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은 억울한 피해자, 미투는 익명에 숨지말아야...

이미지 = 한송희 에디터
이미지 = 한송희 에디터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지난 3일 윤정모 작가 등 여성 문인 36명은 최영미 시인의 ‘서울시 성 평등상 대상’ 수상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서울시는 앞서, 최영미 시인이 “‘괴물’ 시를 발표하여 문단 내 성폭력과 남성중심 권력문제를 폭로했다며, 미투운동이 사회적 의제로 확산되는 데 이바지했다”고 발표했다. 그렇기에 올해의 성 평등 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성 문인 36명은 최영미 시인의 ‘괴물’로 폭로된 고은 시인의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그녀가 상을 받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

뉴스페이퍼와의 통화에서 윤정모 소설가는 “문단 내 성폭력 문제는 정말 근절되어야 할 일”이지만, 최영미 시인은 과거부터 불순한 행동으로 많이 알려져 왔다며 그녀의 미투는 “사리사욕을 위해 유명인을 저격한 노이즈마케팅”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평등을 위해 아무런 여성운동도 한 적 없는 최영미 씨에게 평등상을 주는 것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어놓은 격”으로 “오히려 여성운동의 미래에 저해가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윤 소설가는 “여성으로서, 문인으로서 큰 모욕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또한 “미투 운동이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이 제대로 나서야 한다.”며 “여성을 위한다면 애먼 사람을 잡지는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고은 시인과 관련해 최영미 시인을 제외한 추가 폭로들(동아일보, SBS)에 대해서는 “최근에는 검증되지 않은 가짜뉴스가 많다.”며 “우리는 따질 수 있는 상대에만 대처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며 “그런 사항이(성추행을 당했다면) 있다면 숨지 말고 자신들이 정정당당하게 나와서 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36명의 여성 문인들은 “고은 시인은 지난 1970년대 중반부터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한국문학 100년의 상징적 존재”라며 “고은 시인의 생애와 작품이 얻은 가치를 여성운동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진실이 아닌 풍문만으로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최영미 시인의 ‘성 평등상 대상’ 수상은 취소되거나, 진실규명과 공적조사 이후까지 보류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정모 소설가가 의견서 제출 후 윤희천 여성정책담당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 이승철 시인
윤정모 소설가가 의견서 제출 후 윤희천 여성정책담당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 이승철 시인

여성 문인 36명의 서명이 담긴 의견서는 최영미 시인이 수상을 한 3일 윤정모 소설가와 한복희 작가, 이승철 시인 3인이 대표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윤희천 여성정책담당관에게 전달했다. 전달을 받은 윤희천 여성정책 담당관은 “추후 최영미 시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될 경우 최영미 시인에게 수여된 성 평등상 대상 선정 취소와 함께 현재 철거된 고은 시인의 ‘만인의 방’을 다시 개관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날 의견서 제출에 동행한 이승철 시인은 “한국 문학 백년의 상징적 존재인 고은 선생의 업적이 최영미 시인의 미투로 일거에 말살되고 추방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판단 하에 “한국작가회의 윤정모 작가가 의견서의 초안을 작성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의견서에 서명한 36명의 작가들에 대해서는 “작가회의의 회원을 주축으로 고은 시인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모였다.”며 “작가회의가 아닌 작가들도 목적이 같다면 함께 했다.”고 전했다. 

이승철 시인은 이렇듯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동참해준 것이 감탄스럽다.”며 “이번에는 여성 문인들만 참여했지만, 뜻이 맞는 남성 문인들도 입장을 밝힐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법적 공방을 진행하진 않았지만, 현재 고은 선생은 변호사를 선임한 상태로 안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영미 시인은 작년 황해문화에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고발한 시 ‘괴물’을 발표하여 꺼져가던 문단 내 성폭력 문제에 다시금 불을 지폈으며, 문단의 권력구조를 폭로했다. 최 시인 이후에는 동아일보를 통해 두 명의 여성 원로 시인이 고은 시인에 대해 익명으로 추가 폭로했으며, 이후에도 다수의 양심고백이 이어졌다. 논란이 거세지며 당시 고은 시인이 가입해있던 한국작가회의는 고은 시인의 징계위원회를 열겠다고 전했으나, 조치를 취하기 전 고 시인이 탈퇴했다. 이에 한국작가회의는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며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고은 시인은 최영미 시인의 미투 이후, 언론과 일절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아래는 여성 문인 36명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과 참여자들의 명단이다.

 

서울시의 ‘성 평등상 대상’ 선정은 취소되어야 한다 
― 최영미 시인의 ‘성 평등상 대상’ 수상에 대한 여성문학인 36인의 입장 

우리는 성 평등 사회를 희구하는 노력을 적극 지지한다. 이것이 공허한 수사가 아님은 우리가 그동안 써온 작품들이 증명한다. 한반도에서 남성 중심의 폭력문화는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왔고, 민주화운동 과정에서도, 또 작가들도 이를 방치하거나 등한시해온 게 사실이다. 서울시가 ‘성 평등상’을 제정한 취지도 이 같은 문화적 잔재를 청산하자는 데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울시가 제정한 상이 책임 있고, 사려 깊게 운영되어 그 숭고한 뜻을 널리 확장해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런데 2018년 6월 20일 최영미 시인을 성 평등 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는 소식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최영미 시인이 문학창작활동을 통해 (…) 우리사회의 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괴물」시를 발표, 문단 내 성폭력과 남성중심 권력문제를 폭로해 미투운동이 사회적 의제로 확산되는 데 이바지해 올해의 ‘성 평등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우리는, 최영미 시인과 시「괴물」에 관련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사실확인과 조사 절차를 생략한 서울시의 수상 결정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문학적 진실성에 관한 논란이다.  
   
처음 문제가 불거진 2018년 2월6일 JTBC 인터뷰 당시 최영미 시인은 자신의 시「괴물」에 대해 문학적 형상이라고 말했다. 문학적 형상이란 사실의 문제가 아닌, 본인이 체험한 모든 것의 융합적 결과로 이루어진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인터뷰 진행자의 의도적인 질문에 호응하여 구체적인 인물을 거론했고, 그에 따라 시로 형상화된 행위의 주체가 고은 시인으로 특정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논란의 와중에서 문학적 평가는 실종되고 시 속의 사실(fact)만이 문제되면서 시 속에 거론된 장소와 인물은 물론 특정 출판사 망년회 자리의 관계자까지 논란으로 끌어들여 증언과 반론을 야기하게 되었다. 시적 가치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도 사실관계의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최영미 시인이 2018년 2월 27일자 동아일보 기고문을 통해 발표한, 지금으로부터 23~24년 전(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 인사동 어느 주점에서 벌어졌다고 하는, <고은 성추행 목격담>에 대해서는 발표 다음날 인사동 탑골주점 한복희 사장이 그 같은 사실이 없었다는 취지로 공개적 발언과 증언을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괴물」시 속의 출판사 편집자로 지목된 이 역시 시 속의 내용이 자신이 겪은 바와 다르다고 증언하여 지금도 진실공방과 후속조처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성 평등의 대의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확산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진실로 염원해 왔다. 그리고 그를 위한 운동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운동의 알맹이를 이루는 진실성과 대의의 기초를 이루는 사실성의 확보라고 본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 성 평등상 대상 선정의 경우 심각한 논란에 휩싸인 사실성, 진실성 문제를 너무나 가벼이 여기고 있어서 심각한 염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의 성 평등과 남성중심 권력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지나간 억압의 시절에 못지않은 시련과 인내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이다.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의 허리에 감아서 사용할 수는 없다. 결국 이 운동은 진실과 사실에 기초하여 차분하고 꼼꼼하게 전진해나가지 않는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만을 건드릴 뿐 목적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그 중대한 의미마저 탈각시킬 수 있다. 
   
더불어 우리는 논란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 상을 시상했을 때의 치명적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영미 시인이 특정한 고은 시인에 의한 성 폭력의 실체는 아직 사실관계도 확정되지 않았다. 가령, ‘서지현 검사’의 경우에는 법조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하게 적시되었고, 이에 대한 법적인 조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고은 시인의 경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특정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내용조차 모호한 상태이다. 문화관광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한 조사위원회도 최영미 시인을 포함한 그 누구도 고은 시인에 대한 고발이 없는 상태로 종결되었다. 이 단계에서 매스컴을 통해서만 문제를 거론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는 행위는 한마디로 사실관계도 밝히지 않고 공을 치하하는 ‘불공정’과 절차상의 오류를 낳을 뿐만 아니라 더 큰 오류와 불공정으로 이어지는 관문이 될 수 있다. 

고은 시인은 지난 1970년대 중반부터 군사독재 타도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하고 한국문학 100년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고은 시인의 생애와 작품이 얻은 가치를  여성운동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진실이 아닌 풍문만으로 폐기하는 결과를 빚었을 때 우리 여성문학인들이 모욕감과 굴욕감을 느낌은 물론 이것이 여성운동의 대의마저 손상할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다들 기억하듯이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21일 서울도서관 3층 서울기록문학관에 고은의 <만인의 방>을 개관하여 여타 지자체에 한 발 앞서 문화적 가치를 선점했다. 이를 많은 언론사들이 보도하여 시민사회에도 크게 회자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미투 운동이 전개되자 이를 즉각 철거했고, 그것이 고은의 문학적 성취를 우리 사회에서 퇴출시키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 날렵한 행보 끝에 지난 6월 20일, 서울시가 성 평등상 수상자로 최영미 시인을 선정 발표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문화적 가치를 이해하는 지자체의 모습을 보기는커녕 문화의 원천 콘텐츠를 그저 홍보 수단이나 교환가치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관가의 독선을 보고 만다. 

어떤 시대, 어떤 권력도 문학과 문학인의 인류사적 성취를 도외시하는 태도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두고두고 조롱의 대상이 되어 왔다. 지금 시점에서 최영미 시인에게 성 평등 대상을 시상하는 일은 서울시가 고은의 문학을 한국사회뿐 아니라 세계문학사에서 퇴출시키자는 운동에 앞장서고자 했다는 역사적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번에 서울시가 선정한 최영미 시인의 ‘성 평등상 대상’ 수상은 취소되거나 진실규명과 공적조사 이후까지 보류되어야 한다.  
  
2018년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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