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김정하 객원기자] 시인보호구역이 주관하는 작가 특강 프로그램 ‘촉촉한 특강’이 작년 12월 22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시인보호구역에서 개최됐다. 이번 특강은 2018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으며,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했다. 강사로는 조동범 시인이 초대되었으며 이날 행사는 ‘시인의 육성으로 듣는 시와 산문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촉촉한 특강’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초청해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그 동안시인 도종환, 박준, 이혜미, 김성규, 윤석정, 김용락, 손택수, 손미, 이선욱, 이원규, 이하석 등이 참여했다. 최근에는 대구시인협회 회장인 윤일현 시인,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장인 박승민 시인, 대구문인협회 회장인 박방희 시인이 초대된 바 있으며 이번 특강은 스물세 번째 시간이다.

조동범 시인은 1970년 경기도 안양 출신으로, 2002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심야 배스킨 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가 있으며, 산문집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비평집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이론서 “묘사”,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특강은 조동범 시인의 시를 재해석한 정도형 마임이스트의 마임 공연과 “보통의 식탁” 산문집 관련 동영상 시청, 조동범 시인이 직접 들려주는 시와 산문 낭독 순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참가자가 무대에 올라 시 낭독하는 시간도 가졌다.

‘촉촉한 특강’ 스물세 번째 행사가 시인보호구역에서 진행됐다. 사진 = 김정하 객원기자
‘촉촉한 특강’ 스물세 번째 행사가 시인보호구역에서 진행됐다. 사진 = 김정하 객원기자

조 시인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미친 듯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강연을 하냐고 물어본다.”며, “단순히 제가 워커홀릭이기도 하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열심히 쓰고 싶고 욕망이 있고 노력하고 싶은 열정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불안함과 막막함 때문에 더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여기서 작가가 되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결국 그 시간을 견디는 사람만이 작가가 되는 것 같다.”며 “작가가 된 다음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말 무수히 많은 시간을 견뎌내야 좋은 작가로 남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동범 시인은 “아무로서가 주는 삶도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라며 “간혹 작은 마을에서 평생을 살다 죽는 삶, 알래스카에 인구가 100명도 안 되는 이 작은 마을에서 살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삶도 좋은 삶은 아닌가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당신들은 저편 테이블에서 왁자하게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당신들 중 누군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는 연신 술잔을 들이켰다. 저녁이 된 시드니에서 이민자들의 술자리가 무르익는다. 낯선 도시 시드니에 정착한 사연은 제각각일 테지만, 당신들의 어깨에는 서글픔과 그리움, 막막함과 두려움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앉아 있다. 저녁이 깊어가도록 당신들의 식탁에는 찌개가 끓고 삼겹살이 익어가고 소주잔이 눈물처럼 출렁인다. 

- 산문집 『보통의 식탁』 부분

조동범 시인은 “사실 이민을 떠나려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하며 “한국에서의 삶이 막막해서였다.”고 말했다. 또한 "여기 산문집 대부분이 제가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손으로 쓴 픽션 에세이"지만 "호주행 비행기를 타고 이민을 가서 여객을 떠났던 날에 먹먹함에 기록한 것"이기도 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시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제가 시를 처음 쓰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쓰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고등학교 때 서점을 갔는데 그 때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특집이 있었다. ‘겨울수화’라는 최승권 시인의 작품이 실려 있더라. 교과서와는 달리 이해하기도 쉽고 이미지도 있고 너무 즐거웠다. 그 때부터 시를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 해에 교내 백일장에도 냈는데 국어선생님이 교무실로 호출하시더라. 떨떠름한 말투로 ‘이거 네가 쓴 것 맞아?’라고 말씀하셔서 속으로 내가 좀 쓰나 보다 싶어서 쓰기 시작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편 조동범 시인은 시 ‘난센’을 낭독하기도 했다.

쓰레기장으로부터 불길이 솟아오르면 정주할 수 없는 날들의 폐허는 시작됩니다. 대피할 사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소방관은 언제쯤 도착합니까. 유기된 시신들이 불길 속을 걸어 나오면 그러나 그것은 누구의 장례식도 아닙니다. 장의차는 무덤이 아닌 불길 속을 향해 맹렬히 흐느끼고 이곳에선 그 누구도 죽을 수조차 없습니다. 모든 폐허는 이곳으로 수렴됩니다. 그러나 연기 너머로 사라진 길의 끝은 막다른 곳에 이르러 울음을 터뜨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해변으로부터 죽음은 천천히 불길 속을 절망합니까. 쓰레기장을 향해 트럭들은 확언할 수 없는 세계와 끝나지 않는 과거만을 부려놓습니다. 모든 것들은 이곳으로 모이며 폐기된 미래만을 슬퍼합니다. 이 불이 끝나야 비는 내립니까. 장마가 시작되기도 전에 가을은 높고 푸릅니까. 앨범 속의 누군가가 타오르며 웃고 있다면 그곳은 동물원입니까. 아니면 졸업식장의 헹가래입니까. 쓰레기장의 관리인은 불길을 방치한 채 오늘 밤을 천천히 폐기하려 합니다. 쓰레기장의 불길은 아직도 잡히지 않고, 불길 속으로 수많은 길들은 막다른 곳을 향해 흐느끼고 유령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그것은 쓸모 있는 날입니까. 길의 끝이 불길 속을 향해 아무렇게나 뛰어들어도 소방차는 여전히 당도하지 않습니다. 부질없는 모든 것처럼 폐기된 세계는 불길 속을 비명합니다. 동사무소의 직원들은 친절하게 전화를 받습니까. 그리하여 그것은 사망신고입니까. 아니면 내일밤의 끝나지 않을 예비군훈련입니까. 나는 이곳에 없다는 구호만이 사방에 메아리칩니다. 폭풍이 물러가면 아름다운 수평선은 출렁이지만 폐기된 오늘 밤은 불길 속에 영원히 타오릅니다. 불길 속의 흐느낌은 유령입니까. 다가설 수 없는 미래는 그리하여 끊임없이 침몰을 거듭합니까. 

* 난센여권. 무국적 난민을 위해 발행하는 국제적인 신분증

- ‘난센’ 전문

조동범 시인은 ‘난센’ 낭독을 마치고 “난센은 무국적 난민을 위해 발행하는 국제적인 신분증”이라며, “이 시는 자신의 모국과 이별할 수 없는 자들의 이별을 다룬 문제이다. 물론 이 시에 난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모든 폐허처럼 이 쓰레기장 같은 곳에서 끝도 없이 밀폐되어 버리고 고통 속에 누리는 어떤 자국민의 이야기를 난민들의 이야기에 비유해서 썼다.”고 밝혔다. 

‘촉촉한 특강’ 스물세 번째 행사가 시인보호구역에서 진행됐다. 사진 = 김정하 객원기자
‘촉촉한 특강’ 스물세 번째 행사가 시인보호구역에서 진행됐다. 사진 = 김정하 객원기자

이날 조동범 시인이 함께한 ‘촉촉한 특강’은 많은 사람들의 참석 가운데 성황리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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