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95년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 교수로 부임한 이후 지난 23년 동안 제자들을 육성하고 집필 활동을 이어온 이은봉 시인이 정년을 맞이했다. 정년퇴임에 맞추어 35년 시력(詩歷) 결산이라 할 수 있는 시선집과 평론집, 연구집이 발간됐으며, 지난 8월 25일에는 정년퇴임을 겸한 출판 기념회가 5.18기록관 7층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이은봉 시인은 1953년 충남 공주 출생으로, 한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숭실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삶의문학”에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를 발표하며 평론가로, 1984년 창비의 무크지 “마침내 시인이여”에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데뷔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과 부이사장, 창공클럽회장, 신동엽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한성기문학상, 유심작품상, 한남문인상, 충남시인협회상, 가톨릭문학상, 질마재문학상, 송수권문학상, 시와시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은봉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이은봉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이날 출판 기념회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총 세 권으로, 시선집 “초식동물의 피”, 평론집 “시와 깨달음의 형식”, 연구서 “생명의 시 활기의 시” 등이다. 시선집 “초식동물의 피”는 10권의 시집과 1권의 시조집에서 126편을 엄선했으며, 평론집 “시와 깨달음의 형식”은 이용악, 오장환, 서정주 등의 시세계와 시 정신을 살펴본 글을 비롯해 작고 시인부터 현재 신진, 중진 시인들의 작품 세계, 다양한 시집 서평 등 총 35편이 실려 있다. 

마지막으로 연구서 “생명의 시 활기의 시”는 이은봉 시인의 제자인 박일우 교수와 백애송 시인이 공저한 책으로, 이은봉 시인의 시세계를 탐구한 해설, 평론, 논문, 대담 등을 담았다. 50편의 글과 대담 4편, 부록을 포함해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출판 기념회에는 뉴스페이퍼 이민우 대표가 사회를 보았으며, 원로작가인 이명한 소설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나종영 시인, 광주전남작가회의 박관서 회장 등 문학계 인사들과 대학 시절 이은봉 시인을 가르쳤던 공주사범대 조재훈 명예교수, 광주대학교의 이기호, 배봉기 교수, 이은봉 시인의 제자 등을 비롯한 250여 명의 하객들이 자리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내빈들의 축사 [사진 = 김상훈 기자]
내빈들의 축사 [사진 = 김상훈 기자]

조재훈 명예교수는 한남대학교 국어국문과에서 이은봉 시인과 처음 만나게 된 시기를 회상했다. “학부에서 만난 학생이 이은봉인데, 재주가 있고 발랄하고 밝은 학생이었다.”고 이야기한 조재훈 교수는 “문화예술에는 정년이라는 게 없다. 퇴임과 관계없이 좋은 작품을 계속 이어나갈 바란다.”고 축사를 전했다. 

나종영 시인은 이은봉 시인과 오랫동안 교류하며 동인활동을 함께 했는데 벌써 정년이 됐다고 회상하며, “아는 것 같은데 다 모르고, 다 모르는 것 같은데 알고 한 것 같다.”고 감상를 이야기했다. 이어 박관서 시인은 “문학에 대한 꿈을 늦게 가졌는데 그 와중에 ‘실사구시의 시학’ 등 이은봉 시인의 책과 만났다. 일상의 삶 속에 문학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이후 삶을 통해 문학을 보고, 세계를 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며 이은봉 시인을 가리켜 “마음과 문학에 일조를 해주신 선생님”이라고 이야기했다.

- 전, 중, 후기로 나눠 본 이은봉 시인의 시세계

축사와 약력 소개에 이어 지역 문인들과 제자인 조남희 시인의 축시 낭송이 이어졌으며, 연구서 “생명의 시 활기의 시”를 공저한 백애송 시인이 이은봉 시인의 시 세계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백애송 시인은 이은봉 시인의 시 세계를 전기와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표 중인 백애송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발표 중인 백애송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전기 시의 특징은 “자본주의 산업화 사회에 대한 저항과 비판”이다. 이은봉 시인은 1980년대의 역사적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80년대 당시 한국사회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백애송 시인은 “자본주의와 산업화로 인해 물질적인 면뿐 아니라 정신적 면까지 피폐해진 당시 민중의 삶을 뜨겁게 보듬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중기 시에서는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이 펼쳐진다. 백애송 시인은 “중기의 시에서도 여전히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여전히 지속되지만, 절망과 서러움을 주된 정서로 하고 있고, 이런 감정들이 사랑과 희망으로 환원되어 시에 그대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후기에 이르러서는 “구체적인 삶에 바탕을 두면서 생명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백애송 시인은 “이은봉 시인은 모든 사물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 이미지를 찾으려 노력했으며, 후기에 쓰여진 시는 삶의 근원, 본질에 수렴되고 있다.”고 해설했다. 

아울러 “시를 통해 지속적으로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노력하고 현실에서 극복되어야 할 것들을 시를 매개해 탐구해 시의 언어로 형상화하여 보여주고자 하는 것.”과 “소외된 약자들의 절망과 좌절을 위로하고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가운데 희망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이은봉 시인이자 이은봉의 시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광주, 제 문학의 전부... 광주민주화운동 없었다면 시 쓰지 않았을 것’

행사 말미에 진행된 강회진 시인과 이은봉 시인의 대담에서 이은봉 시인은 “광주가 제 문학의 전부”라고 표현하며, 광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은봉 시인은 “광주민주화운동이 80년에 일어났는데, 그 운동이 없었다면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됐거나, 모교에서 다른 과목 교수를 했을 것 같다.”며 광주민주화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고, 특히 시작(詩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했다. 광주민주화운동 후 동인 단체를 만들게 되고, 군사독재와 싸우는 시절을 거쳤기에, “광주가 없었으면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강회진 시인과 이은봉 시인의 대담 [사진 = 김상훈 기자]
강회진 시인과 이은봉 시인의 대담 [사진 = 김상훈 기자]

이은봉 시인은 자신의 저서 80%가 광주에서 거주하며 쓴 것들이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같이 고민하며 많은 책들을 쓰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의 반이다”는 말을 인용한 이은봉 시인은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문학에 대한 정교한 생각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라며 광주대학교에서의 시간이 소중했다고 말했다. 

행사 말미에 이은봉 시인은 “어느 시인이 ‘나이 들면 가장 큰 병이 고독이요, 가장 무서운 적이 고독이다’는 말을 하셨다. 고독을 화두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많은 생각을 했다.”며 “일주일 동안 요일별로 외롭지 않으려고 프로그램을 많이 세웠다. 화요일에는 틀림없이 광주에 올 것이고, 하루는 농토를 마련해 농사를 지으러 갈 것이다. 또 하루는 세종시의 친구들과 시 공부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다. 

“인생을 전반부 중반부 후반부로 나누면 후반부에 의해 삶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한 이은봉 시인은 퇴임 후 ‘세종마루 시낭독회’와 무크지 ‘세종시마루’를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며, 특히 계간지를 목표로 ‘세종인문’을 창간, 운영할 계획이다.

이은봉 시인 정년퇴임 및 출판 기념회 [사진 = 김상훈 기자]
이은봉 시인 정년퇴임 및 출판 기념회 [사진 =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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