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재정안정화 논의’에서 ‘노후빈곤예방, 노후소득보장 논의’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본지는 국민연금재정재계산 보고와 공청회 등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급효과가 있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찾아가는 노력을 함께 하려한다. 이 노력의 일환으로 31년간 공적연금을 연구하고 운영한 공적연금 전문가이며 ‘사람을 살리는 공적연금연구소(사·공·연) 소장이신 이재섭 사회정책학 박사의 남다른 시각을 연속하여 게재하고자 한다. 

[뉴스페이퍼 = 이재섭 박사] 지난번 나의 칼럼을 보고 어떤 분이 이런 글을 보내 주셨다. “답답한 기금고갈 보도를 보면서 국민연금(기여금)을 더 오래 내고 더 늦게 받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홍보하기 위한 애드벌룬으로 ‘기금고갈’을 띠우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중략) 용돈 수준의 국민연금을 국민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한 공무원들의 안락한 노후를 보장해 주는 것처럼 국가가 시원한 대책을 만들어 달라. 그럴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손을 떼라! 관여는 (크게)하면서 (재정)책임은지지 않는 국가는 필요 없다. 국민 불만만 조장하며 위원회 발표문만 써대는 언론에 울화통만 터진다.” 

그 분은 연금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섬뜩할 정도로 연금제도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 특히, “용돈연금은 누구도 원치 않는다.”는 말과 “공무원들에게 제공하듯 안전한 노후소득대책을 국가가 세워달라는 말”은 국가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한편 “그럴 능력이 없으면 손을 떼라.” “관여는 크게 하면서 책임은지지 않는 국가는 필요 없다.”는 말은 깊이 새겨들어야 할 뼈아픈 말이다. 국민 불안을 조장하는 언론을 탓하고는 있지만, 국민연금개혁의 모든 화두가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가 아닌 ‘연금기금고갈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치중하는 데 대한 불만일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일 이후 재정계산위원회의 내용이 알려진 이후 국민연금제도를 폐지하거나 선택적 가입을 하도록 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900건 이상 제기 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노후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공적연금제도를 폐지하라고 청원하는 나라는 없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국민들의 행동이 연금제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 탓 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가 공표는 안하고 있지만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는 매우 낮다. 2007년도에 국회에 보고된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12.8%였다. 불신이 얼마만큼 깊은지 알 수 있다. 주요 제도에 대한 국민 불신은 정부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 나아가 정부와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진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2003년 인터넷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번진 ‘국민연금폐지운동’을 기억한다. 당시 정부가 발의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논의를 중단시킬 정도로 심각했다. 당시 재정재계산위원회는 재정안정화만을 염두에 둔 3개의 제도개선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정부는 이 건의안에 의거 재정안정화에 방점을 찍은 국민연금법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민연금폐지운동’등 국민들의 불신과 비판에 직면하였고 정부입법안은 자동 폐기되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 TV토론에서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위해 급여수준을 축소해야 한다는 이회창 후보 주장을 ‘용돈연금’을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집권이후 입장을 바꿔 보건복지부가 건의한 재정안정화 개혁안을 수용하고 추진하였다. 당시에도 지나치게 넓은 국민연금 사각지대(국민연금을 못 받거나 미미하게 받는 사람들)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고, 지나치게 낮은 실질소득대체율도 문제가 되고 있었다. 결국 5년에 걸친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겪으며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함으로써 2007년에야 일단락되었다. 기초노령연금은 그 후 기초연금이 되어 노후빈곤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모양은 갖춰졌다. 하지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2007년 당시 60%에서 2028년까지 40%로 매년 0.5%p씩 축소되고 있다. (현재 45%)       

국민연금은 선세대, 현세대, 미래세대를 모두 망라하고, 국민 전체를 포괄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보장제도다. 따라서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국가 정책에 대한 신뢰와 직결된다. 또한 국민연금제도의 논의는 국민연금제도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공무원연금 같은 특수직역연금과의 형평성, 기업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활성화와 개인연금 실효성 제고 등 수 많은 쟁점들이 함께 다뤄져야 국민들의 삶에 유용한 대안이 나올 수 있다. 또한 연금기금 규모가 700조를 육박하여 기금이 나라경제와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해 졌다.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국민연금기금의 정치적 관여문제 등 기금의 투자 기준과 적절한 통제 문제도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금개혁의 사회적 논의는 짧은 시한을 정하여 조급히 추진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의 목적과 역할에 대한 진단, 기초연금,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 근로자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전반에 대한 통합적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하지만 매번 재정재계산 보고시점만 되면 국민연금의 ‘기금고갈론’, ‘재정불안정론’이 블랙홀처럼 모든 중요한 이슈를 흡수해버린다. 아니면 ‘기금 수익률 저조’, ‘주식투자 실패’ 등 어쩌면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문제가 마치 연금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인 양 호도되기도 한다. 이런 양상이 지속되면 사회적 갈등만 심화되고 균형 있고 타당한 정책논의를 진행하기 어려워진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집어가며 다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공적연금 전체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방향 재정립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 재정계산위의 임무는 끝났다. 위원회의 보고서는 모두 의미가 있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빈곤완화와 소득보장 측면에서 집어야 할 진단이 누락된 아쉬움이 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9월까지 정부안을 만들어 국민들께 보고하겠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국회로 이 사안이 넘어갈 것이다. 국민연금의 문제는 여야, 진보 보수의 문제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나아가 재정문제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국민연금 논의의 출발점과 귀결점은 ‘노후빈곤완화’와 ‘노후소득보장’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진지하게 논의를 하겠다는 의지를 행정부나 입법부가 보여줄 때 국민들은 그 논의과정과 결과에 신뢰를 보내줄 것이다.    

 (다음 연재 : 국민연금제도의 현주소) 

이재섭 박사
이재섭 박사


이재섭 박사 이력 

사람을 살리는 공적연금연구소(사·공·연) 소장
(전) 공무원연금공단 공무원연금연구소장 
사회정책학 박사 (영국 University of Kent) 

esilkro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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