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역사적 아픔에 작가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지난 9일 수원시 행궁광장 인근 박터널에서는 이런 고민을 안고 제주 4.3을 문학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는 제주도의 작가들과 만나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제2회 수원한국지역도서전을 맞아 준비된 제주 4.3 특별전 “4.3이 머우꽈 : 시인과의 대담” 행사이다.

왼쪽부터 노지영, 이종형, 김경훈. 사진 = 육준수 기자
왼쪽부터 노지영, 이종형, 김경훈.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대담에서 이종형 시인은 제주 4.3이 가진 학살의 아픔을 짚고, 이를 작가들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행사의 진행은 노지영 평론가가 맡았으며 제주작가회의의 회장이며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아픔들”을 통해 4.3의 아픔을 다뤄 5.18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종형 시인과, 마당극과 시집, 라디오 시나리오집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주 4.3을 다룬 김경훈 시인이 참여했다. 

이종형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이종형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이종형 시인은 “저는 제주 4.3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세대는 아니다.”만, 윗세대가 트라우마에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며 현재는 고인이 된 자신의 큰 외삼촌을 예로 들었다.이종형 시인은 어릴 때에는 늘 술에 취해있는 외삼촌이 무섭게만 느껴졌지만, 자라면서 “건강한 사내의 삶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망가져가는 역사적 흐름”을 읽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 4.3과 일제강점기 징용, 한국전쟁 등 수많은 참상을 목도한 큰외삼촌은 맨 정신으로는 아픔을 견딜 수 없어 술로 마음을 달랬던 것이다. 

이를 비롯해 4.3의 아픔에 시달리는 어른들을 보며 성장했기에 이종형 시인은 “4.3이 과연 무엇이며, 문학인인 나는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가 자신이 문학을 하는 뿌리 깊은 문제의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현재는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 

제주 4.3 시인과의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
제주 4.3 시인과의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쓴 이종형 시인의 첫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은 올해 5.18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상의 주관처인 5.18 기념재단은 “5.18과 4.3의 역사적 맥락이 닿아있음을 고려하여, 국가폭력의 아픔을 담백하게 승화”시켰다며 이종형 시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종형 시인은 5.18과 4.3은 시간과 공간만 다를 뿐, 국가 권력의 “어느 지역의 양민들 정도는 없애도 좋다는 끔찍한 사고방식”에 의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됐다는 같은 맥락성을 가졌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제주 사람이 오일팔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며, 이종형 시인은 거창과 여순 등에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수많은 진실이 묻혀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런 학살들에 대해 이 시인은 “한국사회의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제물로 바쳐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흘린 피는 결국 어디에선가는 겪어야 할 일이었으며, 그 장소가 제주도였을 뿐이라는 의견이다. 이는 각 학살의 피해자들이 특정한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닌,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희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견이다.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어떤 반석 위에 살아가고 있는지 알기 위해 학살 사건을 올바르게 기억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 

이종형 시인은 학살의 아픔에 문학인이 취해야 할 궁극적인 태도로 지나온 역사를 바로 알되, 그에 대해 한없이 슬퍼하기 보다는 그 기억을 딛고 넘어서는 자세라고 이야기했다. 때문에 이 시인은 자신과 동료 문인들은 앞으로도 제주 4.3 문학을 계속 해나갈 것이며, 다만 너무 어둡지 않은 태도로 다뤄나가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노지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노지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행사의 사회를 맡은 노지영 평론가는 이런 이종형 시인이 첫 시집으로 5.18문학상을 수상한 일은 매우 뜻 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특히 작년에 5.18문학상의 심사자와 수상자가 친일문인 기념 문학상의 기수상자라는 논란이 일었던 점을 언급하며, “문학상은 누가 줄 것인가, 누구에게 줄 것인가가 시인에게도 문학상에도 계보가 된다. 이종형 시인의 수상으로 인해 앞으로 5.18 문학상의 의미도 깊어진 셈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종형 시인은 베트남 전쟁을 통해 학살의 아픔을 겪었던 베트남 작가들과도 교류를 진행 중이라 밝혔다. 제주작가회의를 매개로 베트남과 제주도의 작가들이 서로의 국가에 번갈아 방문하며, 아픔을 확인하고 문학적인 행사를 여는 등의 교류이다. 

이종형 시인은 교류 과정에서 베트남에는 한국군 증오비라는 비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동료 문인들과 함께 그곳에 방문해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직접 가본 증오비에는 ‘미 제국주의 용병 남조선 군인’들에게 ‘자손만대 잊지 마라’는 말이 남겨져있었다. 이 시인은 “이를 보는 순간 4.3과 시기와 장소만 다르다 뿐이지, 데자뷰 같아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며 베트남과 교류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아픔을 넘어서, 양국 간 평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제주 4.3 시인과의 대담 단체사진. 사진 = 육준수 기자
제주 4.3 시인과의 대담 단체사진.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두 시인과의 대담은 수원한국지역도서전에 방문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끝을 맺었다. 행사에 참여한 시인들은 나이든 문인 뿐 아니라 젊은 문인들까지 제주 4.3 등 학살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길 바란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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