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 시인(가운데 왼쪽)과 낭독회 참가자들의 기념사진 촬영이 진행됐다 [사진 = 김상훈 기자]
정우영 시인(가운데 왼쪽)과 낭독회 참가자들의 기념사진 촬영이 진행됐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노원구의 복합문화공간 ‘더숲’이 2월 12일 저녁 7시 30분 더숲갤러리 2관에서 정우영 시인과 함께하는 낭독회를 진행했다. 이날 낭독회는 정우영 시인의 시집 “활에 기대다”와 신작 시를 중심으로 시인의 육성 낭독을 듣고 시집 “활에 기대다”에 관해 들어보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정우영 시인은 1960년 전북 임실 출생으로, 1989년 “민중시”를 통해 데뷔했다. 저서로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집이 떠나갔다”, “살구꽃 그림자”가 있고 시평 에세이 “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 “시는 벅차다” 등이 있다. “활에 기대다”는 시인이 8년 만에 낸 네 번째 시집으로 시 ‘밥값’부터 ‘상향尙饗’까지 총 66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번 낭독회는 정우영 시인이 시 ‘밥값’을 낭독하며 시작됐다. 시 ‘밥값’은 시집에 수록된 첫 시이기도 하며, 낭독회 첫 시를 ‘밥값’으로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정우영 시인은 “밥값 하고 싶어서”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밥에게 면목이 없다.

헛된 궁리만 머릴 달군다.

방에 처박혀 얼굴 지우고

웅크린 채 굶는 중이다.

누가 내게로 와서 내 몸에 숨쉬는

한 톨의 농사 꺼내줄 수 없을까.

- 정우영, 시 ‘밥값’ 중 일부

​정우영 시인은 “요즘 밥값을 하려고 한다. 국립한국문학관을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정우영 시인은 현재 신동엽학회 회장,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작가회의 내에서 저작권 관련 업무도 맡고 있다. 신동엽 시인의 50주기와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이라는 중대사에 참여하는 시인은 ‘밥값을 하려 한다’고 소탈하게 이야기하지만, 정우영 시인이 지난 수 년 사이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특히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4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한 정우영 시인은 “작가회의에서 일하는 동안 성명서를 무진장 많이 썼더라.”라고 회상했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정우영 시인(오른쪽) [사진 = 김상훈 기자]
마이크를 잡고 있는 정우영 시인(오른쪽) [사진 = 김상훈 기자]

사무총장 역임 이후 한동안 병을 앓기도 했던 시인이었기에 시집 “활에 기대다”는 아프고 어두운 시대를 겪은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있다. 정우영 시인은 “활에 기대다”가 처음에는 지금과 같은 구성을 하고 있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목표를 상실하고 비전을 찾기 어두운 시대를 지나고 난 다음이었기에 시들이 죽음으로 경도된 듯 대체로 어두웠다는 것이다.

​정우영 시인은 발문을 쓴 강형철 시인으로부터 “시가 너무 어두워 다시 정리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다른 기간 동안 썼던 시를 모아 편제를 다시 하는 과정을 거쳤다. 정우영 시인은 “후에 썼던 시들을 1부, 2부에 배치하는 등 변화를 줬다. 이명박, 박근혜 이후 우리에게 서광이 비치는,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시기에 쓰여진 시들이라 그런지 조금은 나은 형태로 써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마이크를 든 정우영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마이크를 든 정우영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구성뿐 아니라 제목에도 변화가 이뤄졌다. 시인이 처음에 원한 표제작은 ‘흰, 신’이었다. 시집을 죽은 자건 산 자건 그 시절을 겪어온 자들에게 바치는 나름의 축문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집의 마지막에 축문의 맨 끝에 쓰는 말인 ‘상향尙饗’이라는 시가 수록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검은 표지에 ‘흰, 신’을 표제작으로 쓰면 과하게 어둡다는 의견이 제시됐고, 출판사에서 시인의 말 마지막에 있었던 ‘활에 기대다’라는 문구를 시집의 제목으로 하자는 의견이 제시된다.

​정우영 시인이 “시인의 말을 표제작으로 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자 출판사로부터 “그럼 한 편을 쓰시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말이 호승심을 자극하게 된다. 정우영 시인은 “출판사에서 그럼 한 편을 쓰시라 라고 말할 때 이미 두 세 줄을 쓰고 있었다.”라며 “제 나름대로 굉장히 빠르게 써서 보내고 표제작으로 삼았다.”고 이야기했다. 정우영 시인은 표제작 ‘활에 기대다’가 급하게 쓰여졌지만 “어떤 면에서 시집에서 담으려고 했던 죽음과 삶의 경계를 적절하게 담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시집 “활에 기대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하늘에 반쯤 걸린 일곱의 활이 나란히나란히 구부러져 물에 내린다. 몽환인가. 도취된 내가 물가에 다다르자 물이 몸을 끌어당긴다. 허우적이던 내 발이 활처럼 휘어져 물을 접는다. 수많은 물의 기원들이 받쳐준 일곱의 활로 나는 거뜬해진다.

- 정우영, ‘활에 기대다’ 일부

시집의 마지막은 바뀌기 전이나 후 모두 ‘상향尙饗’이 자리하고 있다. 상향은 ‘적지만 흠향하옵소서’라는 뜻으로, 축문(祝文)의 맨 끝에 쓰는 말이다. 시 ‘상향尙饗’은 ‘그늘’을 묻힌 남자의 모습이 등장한다.

​“당신 정말 이상해. / 이런 그늘은 도대체 어디서 묻혀 오는 거야. (~) 그늘 닦으라고, 물티슐 건네받은 적도 있다. / 잠깐 졸다 눈뜨니 그늘이 한가득 슬어 있다. / 그는 해마다 무슨 마실을 다녀오는 것일까.”

​정우영 시인은 “상향尙饗을 쓸 때는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래는 맨 마지막 행이 그가 아니라 나였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는 해마다 무슨 마실을 다녀오는 것일까’라고 써놓고 보니 스스로가 정말 죽을 것처럼 생각되어 “마지막에 나를 빼고 그로 슬쩍 바꿨다.”는 것이다.

​정우영 시인은 “이 시의 핵심은 상향을 받은 자, 이미 죽은 자의 시선이라는 것”이라며 “죽은 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충동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제목부터 마지막까지 이렇게 쓴 다음, 마지막에 싹 도망 나왔다.”고 머쓱하게 웃었다. 

더숲 갤러리에서 낭독회가 진행 중이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더숲 갤러리에서 낭독회가 진행 중이다 [사진 = 김상훈 기자]

신작 시로는 문장웹진 2월호에 발표한 ‘당신들의 신세계’와 ‘기침도 없이’ 등을 소개했다. ‘당신들의 신세계’는 기르던 개에게 밥을 안 주고 굶겨 죽인 사건에 관한 시다. 정우영 시인은 “잘못한 자들을 봐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한데, 너그러움이라는 것의 끝을 자꾸 목도하게 된다. 그것이 ‘당신들의 신세계’에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나를 가두고 개가 나갔어요.

나 좀 살려 달라 빌어도 개는 갭니다.

으르렁거릴 뿐 전혀 내 말 알아듣지 못해요.

묶어 놓은 목줄조차 팽팽하고

밥은커녕 물 한 모금 넣어 주지 않습니다.

너무 배고파 벽지를 뜯어먹어요.

꺼지지 않는 허기에 붙들려

입에 피나도록 나무가구를 갉아요.

- 정우영, ‘당신들의 신세계’, 문장웹진 2월호

정우영 시인은 “작가에게는 혼자만의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시를 쓰게 되면 불려 나가게 된다. 가끔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며 “때가 와서 불려 가게 되면 또 나가야죠.”라고 이야기했다. 사회비판적이거나 사회참여적인 시를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정우영 시인은 “우리의 소중한 권리가 훼손당하거나 그것이 망가진 채로 우리의 후배, 후손에게 전달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며 사회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부름이 있다면 이후에도 얼마든지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편 ‘더숲’은 ‘2018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매달마다 정기적으로 낭독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낭독회는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했으며 더숲이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했다. 낭독회는 매월 두 번째 화요일 7시 30분에 갤러리에서 진행되며 3월에는 젊은 시인이 함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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