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 앤 시니컬. 사진 = 육준수 기자
위트 앤 시니컬. 사진 = 육준수 기자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지금은 연극계의 메카로 통하는 혜화동은 한때 문학인들의 집결지이자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56년에 문을 연 혜화동 학림다방은 천상병, 이청준, 김지하, 김승옥 등이 예술을 논하며 청춘을 보낸 장소로 알려져 있다. 혜화동 로터리에 자리 잡은 동양서림 또한 53년 개점 이후 문학이 꽃피었던 6, 70년대 혜화의 중요한 문화 거점이었다. 동양서림은 96년에는 한국문인협회가 문학적인 삶을 살거나 문학적 분위기를 표출해온 이들에게 시상하는 “가장 문학적인 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출판사들이 대거 종로를 떠나고 문인단체들도 거점을 옮기는 등 시대가 지남에 따라 혜화동은 더 이상 문학인들의 집결지는 아니게 되었지만, 학림다방이나 동양서림이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전히 혜화동은 상징적인 장소로 남아있으며, 문학주간을 비롯해 많은 문학 행사가 혜화동에서 이뤄지고 있다. 

위트 앤 시니컬. 사진 = 육준수 기자
위트 앤 시니컬.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런 상황에서 신촌에 위치했던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 11월 15일 혜화동 동양서림 2층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신촌에 위치하고 있었던 위트 앤 시니컬은 시집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서점으로, 유희경 시인이 북 큐레이터로 나서 참신한 기획과 큐레이션을 선보여 시를 사랑하는 젊은 층에게 각광을 받아왔다. 

신촌을 뒤로하고 혜화동에 자리 잡은 위트 앤 시니컬은 동양서림과 연결되어 있다. 동양서림에 들어가 나선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새롭게 단장한 위트 앤 시니컬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전과는 달라진 장소에서 앞으로의 위트 앤 시니컬은 어떠한 공간으로 만들어질까? 

위트 앤 시니컬과 동양서림을 이어주는 나선계단. 사진 = 육준수 기자
위트 앤 시니컬과 동양서림을 이어주는 나선계단. 사진 = 육준수 기자

- 독자들과의 공동체 지향하는 위트 앤 시니컬, “물방울-공동체”를 위하여 

‘앞으로의 위트 앤 시니컬이요? 이건 제가 정하는 게 아니에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직접 만들어가는 거죠.’ 

유희경 시인은 서점을 꾸리는 데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독자들의 마음과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신촌 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독자들의 마음과 역할이 중요하며, 혜화에 자리잡은 지금 새로운 독자 및 동양서림과 장소를 만들어가길 바란다는 것이다. 서울미래유산이며 오랜 역사를 가진 동양서림과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위트 앤 시니컬,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독자의 특징들이 얽혀 새로운 장소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유희경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유희경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유희경 시인은 서점이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이야기, 책을 읽는 사람이 적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상황일수록 책을 읽고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유희경 시인이 지향하는 서점 공동체의 모습이란 “물방울-공동체”를 의미한다. 

“물방울-공동체”는 조르조 아감벤의 책 “불과 글”에 등장하는 “물방울-인간”이라는 개념을 빌려와 만든 개념이다. 유희경 시인은 책을 읽는 이들은 ‘안간힘을 써서 분리되려 노력하는 인간’이라며, 이처럼 개인화된 인간을 “물방울-인간”이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개념에서 공동체를 더해 자연스럽게 모이거나 자신의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이른바 “물방울-공동체”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를 이뤘을 때 독자들의 ‘독서 체험’이 주변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방울-공동체”는 끈끈한 결속이나 억제력을 가진 형태가 아니다. 유희경 시인은 공동체에는 “지역이라는 물리적 측면 뿐 아니라 개인의 취향 등이 반영될 수도 있다.”며 위트 앤 시니컬이 “시를 좋아한다는 물방울들의 느슨한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시를 읽는 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취향을 공유하고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위트 앤 시니컬에 진열된 책들. 사진 = 육준수 기자
위트 앤 시니컬에 진열된 책들. 사진 = 육준수 기자

문화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들 안에서 취향을 공유하는 것은 무척이나 값진 일이다. 책을 읽고 그 취향을 공유하는 일은 독서를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개인의 풍요뿐 아니라 공동체의 풍요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으로는 서점 및 출판업계 곳곳에서 운영의 어려움이 터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서점을 운영하는 것에 곤란이 있지는 않을까 염려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유희경 시인은 시집 전문 서점이 어려울 것이라 보는 시선이 있으며, 실제로 수익적 측면에서 큰 이윤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유 시인은 많은 문학 독자들이 찾아주고 있으며, 책이나 기획 상품 등에도 관심을 드러내는 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라고 전했다. 고정적으로 방문해주는 “물방울-인간”들이 하나둘 늘어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트 앤 시니컬의 '시인의 책상'. 사진 = 육준수 기자
위트 앤 시니컬의 '시인의 책상'. 사진 = 육준수 기자

유희경 시인은 서점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며, “그 명분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던 신촌 위트 앤 시니컬이 그랬듯, (이런 공간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자신의 시도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동양서림과 위트 앤 시니컬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준다면 문화의 측면에서 “바른 일이 도모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며, 위트 앤 시니컬이 서점이나 책을 통해 공동체를 구축하는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점을 통해 책이 있을 곳을, 사람들이 있을 곳을 늘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문학인들의 집결지이자 성지였던 혜화동이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만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자리에 “물방울-공동체”를 지향하는 “위트 앤 시니컬”의 시도는 혜화동을 새로운 문학 공동체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로 보이기도 한다. 하나의 물방울은 온전히 독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옆에 한 방울을 더 떨어뜨리면, 두 물방울은 슬그머니 맞닿아 느슨한 연결을 이룬다.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 사이에도 이런 느슨한 연결이 반복되어, 언젠가는 하나의 거대한 물방울을 만들어내고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쉴 수 있는 하나의 장소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위트 앤 시니컬 내부. 사진 = 육준수 기자
위트 앤 시니컬 내부. 사진 = 육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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