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상된 중소벤처기업부의 책무

▲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격상하기로 한 건 반길 일이다. 하지만 조직을 확대하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사진=뉴시스]

글로벌 산업생태계의 변화는 ‘4차 산업혁명’과 ‘데이터 기술(DTㆍData Technology) 시대’란 두 키워드로 요약된다. 세계는 지금 빠른 속도로 4차 산업혁명으로 달려가고 있다. 도로에는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가 달린다. 하늘에선 드론이 물건을 배달한다. 공장에선 사람 대신 로봇이 작업한다. 영화에서 보아왔던 일들이 현실화하고 있다.

산업생태계의 또다른 변화는 지난 20년 동안 지속돼온 IT(정보기술) 시대가 저무는 가운데 DT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DT란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가치를 창출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개별 고객의 요구에 부응할 줄 아는 기업이 성공하는 DT 시대는 몸집이 무겁고 의사결정 과정이 느린 대기업보다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혁신에 익숙한 중소ㆍ벤처기업에 유리한 환경이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의 성장이 정체돼 위기 상황에 직면한 한국 입장에선 서둘러 4차 산업혁명 열차에 올라타야 한다. 기존 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이나 DT 시대 모두 특성상 제대로 이끌 주역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과 벤처, 기발한 아이디어로 뭉친 스타트업(신생기업)이다. 몸집이 가볍고 의사결정이 빠른, 작지만 강한 기업들에서 젊은 청년과 여성들이 한껏 기량을 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처럼 중소ㆍ벤처기업이 기술 창업을 통한 새로운 시장 진출로 커 갈 수 있는 산업생태계 조성이 절실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격상시키는 것이 핵심인 정부조직 개편안이 나온 것은 반길 일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코트라 등에 흩어져 있는 중기 관련 업무를 일원화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읽힌다.

그러나 단지 정부조직 격상만으로 중소기업이 제대로 육성되리라 기대해선 곤란하다. 중소기업 스스로 변화하는 노력을 더해야 마땅하다. 단순히 중기라는 이유만으로 나눠주기식 지원에 탐닉하면 되레 독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들 스스로 기술ㆍ가격 경쟁력에 브랜드 파워, 마케팅을 결합한 복합 경쟁력을 갖추고, 수출 및 외국 중소기업과의 기술제휴ㆍ합작에 나서는 등 국제화를 꾀해야 한다. 인재를 중시하는 경영을 하도록 중소기업부가 지도하는 등 여건 조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기업정보를 더 투명하게 공개하고, 회계관리를 엄격히 하며, 사회공헌활동에도 관심을 가짐으로써 기업의 격을 높여 이 땅의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서 일자리를 찾도록 이끌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독자적 행정ㆍ입법권을 갖는 만큼 어떤 법안을 내놓고 정책을 펼지 주목된다. 중소기업이 겪는 애로와 관련해 ‘3불不(제도의 불합리, 거래의 불공정, 시장의 불균형) 악습’이란 말이 사라지도록 대기업과의 계약 및 거래나 금융기관 이용 시 금리ㆍ수수료 차별 등을 시정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부처의 업무 영역과 활동 행태를 규정 지을 초대 장관에 누가 오느냐가 중요하다.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을 낱낱이 이해함과 동시에 행정능력과 리더십을 겸비한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어느 나라든 국가경제를 발전ㆍ성장시키는 기본 DNA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있다. 기업생태계의 풀뿌리인 중소기업이 창업과 성장이라는 선순환의 연결고리로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지속가능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구글, 아마존 같은 혁신기업이 나오도록 창업생태계를 새로 구축하자. 스타트업과 벤처기업들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유망 기업과 사업에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경쟁력있는 벤처기업이 인수ㆍ합병(M&A)과 증시 상장을 통해 보상받을 수 있게 만들자. 다양한 신산업에 벤처가 진출하게끔 규제도 혁파하고. 이런 모든 과제 수행의 중심에 중소벤처기업부가 있어야 마땅하다.

사실 중소기업 육성 이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점했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제치고 중소기업중앙회를 먼저 찾았다. 이 자리에서 ‘중소기업 중심 경제’를 선언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대선 때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이 또한 대기업의 반발에 부닥쳐 흐지부지됐다. 문재인 정부가 중소벤처기업부까지 만들어 놓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 더 혹독한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장관 자리 하나 늘리고 조직을 확대하는데 머물러선 안 된다. 몇년 뒤 적어도 “이러려고 중소벤처기업부 만들었냐”는 소리는 듣지 않도록 하라.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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