의 삶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 헌데 저는 노먼이 ‘진짜 증여의 삶’ 보다는 ‘개인적으로 해석한 증여의 삶’ 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해석을 읽긴 한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런 이야기를 본 것 같긴 하다. 노먼은 장이 알마에게 증여한 것, 거기에 영향 받은 권은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집약된 인물이다. 증여와 증여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소설이기에 그런 해설을 쓴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노먼은 장이 알마에게 준 증여와 달리 자신이 선택해서 팔레스타인으로 갔지만, 알고 있기 때문에 실천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Q. 한국과 세계 사회의 어두운 사실들을 작품화하셨다. 문학적 상상력이 진실을 드러내는 데에 역사서보다 어떤 면에서 효과가 있는지. 
A.  그건 제가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다. 아마 한계도 있고 역사서가 하지 못하는 일도 할 거라 생각한다. 비록 가상의 인물이지만 개인의 내밀한 삶으로 들어가는 것은 역사서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대신 한계도 있다. 소설 장르의 특성상 해답을 줄 수가 없고, 실천 방안은 제시해줄 수는 없다. 근데 또 그것이 문학의 매력이다. 

Q. 번역의 시작을 굉장히 좋아한다. 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번역이라 칭하는 것으로 읽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소설로 쓰는 걸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앞으로도 그런 방식으로 쓰실 건지 궁금하다. 
A. 번역의 시작은 이년 전쯤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5개월 정도 머물었을 때 썼다. 실제로 제가 밤마다 맥주를 마시고 술에 취해 있었는데, 제가 살았던 스튜디오 아파트가 밖에서 문을 닫으면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다. 미국에는 전자키가 거의 없어 열쇠를 잃어버리면 못 들어가더라. 그런 경험이 다른 소설에 비해 많이 들어간 글이다. 그래서 떠도는 저의 심정이 좀 더 들어간 것 같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삶이 다 번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치만 번역은 완벽하지 않았고, 그런 느낌을 쓴 단편이다.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그냥 열심히 쓰고 있고,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초기작에 비해 작품이 더 좋아졌다는 의미는 아니고 제 세계가 많이 열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Q.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준다면. 
A. 그 방법을 알면 제가 더 잘 쓸 텐데……. 방법은 없고, 많이 읽는 게 좋은 것 같다. 사실 저의 경험이라는 것도 다양하지 않고, 소설이 제 얘기를 쓰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계속 상상하려면 적극적으로 읽어야 한다. 이상하게 독자는 점점 없어지는데 해마다 문예지는 일정 수 이상의 사람들이 공모를 한다. 표현의 욕구가 있기 때문일 것. 그렇다 보니 계속 글을 쓰는 게 정말 중요하다. 몇 시간씩 투자를 해야 쓰는 삶으로 굴러가기 때문에 일종의 노동 같다. 
요즘엔 계속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오히려 좀 순진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세상에 계속 호기심을 갖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오래 쓰는 게 힘들구나, 하고 얼마 전에 깨달았다. 

Q. 한국 사회에서 전업 소설가로 산다는 건……. 
A. 불가능하다. 

Q. 동료 작가들 글을 많이 읽으실 텐데 질투 날 정도로 잘 쓰는 사람도 있는지. 
A. 많다. 제가 구십 년대에 대학을 갔는데 그때가 한국문학의 르네상스였다. 김연수, 한강 작가도 참 좋아했고 표절 논란이 있었지만 한때는 신경숙도 좋아했다. 최근에는 황정은, 김애란 작가가 잘 쓴다고 생각하고 저보다 어린 김금희, 최은영 작가가 너무 잘 써서 질투가 나긴 한다. 

Q. 앞으로의 계획과 관심 있는 주제가 있는지. 
A. 출판 시장이 좋은 편은 아니기에 책 낼 때마다 빚진 것 같고 힘들지만 걔속 글을 쓰고 싶다.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니까, 쓰는 게 유일한 계획이다. 잘 쓰고 싶다. 소설을 쓴다고 해서 대단한 명예를 얻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어떤 문장을 선물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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