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아킬레스의 분노Achilles's Wrath

나, 호메로스의 현재성

지난 시간에 이어...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이번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왜 서양의 고전적 전범classics으로, 하나의 오래된 청동거울로서 여전히 세계를 비추며 계속해서 읽히고 있는지 호메로스의 현재성을 중심으로 야그해 보것습니다. 나는 독일의 나치Nazi 시대를 배경으로 한 어느 책을 읽다가 다음 대목을 보고 내 눈을 다시 씻어야 했습니다.

“우리의 첫 대화가 있던 날 한나는 내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키케로의 연설문 그리고 물고기와 바다를 상대로 한 노인의 싸움에 대한 헤밍웨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문맹인 어느 연상의 애인과의 사랑과 죄에 대한 매혹적인 소설(베른하르트 슈링크, [더 리더The Reader])에서 내 눈을 자극한 것은 호메로스Homeros가 교과서의 메인 텍스트로, 다시 말해 국가이데올로기 장치의 핵심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것이 일단 교과서로 편입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지배담론a dominant discourse으로 수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이 여기, 호메로스의 서사시처럼 교과서가 되어 하나의 이데올로기장치이자 국가기구가 된다면 그것은 끊임없이 호명되고 공유, 재전유 되어 알게 모르게 사회구성원의 의식, 무의식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근대 부르주아 국가들의 국가이데올로기 속에 공통적으로 전유되고 있는 본질적 테마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 민족주의입니다. 둘째, 자유주의입니다. 셋째, 경제제일주의입니다. 넷째, 인본주의입니다.

자, 여기 근대부르주아국가들의 이념적 테마들이 무엇보다 ‘민족주의nationalism’라는 이념을 그 공통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합니다. 즉 ‘민족nation'을 하나의 이념적 단위로 내세우고 있는 근대 국가의 후예들이 지금도 여전히 자신들의 이념을 정당화하기 위한 국가이데올로기 장치의 하나인 교과서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제일 우선하여 배치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나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서 훌륭한 답을 구한 바 있습니다.

“호메로스는 시인의 정치적 기능을 알려주는 명백한 사례이며, 그는 ‘모든 그리스인의 교육자’였다.”

자, 여기 인간적 자유를 성취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정치적 행동political action의 중요성을 설파한 세기적인 명저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바로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단순하게 시민적 교양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선택된 하나의 국가이데올로기 장치의 하나였으며, 그 정치적 목적은 구체적으로 ‘교육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잘 알다시피, 교육은 한 사회를 유지, 계승하기 위한 재생산 체계입니다. 즉 교육은 한 사회를 유지, 계승하기 위해 주입 기능과 문화 보존 기능, 사회 질서 유지 기능(피에르 부르디외, [재생산])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리하여 사회질서를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수용해야 할 가치들을 의도적으로 선택, 배제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존재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담론의 질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든 담론의 생산을 통제하고, 설명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배하는 일련의 과정들-담론의 힘들과 위험들을 추방하고, 담론의 위험한 사건들을 지배하고, 담론의 무거운,위험한 물질성을 피해가는 역할을 하는 과정들-이 존재한다.”

왜 어떤 담론은 수용되고, 왜 어떤 담론은-가령 소피스트들처럼- 금지되고 배척되는가. 이는 그대로 성리학을 지배 담론으로 채택한 조선사회가 불교를 배척한 거와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장 고귀한 진리는 더 이상 담론이 무엇인가에 또는 그것이 무엇을 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물론 한 사회의 유지, 존속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고, 이를 위해 마치 조선의 세종이 풍속의 안정을 위해 [삼강행실도]라는 오늘의 윤리교과서를 한글로 제작, 배포하였던 것처럼 사회구성원에 대한 지배적 담론의 교육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이데올로기 장치가 바로 교과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근대국가의 민족주의라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아직도 지배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에서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여전히 호명되고 있는 것에서 근대민족주의의 기원으로서의 그 무엇what이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담겨 있다는 논리적 가정을 세울 수 있습니다 즉 호메로스가 아직도 서구에서 그 고전적 전범의 위치를 누리먼서 서구인들의 정서에 공유, 재전유되고 있는 데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통하는 그 무엇을 담고 있음을 상정할 수 있다는 야그입니다.

과연 그럴까여...

자, 그러먼 인자부터 저 아득한 고대 그리스 세계로의 고전 여행을 떠나 보것습니다. 

잘 알다시피, [일리아스]는 전쟁서사입니다. 전쟁은 중대한 일입니다. 개인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이고, 국가에게는 존립과 패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참고로 손자는 병법孫子兵法 서두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전쟁이란 나라의 중대한 일이다. 죽음과 삶의 문제이며, 존립과 패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孫子曰: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즉 손자는 전쟁은 참혹한 댓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전쟁을 일으켰다면 믿으시것습니까. 이건 믿거나 말거나 야그가 아닙니다. 이야기로만 본다면 트로이 전쟁은 일단 미에 대한 질투가 발단이 된 것 같습니다. 제우스의 딸 테티스와 펠레우스-이 둘 사이에서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스가 태어납니다-의 결혼식에 초대 받지 모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새긴 황금사과를 잔칫상에 던지는데 이것이 어마어마한 일의 시작이 됩니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서로 그 사과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다투자 인간들 중에 제일 미남인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받자며 그를 찾아갑니다. 사과를 자기에게 주면 헤라는 '아시아에 대한 통치권'을, 아테네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절세미인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파리스는 결국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고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당시 스파르타를 다스리던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고향 트로이아로 데려가 조국을 전쟁과 파멸 속에 끌어들입니다. '파리스의 심판'으로 인해 제우스의 아내 헤라와 전쟁의 신 아테네는 트로이아를 미워하여 그리스군 편에 서고 아프로디테는 트로이아군을 돕습니다. 그리하여 트로이아 전쟁은 자신들이 아끼고 미워하는 인간을 두고 벌이는 신들의 대리전쟁이 됩니다.

이렇게만 본다면 이건 무슨 매혹적인 로망 같기도 하고 잔혹한 전쟁 서사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만 아무튼 그리스인의 이야기 기질이 대단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리아스]는 [삼국지]처럼 무척 재미있을 뿐 아니라 세심한 디테일과 웅대한 스케일 등 생동감 있는 표현, 그리고 형식적으로도 완벽한 짜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BC 12세기 청동기시대에 일어났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과연 청동기시대에 이런 이유로 전쟁이 일어났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의 실질적인 이유가 뭐냐 이겁니다.

이거 알면 재미없지만 환상에 빠지면 안 되므로 트로이 전쟁의 실질적인 원인을 톺아 보것습니다. 전쟁은 왜 일어날까요? 전쟁은 쉽게 말해 재물을 약탈하는 행위입니다. 

오늘날에는 집과 토지 등 부동산과 주식, 펀드, 저축액 등 주로 금융 소득을 기준으로 부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합니다. 사실 이라크전은 환율전쟁이라는 말이 있던 것처럼, 실제로 이것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게 현실입니다. 

근대에는 어땠을까요. 토지 역시 중요했고 공장, 원료, 광산, 철도, 선박, 기계 등 물적 재산이 주요 재산 가치였습니다.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진 것도 바로 이런 근대적 물적 재산을 늘리기 위해 원료공급처와 상품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봉건시대는 또 어땠을까요. 봉건시대는 토지만이 거의 모든 필요한 재화를 생산했고, 그래서 사실상 토지만이 부의 전부였습니다. 부의 척도는 단 한 가지, 즉 보유한 토지의 양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자연히 토지 쟁탈전이 계속 벌어졌고, 그래서 봉건시대가 토지 전쟁의 시대였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다.

자, 그렇다면 고대에는 왜 전쟁이 벌어졌을까요. 앞에서 한 이야기처럼 과연 한 여인 때문에 국가 간의 전쟁이 벌어졌을까요.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지만 너무도 현실감이 없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렇게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바로 여기에 이야기의 불가사의한arcane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잠시 야그한 것처럼 트로이-트로이는 ‘일리오스’라고도 불립니다. 모두 왕의 이름에서 유래한 말입니다-전쟁은 경제적인 것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그리스 지역은 바위로 된 지역이고 농사짓기에 매우 척박한 땅입니다. 올리브나 포도주 등이 주산물입니다. 그러니 주식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바다로 나가 무역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인구가 점점 폭발하는 청동기 농업혁명단계에 들어서자 본격적인 해외 식민도시를 건설해야만 했습니다. 그 중에 오늘날 터키 서남 해안이 주 경쟁자였습니다. 트로이가 대표적인 부자 도시국가였습니다. 트로이가 부자가 된 것은 저 지중해와 흑해 연안을 지키면서-신라의 장보고처럼-무역의 이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흑해 지방은 지금도 세계 밀 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요농산물 공급처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놓지 모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쨌든 트로이가 지중해로 가는 길목에서 통행세를 챙겨 부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식량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그리스로는 사생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사생결단의 결과가 바로 역사적인 ‘트로이’ 전쟁입니다. 말이 트로이 전쟁이지 실은 그리스의 침략입니다. 늘샘이 학문적 양심을 걸고 야그하지만 트로이 전쟁은 식량문제라는 고대적 현실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지 결코 한 여인 때문에 빚어진 전쟁이 아닙니다.

2편 이어서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키워드

#N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