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까? 이는 함부로 확정지을 수 없는 담론이다. 인간이 살아가며 만나는 사건과 장소 등은 한정적이고,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에 태어나 평생을 해외에 나가지 않고 산 사람이라면 아마존의 열대우림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대한 감동을 절대 얻지 못할 것이고, 반대로 한국을 접해보지 못한 외국인들은 한국의 의복이나 음식 문화 등을 접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들은 접하는 모든 현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살아가고 있다.  

올해 1월 11일 문예지 미네르바의 “지성의 상상 시인선” 첫 자리를 차지한 김추인 시인의 시집 “오브제를 사랑한” 이 출판사 “문학의 전당” 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현재의 고정된 삶에서부터 달아나고자 하는 유목민적 욕망과 시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런 고통의 무게에 의해 내몰린 사막 등 변방의 정서를 묵직하게 담아내고 있다. 

김추인 시인은 1986년 현대시학을 통해 데뷔한 시인으로 “모든 하루는 낯설다” 와 “프렌치키스의 암호”, “행성의 아이들” 등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현재 “포엠포엠” 의 기획위원을 맡고 있으며 시집 “오브제를 사랑한” 으로 제9회 한국예술상을 수상하였다. 

“개인의 소망을 빌기보다는 전체의 생명과 우주를 생각하며 함께 사는 사회를 추구해요” 

김추인 시인이 단호하게 추구하는 가치는 바로 “근원성” 이다. 김추인 시인은 사회가 어둡고 삭막하게 변한 원인은 현대인들이 모두 근원에서 멀어져 각자의 길을 도모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서로를 위하는 상생의 삶을 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욕망에 의존하는 삶을 고집하니 썩어가는 사회가 됐다는 것. 때문에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강제로 교화할 수 있는 성격의 아니라 판단했기에 김추인 시인은 다른 방법을 모색하였다. 단순히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우주로까지 세계관을 확장시킨 것. 확장된 세계관을 통해 잘못된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독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 김추인 시인의 목적이다. 

<김추인 시인의 시집 "오브제를 사랑한". 사진 = 이민우 기자>

그렇기 때문에 김추인 시인의 이번 시집 “오브제를 사랑한” 에서는 이전 시집들과는 다른 시도가 엿보인다. 난해성을 띤 문장에서 벗어나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작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또한 소재와 제제 면에서는 우주, 과학, 미래사회 등으로의 확장을 도모했다고 김추인 시인은 밝혔다. 일반 독자들과 함께 폭 넓은 사유를 공유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런 김추인 시인은 지난 시집을 통해 우리의 생태환경과 이미 멸종된 생명, 또한 앞으로 멸종될 가능성을 지닌 위기종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특히 시집 “행성의 아이들” 에 수록된 시 “쓸쓸한 우화” 에서 시인은 “알록새뚝아 줌치늑대야 금뚜껍아” 라며 사라지는 것들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 시집을 통해서는 더 큰 거시적 시선을 가진 필요를 느꼈다는 것. 우리 주변의 삶 역시 우주적 시선에서 보면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다며 김추인 시인은 너스레를 떨었다. 때문에 시집 “오브제를 사랑한” 에 마지막으로 수록된 시 “씨앗” 에서는 씨앗이 거목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다루며 미시적, 거시적 시선의 방향을 바꿔나갔다는 것이다. 

또한 김추인 시인의 시 세계의 기저에는 시인의 다양한 여행 경험이 깔려있다. 특히 김추인 시인은 사막을 중심으로 많은 지역을 여행하였으며 이런 여행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사회가 마치 사막과도 같다” 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며 이 사회가 “어긋나고 비뚤어지고 경쟁이 팽배한 일종의 병동” 과도 같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김추인 시인의 시 중에는 “사막” 과 “모래” 가 적극적으로 사용된 시가 다수 있다. 본 시집의 48페이지에 수록된 시 “모래의 서식지” 가 대표적이다. 김추인 시인은 한 움큼 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며 스러지고 없어지는 성격을 지닌 “모래” 라는 소재를 통해 “이 사회의 현재 상황” 과 “사회현상” 을 그려내고 있다. 

한 생을 발뒤꿈치쯤에서 푸석푸석 밟히었을 날리었을 
그대의 고단한 생을 짐작해본다만 

어디서 와서 훑고 긁고 씹히다가 
어디로 떠나는 것인지 들판의 모래밭으로 넘어지고 있다. 

- “모래의 서식지” 의 일부

또한 김추인 시인은 미술적 이미지와 시어의 결합을 시도하였다. 표제작인 “오브제를 사랑한” 만 봐도 “매혹을 소묘하다”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또한 권옥연 화백의 유화 “타올을 든 소녀” 를 언급하며 그 색감과 오브제에 대해 논하고 있다. 

<타올을 든 소녀> 
아직 더운 김 날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독과 허무의 잿빛, 잿빛은 언제 봐도 눈이 부시다 제 본성의 색감으로 소녀를 감고 도는 추상의 오브제들도 빛난다 움직이는 수증기며 시계 소리 그리고 유리를 달리는 물의 발자국들이 
세상의 덧칠된 시간을 지우며 
존재의 물음을 던지고 있다 
절대 미감美感의 영속성에 대하여 

- “오브제를 사랑한” 의 일부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김추인 시인이 숙명여고에 재학하던 시절 원로 화가인 외숙부의 집에 얹혀 살며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고뇌와 작업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며 미술적 소양을 키웠다는 것. 김추인 시인은 이런 과정을 통해 미술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었으나 가진 돈이 없어 비싼 전시회에 방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때문에 무료 전시회나 공연, 인사동 거리를 전전하며 사물의 내면을 훔쳐보는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과 우주, 자연에 대한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탐구 정신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김추인 시인. 이런 시인의 문학정신과 대면하고자 한다면 “오브제를 사랑한” 을 읽어보도록 하자.

키워드

#N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