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혼자 밥을 먹는 것을 무척이나 곤혹스러워했다. 식당에서 홀로 밥을 먹고 있으면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곤 했다. 당신은 혼자 밥을 먹을 때면 행복한 포만감을 느끼기보다 부끄럽고 불편한 마음이 앞섰다.” - 혼자만의 식사

“찾는 이도 드물고 혼자 사는 집에 4인용 식탁이라니. 당신은 지난봄에 가구점에 들러 식탁을 주문하며 한참을 망설였었다. 그러나 당신은 오래전부터 4인용 식탁을 갖고 싶었다. 당신은 그저 거기에 앉아 끊임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려던 것일지도 모른다.” - 월요일의 저녁 식탁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누군가의 식탁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저 그날 무엇을 먹었느냐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의 식탁에는 저마다의 삶의 국면이 담겨 있다. 누군가는 고된 노동을 끝내고 늦은 저녁을 심야식당에서 해결한다. 누군가는 친구와 만나 회포를 풀며 식탁에 앉는다. 누군가는 삶의 방향과 속도에 곤혹감을 느끼고 있고, 그의 식탁은 외롭고 쓸쓸하다. 이때의 식탁들은 화사하거나 웃음과 여유가 넘치는, 환상 속의 4인용 식탁이 아니라, 그저 보통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보통의 식탁’일 뿐이다. 

현대 자본주의 속의 고독한 개인을 조명해왔던 조동범 시인은 새로운 산문집 “보통의 식탁”을 통해 무수히 많은 ‘당신’과 ‘당신’이 앉은 식탁의 모습을 그려냈다. 산문집에 담긴 마흔 개의 식탁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자 삶을 사유하고 인문학적으로 성찰해보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각각의 식탁이 저마다의 모습을 우리의 삶과 방향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낭독회를 진행 중인 조동범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낭독회를 진행 중인 조동범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조동범 시인이 보여주는 첫 번째 식탁은 ‘심야 식당’의 식탁이다. 첫 산문은 ‘심야 식당’의 주인인 ‘당신’을 따라 저녁이 깔린 식당의 모습과 그 안의 외로운 사람들을 그려낸다. 

“저녁이 펼쳐지면 당신은 심야 식당 문을 열고 간판 등을 켠다. 식당 문을 열면 어느새 저녁이 그 안에 모여들어 웅성거리는 것만 같다. 저녁은 해지는 산 너머에서나 빛이 물러서는 골목에서 시작되지만, 심야 식당 문을 열면 저녁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 두런거리고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저녁의 눅진한 감각이 발끝에 치이는 것만 같다.”

심야 식당에 모인 사람들은 대개 혼자이고, 이들은 주인에게 말도 거는 법 없이 홀로 식사를 하고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조동범 시인은 “심야식당에 모여든 사람들은 결국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며 “이 외로움을 견디는 모습이란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여 글을 쓰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네 명 중의 한 명은 홀로 밥을 먹는 시대에서 식탁을 찾는 것은 이상한 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 한 명이 만들어낸 식탁과 홀로 밥을 먹는 ‘당신’의 외로움 또한 ‘보통의 식탁’의 모습이다. 산문 ‘월요일의 저녁 식탁’과 ‘혼자만의 식사’는 홀로 식탁을 꾸리는 ‘당신’의 모습이 그려진다. 

‘월요일의 저녁 식탁’은 홀로 사는 ‘당신’이 산 4인용 식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산문 속 ‘당신’은 “찾는 이도 드물고 혼자 사는 집”이지만, 과감하게 4인용 식탁을 샀다. ‘당신’은 “냉장고를 열어 이틀 전 먹다 남긴 된장찌개를 꺼내고 김 한 봉지를 뜯어 식탁에 올려놓는다.” 홀로 사는 집에서 4인용 식탁은 사치품이겠으나, 조동범 시인은 ‘당신’의 행동을 “그저 거기에 앉아 끊임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려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오래전 헤어진 애인이나 고향에서 올라온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헤어진 애인도 고향집 어머니도 당신과 밥 먹을 일이 없음을 당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혼자만의 식사’는 홀로 밥을 먹는 것을 곤혹스럽게 생각했던 ‘당신’의 이야기다. ‘당신’은 “식당에서 홀로 밥을 먹고 있으면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곤 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부터” 홀로 밥을 먹는 서글픔을 개의치 않게 됐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익숙해진 것 같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홀로 식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이지만, 그런 생각과는 달리 ‘당신’의 모습은 쓸쓸하고 외롭게 그려진다. 

“어느 밤, 창밖으로 비가 왔는지 눈이 내렸는지 당신은 그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여전히 혼자 밥을 먹을 것이다. 당신 앞에 놓인 빈 그릇이 서늘하게 당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당신의 저녁이 쓸쓸하게 저문다. 그때 창밖으로 비가 왔는지, 아니면 눈이 내렸는지 당신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이렇듯 산문집 “보통의 식탁” 안에는 외롭고 쓸쓸하고 방황하는 이들의 식탁이 그려져 있다. 우리의 식탁의 모습이 화사하고 다정다감하게 꾸려지기 힘든 탓이다. 그러나 식탁의 기억은 항상 비극으로 남아있지는 않는다. 이는 “슬픔조차 추억이 되게 하는 시간, 그것이 바로 식탁이 주는 힘과 감동”으로 인한 것이며, 우리는 “식탁 앞에서 당신들은 사랑이나 슬픔 혹은 고단한 저녁에 깃든 쓸쓸함과 마주하며 지나온 날들을 추억” 할 수 있게 된다. 

조동범 시인은 산문집 “보통의 식탁”에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순간을 기록했고, 삶에 대한 고민과 반성을 적어보았다.”며 “‘보통의 식탁’에 담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보통의 식탁 출간을 기념하여 열린 익선동 121 낭독회와 조동범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보통의 식탁 출간을 기념하여 열린 익선동 121 낭독회와 조동범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한편 “보통의 식탁”의 발간을 기념하여 식탁과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조금 특별한 낭독회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28일에는 서울 “익선동 121”에서 식탁을 두고 식사를 나누는 형태로 낭독회가 진행됐으며, 발간 기념 낭독회는 오는 12월 12일 전주 책방 "잘 익은 언어들", 12월 22일 대구 "시인보호구역", 1월 16일 통영 "삐삐책방" 순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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