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가 열린 대한출판문화협회 강당 [사진 = 뉴스페이퍼]
행사가 열린 대한출판문화협회 강당 [사진 = 뉴스페이퍼]

[뉴스페이퍼 = 지유리 기자] “사피엔스, 역사의 역사, 고양이..” “책 값 꽤 들었겠는데?” “한 권 값에 다 봤지” 이병헌과 변요한의 기싸움을 연상시키는 한 TV광고가 화제다. 정액제로 책을 대여해주는 어느 전자책 구독 서비스의 마케팅을 보여준 이 광고는 출판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자책의 시장이 점차 커지면서 자연스레 생긴 키워드가 구독경제다. 이 현상에는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플랫폼이 자리해 있다.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의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면서 한국 시장에서 플랫폼 인지도를 향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은희 작가의 <킹덤>, 유재석이 출연한 예능프로그램 <범인은 바로 너> 등이 모두 넷플릭스의 콘텐츠다. 소비자들은 신선한 넷플릭스 콘텐츠에 환호했고, 자연스레 월정액을 지급하는 구독경제의 충성 소비자를 형성시켰다. 넷플릭스의 출현은 구독경제라는 키워드를 제시했고, 국내 전자책 업체들의 도서 월정액 서비스로 이어져 교보문고 ‘Sam’, 리디북스 ‘리디셀렉트’, 밀리의 서재 등이 출현하게 되었다.

밀리의 서재 홈페이지 갈무리.
밀리의 서재 홈페이지 갈무리.

월정액을 지불하면 물건이나 서비스를 얻을 수 있는 이 서비스는 디지털시대 전반에서 실용화되고 있다. 반면 출판업계는 변화하는 디지털시대가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전자책의 월정액 서비스가 도서정가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급부상하고 있는 구독경제 시대에 출판업계의 중요한 문제인 도서정가제와의 상생에 관해 논의하는 장이 열렸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4월 9일 오후 3시 협회 4층 대강당에서 ‘넷플릭스의 공습, 도전받는 도서정가제’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다.  

세미나가 진행됐다 [사진 = 뉴스페이퍼]
세미나가 진행됐다 [사진 = 뉴스페이퍼]

대한출판문화협회 정책연구소 정원옥 선임연구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는 한국출판콘텐츠 이중호 대표, 교보문고 eBook사업팀 지영균 차장, 한국전자출판협회 김기태 회장, 아주경제 강일용 기자가 패널로 참석해 주제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주제는 ‘미국 등 월정액 서비스 성공요인과 도서정가제 국가들의 월정액 구독서비스 현황 비교분석’(이중호 한국출판콘텐츠 대표), ‘독서문화 확산이냐? 플랫폼 경쟁이냐?’(지영균 교보문고 eBook사업팀 차장), ‘넷플릭스형 월정액 서비스, 도서정가제와 공존 가능한가?’(김기태 전자출판협회 회장), ‘구독경제 시대 출판계의 미래는?’(강일용 아주경제 기자) 등이었다. 

이번 세미나의 화두는 단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구독경제였다.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등 월정액으로 콘텐츠를 무제한 구독할 수 있는 시장이 열리면서 재화의 구매가 구독으로 변화되었다. 구독이 가장 일상화된 곳은 디지털 콘텐츠 시장으로, 출판업계에서는 스마트 미디어 시대에 따른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발언 중인 김기태 회장 [사진 = 뉴스페이퍼]
발언 중인 김기태 회장 [사진 = 뉴스페이퍼]

한국전자출판협회 김기태 회장은 “네트워크 기술이 확장되고 스트리밍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소유의 시대에서 디지털 접근 방식으로 콘텐츠 유통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면서 “구독경제 모델이 디지털 콘텐츠를 취급하는 플랫폼의 주요 수익모델로 자리 잡게 되면서 출판업계에 적용되고 있는 도서정가제의 사각지대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김기태 회장이 제시한 ‘도서정가제의 사각지대’는 전자책 판매는 도서정가제의 영향을 받지만 대여나 구독은 도서정가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문제를 의미한다. 전자책 판매 업체에서 판매 대신 10년, 20년 단위로 전자책을 대여하는 무제한 대여가 문제가 되어 전자책 판매 업체와 출판계가 대립하기도 했다. 무제한 대여 문제는 지난해 3월 출판사 및 유통사가 자율협약을 체결하며 일단락됐지만, 전자책의 다양한 판매 형태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느냐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새로이 등장한 구독 형태 또한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기에 추후 갈등과 대립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교보문고 eBook사업팀 지영균 차장 [사진 = 뉴스페이퍼]
교보문고 eBook사업팀 지영균 차장 [사진 = 뉴스페이퍼]

그러나 디지털시대에 출판업계 또한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제기되고 있으며, 이번 세미나에서는 전자책의 월정액 요금제가 콘텐츠 소비를 촉진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제기됐다. 이는 개별 콘텐츠 가격과 품질을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기에 구매에 이르는 심리적 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교보문고 eBook사업팀 지영균 차장은 “3개월 동안 S사의 무제한 서비스를 구독한 구독자의 경우 평균 6.48권을 다운로드했고, 1권을 90% 이상 완독한 구독자는 약 24%에 달했다. 하지만 가입 후 1권도 열람하지 않거나 0% 이하 진도율 구독자도 약 34%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월정액 서비스가 소비자의 독서량과는 별도로 독서 진입의 벽을 낮추고 있음을 반증하는 부분이다. 연간 독서율이 최저치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전자책이 새로운 독서 인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구독경제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강일용 아주경제 기자는 해외의 사례를 언급하며 구독경제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외적으로 게임은 구매경제가 지배적인 구조였으나, 이마저도 구독경제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 기자는 “구독 서비스는 이제 디지털 콘텐츠에서 벗어나 콘텐츠 시장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구독의 시대’가 왔다고 전망했다. 

왼쪽부터 지영균 차장, 정원옥 연구원, 김기태 회장, 강일용 기자 [사진 = 뉴스페이퍼]
왼쪽부터 지영균 차장, 정원옥 연구원, 김기태 회장, 강일용 기자 [사진 = 뉴스페이퍼]

한국전자출판협회 김기태 회장은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매체가 출판물의 범주에 드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구독경제의 부상은 독자들과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라는 시장의 강력한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강조했으며, 출판 산업을 단지 도서만을 의미하는 협소한 개념이 아닌 전자적 정보를 서비스하는 광의적 개념으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상생은 책을 사랑하는 독자를 위한 방향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다양한 변화가 가능한 디지털시대에 기존 책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보다 새로운 형태의 책이 나온다면 독자들 역시 환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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