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의 작가들이 한데 모여 아시아가 안고 있는 상처를 살피고, 우호적인 아시아 시민의식을 제고하기 위해 2008년부터 시작된 “동아시아문학포럼”이 지난 17, 18일 진행됐다. 포럼은 ‘동아시아문학포럼 한중일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교보문고, 대산문화재단이 공동 주관했다. 

18일은 ‘2018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의 둘째 날이었다. 이날 오전 세션에는 한국의 권여선 소설가, 중국의 츄화둥 작가, 일본의 나카지 교코 작가가 참여하여 이번 심포지엄의 주제인 “21세기 동아시아문학, 마음의 연대”에 대한 기조발제를 진행했다. 

권여선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권여선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발제에서 권여선 소설가는 지난 5월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을 언급했다. 버닝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두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소설의 줄기가 자신이 영화를 만들며 고민해온 한국 청춘들의 불안과 절망에 대한 고민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권 소설가는 한국 청춘에 대한 고민의 실마리가 수십 년 전 쓰인 일본 소설과 상통하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세계 중심에는 한국의 386세대와 비견되는 ‘전공투 세대’에 대한 고민이 있기 때문”이라며, 문학을 통해 느끼는 동질감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선 소중한 경험의 공유”라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문학에는 여러 국가를 연결하는 튼튼한 다리로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권여선 소설가의 생각이다. 권여선 소설가는 이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세대를 들여다보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대란 운명이 아니지만, 때로는 운명의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에, 문학을 하는 작가는 “자기 세대를 형성한 조건들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그것이 자신을 어떻게 한계 짓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권여선 소설가는 자신은 ‘386세대’에 속한다고 소개했다. 386세대란 1990년대에 30대였고, 80년대 학번이며, 60년대에 탄생한 세대를 말한다. 이들은 다른 세대에 비해 인구수가 압도적으로, 한국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세대이다. 

386 세대에 대해 권 소설가는 “식민 지배나 전쟁의 경험 없이 순탄한 성장과 교육을 받은 전후 첫 세대이며, 기성세대의 기대와 희망을 한 몸에 받고 자란 교육열의 수혜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가능한 시기에 집안을 일으켜 세운다는 과도한 부담을 진 피해자들”이라는 복합성을 띠고 있으며, 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 하에서 초중등 교육을 받았다는 정체성의 어둠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공을 명분으로 사상 검열을 당하고, 가부장적이고 집단주의적 문화 속 조직의 비윤리성 등이 내면화되고, 성차별과 개성의 억압 등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하며 성장한 세대라는 것이다. 

동아시아문학포럼 둘째 날 기조발제가 진행 중이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동아시아문학포럼 둘째 날 기조발제가 진행 중이다. 사진 = 육준수 기자

권 소설가는 이것이 386세대 문학적 비극이라며, 정치 경제 문화에서 중추로 자리 잡은 386세대지만 문학에서만은 자신을 표현하고 설득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이야기했다. ‘386세대만의 문학’이라 할 만한 것을 갖지 못했고, 386이 낳은 문제로 인해 한국문학계는 지지부진함에 빠져 있었다는 것. 

이때 한국문학계에 강한 충격을 가한 것은 최근 10년 간 한국의 현실이라고 권여선 소설가는 말했다. 2008년 용산 참사에서 시작돼 2014년 세월호로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사건들과 국민적인 분노,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의 유례없는 역동성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문학적 고뇌와 돌파 가능성의 모색을 강제했다는 설명이다. 

권여선 소설가는 시대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이런 상황들을 탐색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 이 시대의 문학을 대표하고, 동아시아가 연대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는 생각을 전했다. 

또한 “증오는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정신을 파괴한다.”며 “더 강하고 불의한 것들을 증오하기보다 그것들이 암묵적으로 혐오하고 배제하고 억압해온 것들을 더욱 사랑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한 것들을 죽여 없애기보다는, 그것들이 스스로 고개를 갸웃거리도록 기반을 허물어뜨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소설가는 “그런 낭비는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며 “문학의 일, 소설의 일이 이와 같은 것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일본 작가 나카지마 교코. 사진 = 육준수 기자
일본 작가 나카지마 교코. 사진 = 육준수 기자

한편 나카지마 교코는 ‘마음의 연대’란 “문화를, 기억을, 역사를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며 권 소설가의 의견에 일부 동의했다. 또한 나카지마 교코는 소설이나 시, 희곡 등 문학작품은 우리에게 체험하지 못한 역사를 체험하게 하고 가질 수 없던 기억을 갖게 할 수 있다며, “우리는 동아시아 각지에서 탄생한 문학을 향유함으로써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고 공통의 문화와 교양을 가질 수 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세계를 확대함으로써 마음속에 연대를 위한 진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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