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아픔을 그려 국내와 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한강 소설가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가 연극으로 제작된다. 연극 “소년이 온다”는 남산예술센터 시즌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 오는 11월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소설 “소년이 온다”는 작년 문학주간 오프닝에서 간단한 낭독극으로 선보여진 바 있으나 원작자와 연출가가 협업하여 본격적으로 연극에 제작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 작품의 연극화는 여러 극단이나 단체가 관심을 갖는 작업이다. 소설가나 출판사의 허가를 얻어 극단이나 단체 차원에서 작품을 재구성하는 시도는 이미 많이 진행되어왔다. 남산예술센터에서도 권여선 소설가의 중편소설 “당신은 알지 못하나이다”와 장강명 소설가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상을 기억하는 방식” 등을 연극으로 선보인 바 있다.

우연 극장장. 사진 = 육준수 기자
우연 극장장. 사진 = 육준수 기자

지난 23일 남산예술센터에서는 올 한해 시즌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우연 극장장은 과거 남산예술센터에서 진행했던 프로그램 중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을 언급하며 ‘센터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작품 중 원작을 그대로 받아 적듯 연극화한 케이스는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원작에 얽매이지 않고 연출가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우연 극장장은 18년에 공연된 장강명 원작의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17년에 공연된 권여선 원작의 연극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는 연출가가 원작에서 느낀 지점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여 의미를 확장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연극만이 할 수 있는 표현 방식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산예술센터에서는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 때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있을까?

- 한강 소설 원작 연극 “소년이 온다”... 배요섭 연출가, ‘사회적 고통을 기억하는 방식 찾을 것’

한강 소설가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서 계엄군에 사망한 소년 ‘동호’와 5.18의 상처를 안고 있는 많은 이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 표지.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 표지.

배요섭 연출가는 “소설이 그 자체로 완결이 되면 그걸 굳이 연극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며 오랫동안 “어째서 연극으로 만들어야 하나?”에 대해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 답을 내리지 못하면 소설을 굳이 연극으로 제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배요섭 연출가는 연극화 작업이 ‘한 가지 주제를 변주하여 의미를 확장시킨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설을 있는 그대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였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표현한다면 예술인으로서 받은 영감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렇기에 배 연출가는 소설의 연극화가 사회적 고통을 기억하는 방식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배요섭 연출가는 “소년이 온다”를 연극화하면서 광주항쟁뿐만 아니라 “우리 현대사에 있었던 양상, 지구에 있었던 양상을 바라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인간이 겪는 아픔을 두루 살펴보고 “소년이 온다” 속 아픔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하겠다는 것이다. 배 연출가는 “어떤 설치나 기존 연극의 문법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퍼포먼스가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통을 각인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게 되길 바란다.”며 작업에 대한 기대를 표했다.

배요섭 연출가. 사진 = 육준수 기자
배요섭 연출가. 사진 = 육준수 기자

한편 배 연출가에 따르면 당초 한강 소설가는 “소년이 온다”의 연극화에 부정적 입장이었다. 소설에서 ‘너’라고 지칭되는 동호에게 뚜렷한 얼굴을 부여하고 배우의 연기로 표현하는 것이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 생각해서이다. 그러나 배요섭 연출가는 동호를 인물화 시키지 않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무대 연출 방식을 말하는 등 한강 소설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연극화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 장강명 소설 원작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소설가와 연극 모두에게 색다른 경험과 자극 줄 수 있길...

18년도에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제작한 강량원 연출가는 올해 10월 작품을 재공연하기로 결정했다.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장강명 소설가의 동명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장강명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작품집 표지.
장강명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작품집 표지.

강량원 연출가는 원작 소설이 “동급생을 살해한 후 복역을 마치고 나온 자가 자신이 살해한 동급생 어머니의 손에 스스로 살해당하는 이야기”라며 “스스로 저지른 살인이나 사건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혹은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자신 또한 이 작품을 계기로 ‘죄’와 ‘죄를 범한 인간의 속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리하여 강량원 연출가는 소설을 읽으며 했던 고민을 자신의 방식으로 그려냈다. 원작에는 없던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우연 극장장은 작년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나온 “노래 부르는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마이크를 던져주며 동일인물이 되는 장면”은 소설에 없는 장면이라 이야기했다. 소설에선 한 명이었던 인물이 무대에서는 두 명이 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우연 극장장은 이것이 ‘소설로부터 느낀 감정을 몸의 움직임을 통해 보여준 것’이라며 “연극이 할 수 있는 마술”이라고 말했다.

강량원 연출가. 사진 = 육준수 기자
강량원 연출가. 사진 = 육준수 기자

끝으로 우연 극장장은 소설을 연극화하는 작업이 예술의 지평을 넓히고 소설에서 다뤘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생각, 영향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때문에 앞으로도 여건이 받쳐주는 한 시즌 프로그램에서 소설을 연극화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 말했다. 소설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연극인과 소설가 양쪽 모두에게 자극을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장강명 소설 원작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과 한강 소설 원작 연극 “소년이 온다”는 각각 오는 10월, 11월 무대에 오른다. 연극을 관람하기 전 원작 소설을 미리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두 작품을 비교하거나 공통점을 찾아보는 등 풍성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또한 소설을 읽은 연극인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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