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그룹 탐사팀이 최초로 촬영했다는 돈스코이호 함명 [사진 = 신일그룹 제공]
신일그룹 탐사팀이 최초로 촬영했다는 돈스코이호 함명 [사진 = 신일그룹 제공]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울릉도 앞바다에는 150조 원 어치의 보물선이 가라앉아 있다!” 신일그룹이 지난 15일 금화와 금괴 150조 원 어치의 보물이 실린 러시아 선박 ‘돈스코이’ 호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일 ‘보물선’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고, 관련 주가 급등하는 등 ‘보물선’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 또한 끓어오르고 있다.

‘보물선’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보물선 광풍’은 처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2000년 군산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다는 일본의 보물선 ‘쾌창환’ 사건이다. 금괴를 싣고 가다가 미군의 폭격을 맞아 군산 앞바다에서 침몰했다는 일제의 보물선 ‘쾌창환’의 소식은 연일 언론과 방송에 회자됐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보물선’에 매료됐다. 그러나 ‘보물선’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보물선 사건’은 IMF 이후 자본에 대한 욕망이 극에 달했던 한국사회의 씁쓸한 일면으로 남았다.

99년 9월 23일 동아일보 23면
99년 9월 23일 동아일보 23면

당시 ‘보물선’에 열광했던 이들과 사회의 모습은 지금에 와서 찾아보기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데, 그 모습을 소설로 그려낸 작가가 있다. ‘알쓸신잡’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김영하 작가이다. 김영하 작가가 문예지 “현대문학”에 2004년 1월 발표한 단편소설 “보물선”은 군산 앞바다의 보물선 사건을 모티프로 보물선을 둘러싼 당시 사회의 욕망을 보여준다.

보물선에는 ‘재만’과 ‘형식’이 등장한다. 대학의 ‘역사연구회’에서 만난 둘은 정반대되는 삶을 살게 되고, 펀드매니저가 된 재만은 ‘캡틴’ 등과 만나 주가조작을 벌이며 어마어마한 이득을 손에 넣는다.

“아무도 조작이니 작전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각자 동원가능한 물량을 그가 지시한 종목에 묻고 그의 퇴각신호를 기다렸다. 바로 그 다음날부터 그 종목만 연달아 상한가를 치기 시작했다. 사흘째가 되자 개미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 곧 주가는 폭락했고 개미들은 깡통을 찼다.” - 김영하, ‘보물선’, “오빠가 돌아왔다”, 211쪽

재만은 ‘부자 되세요’라는 노골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말이 인사말처럼 쓰이던 시기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런 재만이 형식과 만나게 된 것은 ‘캡틴’이 주최한 투자 설명회에서였다. 형식은 군산 앞바다에 보물선이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보물선닷컴’이라는 회사의 CEO로서 투자 설명회에 참여한다.

“이 병원선은 1945년 5월 8일, 생체실험으로 유명한 731부대, 다들 아실 겁니다, 바로 이 부대 소속이었다는 겁니다. 병원선으로 위장했지만 이 배에는 만주와 조선에서 약탈한 금괴 100여 톤이 실려 있었는데 그만 미군 B29의 폭격을 받아 군산 앞바다 말도 부근에서 침몰했습니다. 이 자료는 일본의 쿠마모또 대학 도서관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더군요.” - 214쪽

‘형식’은 음모론을 진심으로 믿는, 어찌 보면 순수한 사람이다. 형식은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동상이 일본의 음모로 인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믿거나,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억누르기 위해 백두대간에 말뚝을 박았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 이순신 동상의 진실을 파헤치겠다며 동상 위로 올라가 태극기를 휘날렸던 형식은, 재만과 만날 시점에는 군산 앞바다의 보물선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보물선사업의 천문학적 수익성에 대해 떠들어댈 것이다. 몇조원의 가치를 지닌 금괴들이 인영되는 날엔 그 사업에 투자한 모든 사람들이 경마의 999배당보다 더 큰 이익을 실현하게 된다는 것을, 파워포인트로 작성한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폼나게 보여줄 것이다.” - 217쪽

캡틴과 재만은 형식의 보물선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부실 건설회사를 인수해 형식을 대표이사로 취임시키고 화려하게 사업설명회를 개최한다. 유명 연예인들이 동원되고, 언론의 입에 연일 회자되며 보물선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은 끊임없이 커져만 간다.

“형식이 바지 사장으로 있는 한생건설의 주가총액은 이미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다는 금괴 100톤의 가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전형적인 폭탄돌리기였다. 재만은 홍차에 꼬냑을 부어 들이켰다. 아마 내일이면 주가가 갑자기 빠지기 시작한 것을 안 투자자들이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하겠지. 조바심을 내며 회사로 몰려가 도대체 언제가 돼야 그 전설의 보물선이 인양되는 거냐고 따져물을 것이다. 개미들 중 몇몇은 언론사에 제보할지도 모른다. 자기 무덤을 파는 짓이지만 그들은 결국 그렇게 한다. 군산 앞바다에 시사프로그램 제작진이 나타나 아무 것도 없는 망망대해를 찍어가면 그걸로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회사는 성난 투자자들에 점거당해 업무가 마비될 것이다” - 222쪽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군산 앞바다의 보물선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희생자만을 만들어냈을 뿐이었다. 김영하의 소설 “보물선”은 IMF 이후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일확천금의 환상만을 쫓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김영하 소설가 [사진 = 뉴스페이퍼]
김영하 소설가 [사진 = 뉴스페이퍼]

울릉도에서 발견되었다는 돈스코이 호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욕망에 사로잡힌다면 어떻게 될 지는 명확하다. 지난 18일 금감원은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어 투자자 피해가 우려된다.”며 “묻지마식 투자를 자제해야 한다.”고 밝히기에 이르렀으며, 19일에는 매장물 추정가액의 10% 가량을 해수부에 발굴보증금으로 내야하며, 이에 따라 15조원의 인양보증금을 내야한다고 보도됐다. 실질적으로 인양이 불가능에 가깝게 된 것이다. 일확천금의 욕망에 사로잡혀 ‘보물선’이 눈앞에 아른거린다면 김영하의 소설 “보물선”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김영하 소설가의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에 수록되어 있다.

김영하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 표지
김영하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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