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의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2, 어떻게 살[生] 것인가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나는 서장에서 고전은 위기의 산물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의 고전 또한 마찬가집니다. 난세가 고전을 낳았습니다. 춘추전국시대를 무대로 [열국지列國志]가 나왔고, 진 멸망을 배경으로 [초한지楚漢志]가 탄생하였으며, 한말의 위기 상황에서 [삼국지三國志]가, 송대의 혼란을 틈타 [수호지水湖志]가 나왔습니다. 

왜 난세에 나온 고전들은 하나같이 소설, 그것도 대하장편소설들인지...우리의 경우도 일제 암흑기에 [임꺽정]이 나왔고, 7, 80년대 독재 시기에 [토지], [장길산], [태백산맥] 등 장편서사물들이 쏟아졌습니다. 서사는 하나의 가능세계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전복적 전망을 제시하는 역사적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난세는 정의가 무너진 세상입니다. 그러니 난세를 구원하겠다고 나선 제제다사와 영웅호걸들은 저마다 ‘정의justice'를 부르짖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동탁의 죄가 세상에 드러난 터에 우리가 대중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니 멀고 가깝고를 떠나 호응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이것은 의로움으로써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董卓之罪 暴於四海 吾等合大衆 擧義兵 而遠近莫不響應 此以義動故也

이 글은 조조曹操가 원소袁紹에게 써 준 글答袁紹의 서두 부분입니다. 원소는 한말의 명문귀족으로 당시 지주집단의 정치적 대표주자였을 뿐만 아니라, 돼지 같은 동탁타도동맹의 맹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저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 동맹사령관 아가멤논과도 같은 위인입니다. 그는 조조의 북방 통일 야심에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였으나 우유부단함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조조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의가, 정의라는 신조가 범용한 ‘보편성’을 지닌 모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의義’입니다. 이 의를 분해하면 '양羊'과 '나我'입니다. 즉 나에게도 먹을 것이 있어야 옳은 것이라는 인식이 새겨진 단어입니다. 정의는 밥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이런 '양羊'이 ‘크다大'면 매우 아름다울美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정의를 관장하는 여신을 디케Dike라고 합니다. 디케는 ‘둘’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의는 둘로 공정하게 나눈다는 사고에서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그것을 관장하는 수호자가 필요했기에 여신을 갖다 붙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의의 여신 디케가 한 손엔 칼을, 다른 한 손엔 저울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즉 칼은 강력한 수호의지를, 저울은 공정한 분배의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의가 이루어진 나라, 공화국이라는 말도 ‘물질res’을 ‘공유public’한다는 말이고 보면, 정의라는 인류의 이상적 가치는 이렇게 밥에서, 나눔에서, 공정한 분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지]도 이 ‘정의'를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물론 여기서는 ‘의리’에 더 가깝습니다. 제목이 주제를 제시하는 기능을 지닌 점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삼국지]의 본래 이름이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라는 데서 이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통속通俗’이라는 말은 역사적 사실을 부연, 재미있게 풀어 대중들이 알아먹기 쉬운 글로 썼다는 뜻입니다. 그 중에 ‘연의演義’라는 말은 ‘의義를 풀어놓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삼국지통속연의](*줄여서 [삼국지]라 하겠습니다)의 중심인물이 바로 유비劉備입니다. 즉 [삼국지]의 주제는 바로 유비를 통해, 이 유비를 충실하게 따르는 관우關羽, 장비張飛, 조운朝雲, 공명孔明 등을 통해 펼쳐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정의의 기준은 무론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후손으로서, 쇠잔해진 한왕실漢 王室을 부흥復興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삼국지]의 주제는 제갈량이 융중에서 펼친 삼분계三分計에 잘 드러나 있듯 ‘한왕실 부흥’입니다-여기, 유씨 ‘혈족’을 중심으로 한 고대봉건제가 몰락하고 있다는 것은 곧 고대국가체제가 막을 내린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의병義兵을 일으켜 한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들과 싸워야 하는 것은 그들이 부르짖는 정의의 기본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 특히, 충의忠義의 화신이라 불리는 관우關羽의 활약은 매우 놀랍고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국지]의 실질적 주제는 바로 이 관우-그를 ‘미염공美髥公’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그의 수염이 유난히 길고 아름답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만큼 그가 화제의 중심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통해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관우, 그는 엄격하게 보았을 때 주군主君에게 충직하기 이를 데 없는 봉건 기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우가 하나의 이상적 캐릭터로서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는 거, 바로 여기에 저 세르반테스의 다소 허무하고 엉뚱한 ‘돈키호테’와는 다른 맛이 있는 것입니다. 관우! 하면 우리는 과연 충의忠義를 연상합니다.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결의형제하던 일, 유비라는 주군과 신하들과의 군신관계, 특히 관우가 조조의 포로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면서도 주군을 잊지 모해 유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서사적 재미는 비록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감동 이상의 ‘극적’ 케미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이런 유비-관우를 한 축으로 하고, 조조를 다른 한 축으로 깔고 있는 게 삼국지의 기본구도입니다. 여기, 유비-관우가 선을, 정의를 대변하는 만큼 조조는 악을, 불의를 대변하는 캐릭터입니다. 다시 말해 삼국지는 정의와 불의, 저스티스와 인저스티스라는 마고스적 대립을 그 기본 축으로 하는 대하서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의’라고 하는 도덕이 왜 그리 중요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명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는 금언처럼, 사회적 신뢰성과 논리적 정당성에 기초하고 있는 도덕은 행동의 근거를 설명하는 기본 윤리이기 때문입니다. 좀 원론적으로 말해, 한 사회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행위준칙으로서의 도덕이라는 '금기taboo'가 일상에서 풍속과 만나야 합니다. 여기, 도덕과 풍속이 조우하는 최초의 장소가 가정입니다. 가정은 한 사회가 존속하는 최소 단위입니다. 따라서 이 가정이 파괴되면 사회는 혼란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정의는 결국 가족윤리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런 도덕윤리는 기본적으로 가치판단의 문제입니다. 가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시비판단을 전제로 합니다. 주의할 것은 가치가 사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삶의 기초가 되는 이런 도덕률이 하나의 기둥처럼 잘 버텨줘야 사회는 안정을 유지하고 오래도록 그 존속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도덕률을 사회적인 관계로 매우 견고하게 정립해 놓은 것이 바로 유교의 ‘그’ 삼강오륜입니다. 

삼강三綱, 세 가지 지켜야할 벼리

1.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하고
2. 부위자강父爲子綱, 아버지는 아들의 벼리가 되어야 하며
3. 부위부강夫爲婦綱,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되어야 한다

오륜五倫, 다섯 가지 지켜야 할 도덕

1. 군신유의君臣有義,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하고
2. 부자유친父子有親,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하며
3. 부부유별夫婦有別,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하고
4. 장유유서長幼有序,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하고
5. 붕우유신朋友有信,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삼강오륜을 비롯한 유교의 전통도덕은 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아시아적 가치an Asian value'의 핵심으로, 오늘 우리에게도 가문의 풍습 이어가기, 웃어른 공경하기, 부모님께 효도하기, 조상 섬기기 등 아름다운 미풍이자 좋은 양속으로 부단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 삼강三綱에서 ‘강綱’은 벼리를 뜻합니다. ‘벼리’는 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 오므렸다 폈다 하는 줄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물에서 벼리가 없으면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할 수 없는 것처럼, 사회도 이런 벼리와도 같은 도덕률이 없으면 그 사회를 온전하게 지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삼강은 사실 ‘충신忠臣’과 ‘효자孝子’와 ‘열녀烈女’를 양산하기 위한 당위적當爲的 이데올로기입니다. 여기, ‘위爲’는 정부출연기관과 대기업에서 성희롱 교육을 ‘의무화mandatory’하고 있는 것처럼 법적 강제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당위ought to가 존재be를 압도할 때, 삶이 거세됩니다. 당위는 삶을 말살합니다The 'should be' kills life. 우리는 시인 백석이 ‘정문촌旌門村’을 통해 ‘예교가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노신의 말처럼, 인간의 기본 욕구를 부인하고 마른 장작처럼 뻣뻣한 성리학의 낡은 기호로 가득 찬 정문촌이 어떻게 인간을 거세시키는지 매우 뛰어나게 풍자하고 있는 장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륜五倫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상綱常의 규범으로서 이 오륜의 첫째가는 덕목이 바로 ‘의義’입니다. 즉 모든 도덕 중에서 정의(=의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대본의식大本意識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유비-관우라는 봉건적인 군신관계를 통해 충의의 본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삼국지]는 기껏해야 국뽕신화에 불과한 작품입니다-여기,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에서 따온 말로, 과도한 애국주의를 비아냥할 때 쓰는 이 시대의 비어입니다-자, 여기 이 국뽕 신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우리의 관우가 가장 가까이 하는 책이 바로 [춘추경春秋經]이었다는 거, 그런데 이 [춘추경]이 바로 공자가 노나라 지배계층의 역사를 ‘대의大義’라는 엄정한 기준에 의거해서 다시 쓴 역사서였다는 거-‘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그리하여 이 대의를, 주군을, 나라를 위해서라면 내 한 목숨조차도 초개草芥-풀과 티끌같이 바칠 수 있다는 거, 바로 여기에 [삼국지] 인생론의 그 이데올로기적 허구성과 본질이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보것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무질서와 야만이 뛰놀던 폭력의 시대였습니다. 하나의 문명으로서 도덕질서가 무너진 폭력의 시대는 머 그야말로 못할 게 없는 시대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문명은 억압이라던 프로이트의 명제가 금줄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아무나 닥치는 대로 성적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 사랑의 경쟁자나 자기를 방해하는 사람은 주저 없이 죽일 수 있고, 남의 물건을 임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멋지고 만족스럽겠는가! 물론 이렇게 되면 당장 최초의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소망을 품고, 내가 남들을 조금도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나를 존중해 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문명의 제한이 사라질 경우 무한히 행복해 질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한 사람뿐이다. 그 사람은 온갖 권력수단을 장악한 폭군이나 독재자일 것이다."

 - 프로이트, [문명속의 불만], 열린책들

이런 무질서와 야만은 일단 진시황에 의해 ‘외적’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진은 곧 멸망했습니다. 이것은 국민적 결속, 감정적 연대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진의 법은 난세에 그 위력을 발휘하였지만 나라가 통일되자 그 폐해가 더욱 심각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조직과 구성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법적 합리성 못지않게 감성적 연대성이라는 ‘내적’ 요인 또한 중요한 기둥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편 이어서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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