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립구산동도서관마을 3층 청소년힐링캠프에서 페미니즘 강연이 진행됐다 [사진 = 김상훈 기자]
은평구립구산동도서관마을 3층 청소년힐링캠프에서 페미니즘 강연이 진행됐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여러 형태의 운동을 일컬은 말이다. 그러나 페미니즘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일각에서는 페미니즘이 여성의 이권만을 위한 이기주의적인 운동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기도 했다.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격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은평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이 두 명의 문화평론가로부터 페미니즘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4월 17일 오후 7시 30분 구산동도서관마을 3층 청소년힐링캠프에서는 손희정, 최태섭 문화평론가가 자리하여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약 2시간가량 강연과 대담이 이뤄졌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으로, 영화학을 전공하고 대중문화를 연구했다. 저서로는 "페미니즘 리부트", "성평등", 공저작으로는 "그럼에도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모먼트", "대한민국 넷페미사", "그런 남자는 없다", 번역서 "여성괴물" 등이 있다.

최태섭 문화평론가는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에서 열정이라는 형태의 불합리 노동을 탐구했으며, 세대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착취와 소외를 연구한 "잉여 사회"를 2013년 발표했다. 저서로 "모서리에서의 사유", "억울한 사람들의 나라", "한국, 남자" 등이 있으며 공저작으로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그런 남자는 없다", "자비 없네 잡이 없어" 등이 있다.

- 만들어진 남성성 살펴본 “한국, 남자”의 최태섭 문화평론가

이번 행사의 부제는 “그런 남자는 없다 : 페미니즘이 말하는 한국남성”으로,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는 행사다. 최태섭 평론가는 앞서 한국 남성들에게 짊어진 남성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살펴본 저서 “한국, 남자”를 출간한 바 있다.

"한국, 남자" 표지
"한국, 남자" 표지

최태섭 평론가는 먼저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가 만들어내는 불평등, 부당함과 싸우는 실천적이자 이론적인 운동”이며 “페미니스트는 여성인권이 억압되어 있을 때는 여성인권을 위해 싸워왔고, 이후에는 운동의 방향을 확장시키고 있는 광범위한 운동이라 볼 수 있다.”며 페미니즘이 단순히 여성의 인권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한 남성성이라는 것은 태고적부터 견고하게 존재했던 성질이 아니며, 오히려 페미니즘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남성성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떠한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강연 중인 최태섭 문화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강연 중인 최태섭 문화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한국의 남성성은 근대 이후 본격적으로 수입되는데 일본에서 근대 교육을 받은 유학자들이 식민지 조선으로 가져온 것으로,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의 남성성을 가져온 것이었다. 최태섭 평론가는 서구의 근대적 남성성은 18세기 유럽에서 생겨났으며, 산업혁명, 과학혁명, 정치혁명 등으로 실권을 잡은 부르주아는 자본이 없다면 부르주아가 아니게 되기에 불안감에 시달리는 지배계급으로 자리 잡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배계급인 부르주아는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우생학을 연구하거나 성별을 분업시켰는데, 성별의 경우 공적인 일은 부르주아 남성이, 사적인 공간의 일은 부르주아 여성이 맡는 방식으로 분업이 일어난다. 이렇게 남성성과 여성성은 분할되었으며 남성성은 곧바로 식민주의 팽창전쟁과 결부된다. 진정한 남자라면 두려워하지 말고 전쟁에 나가야 한다는 식으로 남성성의 지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전파된 남성성은 조선에서 친일전향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으나, 조선이라는 국가가 상실된 상황이었기에 좌절한 남성 인텔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건국 이후 이승만은 남성들로부터 노동력과 군사력을 얻어내기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했는데 이중에는 여성혐오도 포함되어 있었다. 최태섭 평론가는 “이 시기 남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표상을 끊임없이 등장시켰다.”며 양공주, 자유부인, 전쟁미망인 등의 표현이 이 시기 다발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쟁미망인은 절개를 지키지 않고 방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식으로 규탄의 대상이 됐으며 “남성들의 불만과 긴장을 해소하려는 역학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시기에는 소위 ‘산업 역군’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 많았는데, 공교육, 군대, 가족은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최태섭 평론가는 산업성장 시기에 흔히 떠오를 법한 ‘아버지가 온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미지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당시 공업에서는 여성노동자가 남성노동자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63년도에는 41%, 76년도에는 53%가 여성노동자였다는 것이다. 이는 경공업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노동 이력을 분석한 결과 “남성 혼자서 벌어 온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세대 내의 10% 정도였고 대체로 대기업 화이트칼라였다.”며 “대부분의 경우는 45세를 전후하여 하향 직업 이동을 하게 되고, 집에서 가사와 육아를 전담했던 여성이 직업전선으로 뛰어들어 돈을 벌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최태섭 평론가는 이 내용을 연구한 논문을 인용하며 “한국사회에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산업자본주의 물질적 지원 하에서 유지된 것이 아니라, 매우 허약한 물질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작동했다.”고 설명하고 “아버지가 가족을 먹여 살려서 가부장제가 작동했던 게 아니라, 여성들도 노동을 했어야 했다. 여성의 노동을 빼고 마치 모든 것이 남성 노동자에 의해 됐다고 말하는 건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최태섭 평론가는 80년대 저항세력에서 보여줬던 군사주의적 조직 문화와 성차별적 문화, 90년대 문화다양성으로 인해 시작된 남성성 연구의 좌절, 2000년대 이후 남성성을 대상으로 한 위로 문화 등을 언급했으며, 1997년 IMF 이후 “IMF가 던진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돈을 벌지 못하는 아버지란 무엇인가 였으며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여러 고찰과 고민이 나오는데,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강연 [사진 = 김상훈 기자]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강연 [사진 = 김상훈 기자]

- 여성이 사라진 한국 영화계... 왜 ‘아빠뽕’은 시대 정신이 되었을까?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90년대 이후의 남성성을 영화를 통해 살펴보았다. 손희정 평론가는 역대 박스오피스 영화에서 여성들이 모두 제거되었으며 오로지 ‘아버지’라는 존재만을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희정 평론가가 제시한 영화는 괴물, 아저씨, 7번방의 선물, 명량, 군함도, 부산행, 택시운전사 등으로 대부분이 천만 관객 이상을 동원하며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들이다. 이 영화 속에서 여성은 보조적인 역할로만 머물고 있으며 ‘아버지’가 위기에 처해있는 국가, 사회, 세상, 공동체를 구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손희정 평론가는 이러한 영화를 가리켜 ‘아빠뽕’ 영화라고 비판했다. ‘아빠뽕’이란 ‘국뽕’에서 온 단어인데,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필로폰)의 합성어이다. 국가의 부정적인 부분을 마약을 하듯 취하게 하여 숨긴다는 의미로, 손희정 평론가는 “아빠뽕이 아빠와 함께 국난과 위기를 함께 헤쳐나온 어머니를 비롯한 여성을 모두 숨겨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 괴물 스틸컷
영화 괴물 스틸컷

영화 “괴물”은 한강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물과 대항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동시에 사회 풍자적인 블랙코미디의 장르적 특성도 갖고 있다. “괴물”에 등장하는 가족에는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다. 강두 역을 맡은 송강호나 희봉 역을 맡은 변희봉에게는 아내가 존재하지 않으며, 영화는 딸을 구하지 못한 무력한 아버지가, 딸이 구해낸 아들과 대안 가족을 꾸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아저씨”는 원빈(차태식 역)을 김새론(소미 역)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김새론의 어머니는 아주 악한 여자로만 그려질 뿐이다. 명량이나 군함도, 부산행, 택시운전사 등 다른 영화들 또한 여성은 조연에 그치거나 도구적으로만 그려지며, 손희정 평론가는 “2000년대 이후 아버지들의 이야기만 나오고 남성들만이 주인공인 영화가 많아졌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실제로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들이 굉장히 많았다.”며 “결혼 이야기”, “고스트 맘마”, “마누라 죽이기”, “미스터 맘마” 등의 영화를 언급했다. 90년대는 민주화가 달성되고 검열이 없어지며 영화가 시장자유화되던 시기이며, 전문직 여성이 영화에 나와 성과 사랑과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8, 90년대 여성운동의 성과라고 볼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화이트칼라 여성노동자와 고학력 여성이 필요하게 된 자본주의가 여성운동과 타협한 것이라는 관점으로도 볼 수 있다.

강연 중인 손희정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강연 중인 손희정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2000년대 이후의 영화는 남성들로만 이뤄졌고 여성들의 자리는 사실상 사라지는데, 유일하게 여성들이 대거 등장하는 장르는 공포영화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란 유령이거나 귀신이거나 미치지 않으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버린다는 것이다. 손희정 평론가는 “왜 여성은 사라지거나 괴물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IMF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IMF 시기를 가장 설명하기 적절한 문장은 “아빠 힘내세요”, “고개 숙인 남자” 등의 표현이다. 당시 언론을 비롯해 미디어는 “남녀 모두 겪은 경제적 재난이지만 아버지의 재난으로 이해했고, 신자유주의적 전환 속에서 자본주의가 가진 체계적 한계 안에서 닥쳐온 것이지만 아무도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아빠의 개인화된 재난이라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손희정 평론가는 “IMF 이후 만들어진 남성성의 위기라는 판타지가 한국 사회에 젠더갈등이라 프레이밍되는 남성 문제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재난과 무능한 정치를 해결하는 방식은 자본주의를 수정하건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2015년 핫키워드는 헬조선이었고 2016년 핫키워드는 여성혐오였다.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치권 엘리트, 기득권이 움직이고 이야기할 때에도 청년의 얼굴은 언제나 남성의 얼굴이었다.”며 “청년 담론 안에서도 살 구멍을 찾을 수 없었던 여성들은 메갈리아를 비롯해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지나며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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