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소설] 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제8장 증발하는 남자들

뉴스페이퍼에서는 장희태 소설가의 장편 소설을 "미리 죽는 인간"을 격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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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큰아버지를 기다리며 유언장의 마지막 문장을 몇 백 번이고 읽는다. 하지만 여덟시가 되고, 여덟시 반이 지나고, 아홉시가 되어도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손목시계를 벽에 집어던진다. 싸구려 부품들이 아라비아풍의 기하학적 곡선에 부딪쳐 산산조각난다. 
 
신발을 신는데 팬티차림이다. 옷장은 텅 비어있고, 유라가 사준 오렌지색 셔츠는 구급차에 실려 간 아버지가 입고 있다. 무대에서 일하기 전, 유라는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하루 열 시간씩 앉지도 못하고 옷을 팔았다. 합격 통보를 받던 날 그녀는 일을 그만두며, 자신이 근무하던 랑방 매장에서 월급의 3분의 1이나 되는 셔츠를 내게 사주었다. 나는 그걸 입은 채 첫 번째 런웨이에서 긴장과 환희로 땀범벅 된 그녀를 있는 힘껏 안았고, 우리는 그 날 무대를 이야기하며 여섯 번이나 했다.
 
유라에게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넘어진 쓰레기봉투에서 흘러나온 택시기사 유니폼을 집어 든다. 촌스러운 셔츠와 바지 주름이 베일 듯 빳빳하다. 나는 아버지가 생에 절반동안 입었던 옷에 태어나 처음 몸을 꿴다. 팔다리는 짧고 허리는 유라의 작은 머리통이 들어갈 만큼 헐렁하다. 죽은 아버지가 차고 있던 벨트를 끝까지 졸라매고, 큰길로 나가 택시를 탄다. 수상한 눈초리로 백미러를 흘깃거리는 기사를 노려보며 공장으로 향한다. 막 순찰을 돌던 경비가 랜턴을 든 채 고개를 갸웃거린다.
“상원이? 아직도 못 찾은 건가?”
불빛이 어둠을 뚫고 망막까지 닿는다. 광선처럼 쏟아진 강한 빛에 눈을 찡그린다.
“아직도라뇨?”
“그게 꽤 됐거든. 참 순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온종일 커피 한 잔 건네는 사람이 없다니까.”
“언제부터요?”
“오래됐지. 여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부터 그랬네, 지각한번 안 하는 사람이 그때부터 쭉 보이질 않았어, 그래도 그렇지.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 삼일 만에 상원이를 무단결근으로 해고했다네. 그렇게 잘리면 퇴직금도 거의 못 받거든. 사십년을 꾸준히 일했는데…” 
얼어붙은 밤바람이 소매 위로 드러난 맨살을 스친다. 나는 소름 돋은 양팔을 감싸 안는다. 매일 보아온 동료조차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경비원은 큰아버지가 동생을 죽인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자네 괜찮나? 안에서 약이라도 가져다줄까?”
수다스러운 경비다. 밤에 혼자 있는 것이 외로운 것이겠지. 불빛에 언뜻 드러난 주름을 보니 적성에 안 맞는 일을 오래도 했다. 나는 대꾸 없이 고개를 숙이고 공장을 빠져나온다. 견딜 수 없는 추위와 가려움이 온몸을 덮친다. 빌어먹을 아토피, 큰아버지가 없으면 빚을 갚아도 집을 팔수조차 없다. 내가 탈락된 그 세계를.
 
 
괴물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경찰서였습니다. 그곳을 나올 때 갑작스레 퍼붓는 눈을 맞으며 두 번 다시 올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돌고 돌아 회귀한 곳이 여기라니 우습지 않습니까? 그 날 난생 처음 큰아버지를 기다린 것처럼, 경찰서에 들어간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곳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좁았습니다. 공기는 눅눅했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낡은 책상과 의자들이 음울한 기운을 풍겼죠. 이른 새벽 작은 기차역의 대합실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오늘 이곳은 방음이 훌륭해 어떤 소음에도 방해받지 않네요. 선생님도 온전히 제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여 주시고, 혹여나 놓치는 것이 있을까 녹음까지 합니다. 사랑받는 기분이에요. 마음에 듭니다. 나쁜 짓을 하자 그제야 저를 찬찬히 들여다봐주시는군요. 거긴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과 추궁하는 사람 모두 형식적으로 지친 표정이었고, 저마다 솟구치는 어떤 감정들을 억누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여경이 저를 발견하자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택시비 떼이셨어요?”
제가 아버지 유니폼을 입은 꼴을 선생님도 보셨어야 하는데, 장담하건데 그건 제 인생 최악의 패션이었습니다. 겨울에 7부 셔츠와 바지, 통은 턱 없이 크고, 여하튼 큰아버지의 실종 신고는 이미 반년 전에 접수된 상태였습니다. 실종이 아닌 가출로 말입니다. 14세가 넘은 남성은 법적으로 사라질 수 없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범죄와 연관된 명확한 증거를 직접 제시하지 못하면 실종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가출처리 되어 돌아오지 않는 남성이 한해 만 명이 넘는다던데, 그렇게 증발한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죄송합니다. 찾으면 곧바로 알려 드릴게요. 연락처 그대로죠?”
여경은 전화번호를 세 호흡으로 나누어 또박또박 확인시켜준다. 나는 셔츠 소매를 움켜쥐며 웃음을 참는다. 그건 죽은 아버지의 전화번호다. 늘 큰아버지의 한신택시 조끼 앞판에 커다랗게 적혀있던 열한자리 숫자, 유품 보관함에서 울릴 아버지의 구식 핸드폰. 큰아버지를 찾았다고 하면 아버지는 죽어서도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겠지. 
“장애인입니다 큰아버지는······.”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접수됐으니까 기다리세요. 전화 드리겠습니다.” 
 
기다리라니? 대체 뭘 얼마나 더 기다리라는 말인가? 어떤 것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집에서 쫓겨난 십년간 가족들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으니까. 열세 살의 나는 고인 시간 속에서 영원히 오지 않을 그들을 기다렸다.
 
 
아버지는 틀림없이 경찰의 전화를 간절히 기다렸을 겁니다. 기계치인 그는 생업인 택시 내비게이션만 간신히 다루는 정도라, 경찰의 전화만 다른 전화벨로 설정해 놓는 법은 몰랐겠죠. 아버지는 매일 수십 수백 번씩 전화가 울릴 때마다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한순간도 핸드폰을 놓을 수 없었겠죠. 하염없이 기다리다보면 모든 소음들이 진동이나 벨소리처럼 들리고, 나중에는 여경이나 큰아버지의 환청을 듣기도 했을 겁니다. 물을 따르다가, 혼자 라면을 끓이다가, 직원이나 손님이 아버지를 부를 때, 뒤차가 클랙슨을 울릴 때도 말입니다. 변기 물을 내리면서조차 큰아버지의 목소리가 하수구 너머로 멀어지곤 했겠죠. 아버지는 혼동 속에서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 비대했던 몸이 고작 반년 만에, 썩은 나뭇가지처럼 말라비틀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 꼴로는 저에게 엄마를 닮아 소심하다는 말 따윈 하지 못했을 텐데, 그걸 살아있을 때 보지 못한 게 얼마나 아쉬운지 모르실겁니다.

때로는 슬프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죽은 일 자체보다, 그도 저처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는 게 말입니다. 제가 알지 못하고, 한 번도 제대로 만지지 못한 누군가가 오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저 존재만 했다 사라졌다는 게, 그리고 그가 다름 아닌 제 아버지라는 사실이 저를 이상한 기분으로 만들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건,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었단 걸 깨달은 순간부터 비로소, 그에게 애틋함 비슷한 것을 느낍니다. 그전까지는 그냥 그런가보다. 아버지인가보다 했거든요. 사실 저는 아버지에게 일방적으로 애정을 구걸했습니다. 그는 한 푼도 나누어 주지 않았지요. 저는 그 이후로 누구에게도 애정을 빌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마음은 동냥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걸 뼛속 깊이 알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여경에게 테이프로 이어붙인 유서 조각을 보여주었습니다. 의아해하는 경찰에게 유서 뒷면의 고지서를 가리키면서, 큰아버지가 버스카드 한 장 만들 줄 모르는 모자란 사람인데 이런 빚을 진 것이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물론 큰아버지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건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었지만, 경찰은 눈에 띄게 수상한 점이 있어야만 조사를 해줄 테니까요.
하지만 여경은 반상원씨는 범죄경력이나 정신 병력도, 벌금기록조차 없는 성실한 모범시민이라고 하더군요. 빚을 지면서 무언가를 사거나, 가족끼리 채권을 주고받는 것쯤은 늘 있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어요.’ 훈계 비슷한 말까지 들었습니다. 우스운 일 아닙니까? 괴물을 찾기 위한 제 첫 번째 노력은, 그렇게 서류 한 장조차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기다리는 일은 이제 질색이다. 경찰서를 나오니 큼직한 눈이 쏟아진다. 주홍색 가로등 불빛에 언뜻언뜻 비치는 눈송이가 미숙의 호박목걸이처럼 빛난다. 나는 손을 뻗어 녹아내리는 보석을 움켜쥐며, 신기루처럼 사라진 큰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를 찾기 전에는 아무것도 손에 잡힐 것 같지 않다. 호스트클럽 디아즈에 전화를 건다. 
“저 그만 둘게요.”
“왜? 스폰이라도 생겼어?”
“아니오. 오늘 죽었어요. 이번 주 주급은 실장님 쓰시고.”
번호를 차단한다. 에이전시에는 알릴 필요도 없다. 어떻게든 무대에 서고 싶어 안달인 놈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며칠 안 나가면 잊어버릴 테지. 우상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스스로 노예가 된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한다. 손바닥에 녹은 눈을 핥으며 주머니를 더듬는다. 유라다. 어둠 속에서 상기된 목소리가 잡힐 듯 선명하다. 왜 통화중이냐며 대뜸 짜증을 부린다. 유라는 미안할 때면, 긴장감에 짖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겁 많은 강아지처럼 먼저 화를 낸다.
“장례식은 어디서 하니?”
나는 더듬거리며 병원 이름을 댄다. 사실 생각도 못했다. 반년 만에 또 다시 장례식인가. 삼 일간 슬픈 표정을 하고 멀건 갈비탕과 소주를 축내던 때가 떠오른다.
“어디야?”
목소리를 기다리지만 유라는 대꾸가 없다. 전화는 어느새 끊어져있다. 유라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어쨌든 그녀 말대로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 왜 내 아버지에 대한 애도를 꼭 정해진 방식으로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2012년 1월 4일 20시경 반상호님 사망하셨습니다.
당직 의사에게 간단한 사망선고를 듣고, 병원 측 장례지도사에게 아버지 죽음에 대한 긴 견적을 듣는다. 고인이 가시는 마지막 길에 최대한의 예와 정성을 다 하겠다. 돌아가신지 오래되어 사후강직 탓에 복원사가 애를 많이 먹었다. 고독사한 시신이 대게 그렇지만, 특히 아버님은 한겨울인데도 부패 정도가 심해 피부를 대체 복원했다. 그래도 요즘 많이 들어오는 눈길 교통사고 환자처럼, 손을 못 쓸 정도는 아니어서 이제 말끔해지셨다. 확인해보시겠느냐. 
 
나는 대기표와 영수증을 받고 복도 의자에 앉는다. 아마 낮에 사인한 서류에 깨알만한 글씨로 시신 복원에 대한 동의가 있었겠지. 영안실 사용료는 하루에 오십만원이 넘는다. 거기에 시신 복원과 빈소 사용료, 기타 장례비용을 포함하면 천만원이 훌쩍 넘을 것이다. 죽은 아버지가 생에 가장 비좁은 방에서 묵는 하룻밤은, 아버지 평생 그 어떤 날 보다 비싸다. 하룻밤에 천만 원, 차마 눈 뜨고는 누릴 수 없는 사치다. 
 
영안실 앞은 죽은 가족을 확인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시신을 보고 나와 쓰러지는 할머니를 손자와 며느리가 부축한다. 나는 통곡하거나 침묵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냉장고 속 시신들과, 드라이아이스 연기 속을 미끄러지듯 걷는 모델들을 번갈아 떠올린다. 마지막에 아버지의 이름이 호명되고 나는 혼자 들어간다. 아버지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 나라는 사실에 목의 흉터가 따끔거린다.

영안실 안은 상상보다 훨씬 쾌적하고 넓다. 아버지 혼자 생활하던 거실보다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장례지도사가 냉장고에서 철제 침대를 꺼낸다. 서늘한 냉기를 품은 하얀 시트 안쪽에서, 독한 약품 냄새가 달려든다. 나는 흥분한 소를 유인하는 투우사처럼 천을 단번에 치운다. 창백한 아버지는 말끔하게 소독되어 있고, 표정도 아까와는 달리 온화하다. 나는 살짝 올라간 아버지의 입꼬리를 다시 내린다. 
 
앙상한 가슴과 배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린다. 어떤 장기의 울림도 느껴지지 않는다. 죽은 몸의 정적은 완강해서, 동참하거나 말을 걸 수 없다. 한 발 뒤에서 손을 모으고 선 지도사가 주의를 준다.
“조심하세요. 피부가 물러있어 강하게 누르시면 안 됩니다.”
나는 그에게 수표 한 장을 쥐어준다. 
“마지막으로 단장 시켜드리려구요. 오 분이면 됩니다. 가족은 저 밖에 없어요.”
지도사는 대꾸 없이 수표를 주머니에 넣는다. 나는 반쯤 벗겨진 아버지의 머리칼을 포마드로 빗어 넘기고,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손톱을 잘라준다. 황당하다는 표정의 지도사가 가방을 바라보며 묻는다.
“그런 걸 가지고 다니십니까?”
나는 손톱다듬기로 거친 단면을 매끄럽게 문지른다. 
“직업상 사람을 많이 만지는데, 얇은 옷이나 스타킹을 터치할 때 올이 나가면 곤란하거든요.”
지도사는 고개만 끄덕거리고 더 묻지 않는다. 사람을 만진다는 걸 어떤 식으로 이해한 걸까.
“입고 있는 유니폼도 아버지 겁니다. 핸들을 잡기 전엔 꼭 손을 단정히 하셨어요. 낚시매듭을 짓기 위해 엄지와 검지는 바짝 깎지 않았지만, 6단짜리 다듬기를 순서대로 문질러 표면이 새틴처럼 부드러웠습니다. 희고 얇은 면장갑 손가락이 한 번도 구멍 나지 않았으니까요.” 
지도사는 졸고 있다. 나는 아버지의 손톱을 렌즈통에 담고, 나나 엄마와 달리 얇은 입술을 벌린다. 동굴 같은 입 속에서 찬바람이 맴돈다. 구긴 유서를 가만히 집어넣고 아래턱을 들어 벌어진 잇새를 다시 맞물린다.
 
아버지에 대한 내 방식의 애도는 끝난다. 남은 건 큰아버지를 찾는 일과, 오늘 밤의 길고 지루한 의식뿐이다. 장례는 이틀만 치르기로 한다. 수의를 입힌 아버지를 관에 눕히고, 빈소를 대여하고, 유품으로 받은 아버지 핸드폰으로 부고를 알린다. 흰 셔츠 단추를 잠글 때 빈소에 구두 소리가 들린다. 검은 정장으로 갈아입은 유라가 다가와 넥타이를 매준다. 수천 번 매듭짓기를 연습한 상처 많은 손이 기다란 천을 맵시 있게 엮는다. 무대에서와는 다르게 칼라에 바짝 붙여 목을 조르듯, 유라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우리는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식장에서 준 일자핏 바지와 촌스럽게 큰 라펠의 재킷을 걸친다. 유라가 한걸음 떨어져 내게 워킹을 시킨다. 빈소를 한바퀴 돌자 유라가 박수를 친다. 
“네가 입으니까 오트쿠튀르같다.”

유라는 완전히 아버지 딸처럼 행동한다. 내 팔에 상주 완장이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여미고, 자신도 완장을 찬다. 조문객에게 일일이 맞절을 하고, 위로의 말을 듣거나 건네며 눈가를 적신다. 부조금 봉투를 관리하고 중간중간 떡과 과일을 돌리는 것 까지, 유라는 평생 허드렛일만 해온 사람처럼 움직인다. 바쁘게 꿈틀거리는 좁은 등을 보며 내가 모르는 유라에 대해 생각한다. 창백해 보이는 메이크업에 색조 화장은 일체 없고, 피어싱도 다 사라져 있다. 기사들이 둥근 어깨를 두드리며 한마디씩 한다.
“이렇게 멋진 아들딸이 있는데, 아까워서 어떻게 눈을 감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다들 전혀 몰랐다는 기색이다. 나는 유라의 귀에 속삭인다.
“죽고 나서 돈 주면 뭐해. 장례비만 비싸지지. 십시일반 걷어서 헌납하는 꼴 아냐.”
“조용히 해 석”
나는 두 팔을 들며 어깨를 으쓱한다.
“네네. 런웨이도 좋지만 장례식장 하나 가지고 싶다. 사람은 매일 죽고 태어나니까. 대대손손 걱정 없겠어.”
 
아버지는 엄마와 나 이외의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인간이었던 것 같다. 빈소에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기사들은 대부분 소주도 마시지 않고, 정성스레 향을 사르고 갈비탕만 한 그릇씩 비운다. 새벽 세시가 조금 넘었을 때 삼백명이 넘는 조문객이 다녀간다. 

유라가 부조금 봉투가 담긴 함을 빈소에 딸린 작은 방에 붓는다. 두 명이 간신히 누울 정도의 관 같은 방이 두툼한 흰 봉투 수백개로 가득 찬다. 우리는 봉투를 침대나 이불처럼 덮고 눕는다. 땀에 젖은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사이로 봉투가 들어찬다. 넥타이를 풀며 중얼거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틀이나 삼일이 아니라 삼백일쯤 할 걸 그랬어.”
유라의 길고 가느다란 손발이 봉투 속에서 갈퀴처럼 찰박인다. 
“어렸을 때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부러웠는데,”
유라가 내 목을 끌어안고 흉터에 입을 맞춘다. 우리는 키스한다. 봉투에서 지폐들이 흘러나오고, 그 위에서 축축하고 군살 없는 육체가  천천히 얽힌다. 옆 빈소에서 희미한 흐느낌이 들린다. 우리는 신음을 참으며 아침까지 끊임없이 뒤엉킨다.

 

장희태 소설가

1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 당선, 2012 창작과비평 봄호에 시안, 쥐와 함께 잠들다 수록 2015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출판한 신예작가에 해달이 조개를 건네는 이유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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