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무민은 채식주의자". 사진 = 육준수 기자
소설집 "무민은 채식주의자". 사진 = 육준수 기자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무민’은 하마를 둥글둥글하게 만든 듯한 귀여움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캐릭터이다. 때문에 무민이 트롤이라는 것을 처음 안 사람들은 깜짝 놀라 ‘세상에 무민이 트롤이었어?’라고 말하곤 한다. ‘트롤’은 북구 신화에 등장하는 못된 장난을 치는 괴물로 전승 지역에 따라 인간을 잡아먹는 끔찍한 존재로 묘사된다.

이러한 무민을 ‘채식주의자’라고 표현한 앤솔러지 소설집 “무민은 채식주의자”가 지난 11월 걷는사람 출판사를 통해 출간됐다. “무민은 채식주의자”는 열여섯 명의 작가들이 동물권에 대해 쓴 엽편 소설을 엮은 소설집이다. 전체 소설집의 제목은 표제작인 이장욱 소설가의 작품 제목에서 따왔다. 이장욱 소설 ‘무민은 채식주의자’는 유해종인 ‘인간’을 먹는 인간 외 종족인 화자가, 육식을 거부하고 인간을 먹지 않는 화자의 전 연인 ‘무민’을 떠올리며 자신의 육식을 합리화하다 거부감을 느끼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식인 괴물인 ‘무민’을 통해 인간을 동물의 위치에 두고 독자로 하여금 동물의 생명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한 것이다. 소설집에 수록된 다른 작품도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이주란 소설가(좌)와 김봄 소설가(우). 사진 = 육준수 기자
이주란 소설가(좌)와 김봄 소설가(우). 사진 = 육준수 기자

지난 15일 종로구에 위치한 길담서원에서는 소설집 “무민은 채식주의자”를 주제로 한 낭독회가 열렸다. 행사에는 소설집에 참여한 김봄, 이주란 소설가가 참여했으며 김성규 걷는사람 대표(시인)가 사회를 맡았다. 이날 작가들은 자신이 쓴 소설을 낭독하고,동물권에 대해 작가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 동물은 감정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 그들의 생명과 권리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해봐야

동물권은 동물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명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대당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태어난 철학자 피터 싱어가 1970년대에 저서 “동물 해방”을 발표하며 주장했다. 국내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개념이었으나 최근 표범 사살 사건, 동물 학대 사건 등이 이어지며 동물권이 지켜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증가하고 있다.

김성규 걷는사람 대표. 사진 = 육준수 기자
김성규 걷는사람 대표. 사진 = 육준수 기자

낭독 행사를 시작하며 김성규 대표는 동물 역시 하나의 생명을 가진 존재이고 동물을 학대한다는 것은 생명이 가진 에너지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생명과 억압,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고민하는 작가에게 ‘동물권’은 마땅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김봄 소설가는 이에 동의하며 자신이 일상에서 느낀 동물의 생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마리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김봄 소설가는 동물의 울음소리와 행동거지를 관찰하면 인간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고양이들이 느끼는 감정과 욕구가 충실히 전해져 온다는 것이다. 또한 동물 역시 인간처럼 버릇을 가지고 있고, 나이가 들면 치매에 걸리기도 한다며 ‘생명’을 중심으로 보면 인간과 동물 사이에 명백한 선을 그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김봄 소설가의 소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신기해’는 동물의 생명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두 아이를 둔 주부 화자를 등장시켜 햄스터를 키우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구를 통해 생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그린다. 화자는 아이들의 관리 소홀로 인해 깁스를 한 햄스터의 모습, 햄스터가 쓴 약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며 작은 동물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신기함을 느낀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작은 동물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보여준다.

김봄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김봄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김봄 소설가는 우리가 동물들을 대할 때에 그들이 감정을 가진 생명체라는 것을 종종 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제기했다. 동물을 사물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반성이다. 동물을 대할 때에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을 가까이서 느끼고 깊게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때문에 김봄 소설가는 동물의 생명과 그에 따른 권리를 지켜나가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 동물들의 권리를 위해 우리가 해나갈 수 있는 것은? 작은 일부터 하나씩 실천해나가는 것

그러나 동물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먹어도 자신의 생활권에 위치한 것들을 한 번에 포기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당장 육식을 그만두거나 동물로 만들어진 제품을 바로 폐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상 속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이주란 소설가의 생각이다.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동물의 죽음에 빚지며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가축으로 분류되는 수없이 많은 동물들을 도축하고 그들로부터 나온 고기를 먹어 생명을 유지한다. 동물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샴푸나 화장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주란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주란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주란 소설가의 소설 ‘겨울은 가고’는 인간이 동물들에게 빚지고 있는 부분을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소설 속 화자의 친척오빠 재환은 조류독감이 발생한 양계정의 닭을 살처분하는 공무원이다. 작품에서 화자가 생각하는 재환은 남들보다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재환은 동물의 죽음을 견디지 못해 점차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아 말라가고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된다. 그가 자살에 이르기까지는 동물의 생명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암시된다. 이러한 장면은 독자들로 하여금 동물의 생명이란 무엇인지, 재환이 인간으로서 느낀 죄책감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동물권의 개념을 알고 인식했다고 해서 동물을 바로 먹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주란 소설가는 생명에 대한 인식이 동물의 권리를 지켜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문제의식을 느꼈으면 그때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가방을 살 때에 동물의 가죽이 사용됐는지를 살피거나 달걀을 사먹을 때에도 농가의 정보를 확인해보라는 것이다.

길담서원에서 낭독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길담서원에서 낭독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행사를 마무리하며 김성규 대표는 동물권에 대한 현재 반응들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그 소리냐’, ‘이제 그만해라’, ‘뭔 동물권이냐’라는 피로감 섞인 의견들을 인터넷을 통해 보게 됐다는 것이다. 김성규 대표는 동물들에 대한 관심이 곧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환기하며 많은 이들이 한 번쯤 동물권을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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