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 6개월, 명동 가보니…

중국이 한국관광상품 판매를 중지한 3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명동거리에는 혹한의 바람이 불었다. 당시 예상보다 훨씬 싸늘하게 돌변한 거리에서 만났던 상인들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부터 6개월. 명동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을볕이 내리쬐던 12일 오후, 더스쿠프(The SCOOP)가 명동 복판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째 한숨이 더 깊어진 모습이었다.

▲ 유커로 발디딜 틈 없던 명동 거리, 유커가 눈에 띄게 줄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 명동역 6번 출구에서 명동예술극장을 지나 눈스퀘어로 이어지는 길. 그 거리는 1년여 전부터 활력을 잃었다. 이젠 손님보다 종업원이 더 많은 매장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김정아(가명)씨가 매니저로 근무하는 매장도 마찬가지다.

종업원이 셋인데, 손님이라곤 불청객처럼 방문한 기자 한명 뿐이다. 이미 비슷한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는 듯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기색으로 그는 “단체, 개별 할 것 없이 관광객 자체가 없다”며 다음 질문을 피했다.

옆 매장도 옷을 맞춰 입은 네명의 종업원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야속하게도 손님은 한명도 없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보복 조치가 시작된 3월부터 근무했다는 한 종업원은 “3월 이후와 비교해도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다”면서 “단체관광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대신 “대만이나 일본인 관광객이 상대적으로 많이 보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LG생활건강의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에선 종업원 혼자 매장을 지키고 있었다. “중국인은 단체든 개별이든 거의 없다.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손님들이 좀 다녀갈 뿐이다. 올해 초와 비교하면 매출이 절반 이상 줄었다.”

기념품을 판매하는 노점은 어떨까. 이순영(가명)씨는 “매출? 말하면 뭐하겠느냐”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큰 손님인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확 줄었다. 요즘엔 유럽을 포함한 다른 국가에서도 많이 오지만 유커에 비할 게 못 된다.” 그는 “이 상황이 얼른 정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류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노점 상인은 이미 체념했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사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지난해 8~9월부터 유커가 줄어든 게 눈으로 보였다”면서 “화장품 업체들에 비하면 우린 그나마 낫다”고 위안 아닌 위안을 삼았다.

그렇다면 넘쳐나던 유커에 우후죽순 숫자를 늘리던 명동의 호텔들은 어떨까. 안 그래도 난亂개발이다 뭐다 공실률이 높던 명동 지역의 호텔들은 요즘 죽을 맛이다. 유커들이 떠난 자리를 다른 관광객들이 대신하고 있지만 유커 비중이 컸던 만큼 그걸 채우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명동역 10번 출구 앞. 50년을 훌쩍 넘긴 세종호텔은 요즘 급감한 유커 수를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로비에서 체크인 손님을 기다리던 호텔 관계자는 “베트남이나 태국 관광객들이 예전에 비해 늘긴 했지만 명동이라는 지역 특성상 아무래도 일본과 중국에서 오는 관광객 비중이 크다”면서도 “최근에는 단체관광으로 투숙하는 유커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단체관광객은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 그 자리를 싼커散客(중국인 개별관광객)가 채우고 있는 거다.”

그의 말처럼 대만ㆍ베트남 등에서 입국하는 외국인 수는 2016년과 비교해 늘었다. 올해 7월까지 입국한 대만 관광객은 53만547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3% 증가했다. 베트남 관광객은 같은 기간 29.3% 늘었다. 하지만 이들이 전체 관광객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밑돈다.

호텔 인근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노란조끼를 입고 관광객들의 짐 상하차를 돕는 한정수(가명)씨는 “중국이 상황을 그만 악화시켰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화 중간 중간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관광객들의 무거운 여행가방을 번쩍번쩍 들어 옮기면서도 그는 “일본 관광객들은 그럭저럭 있는데, 유커는 눈에 띄게 줄었다”며 “화장품 업체들은 브랜드 홍보가 되니까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자영업자들은 못 버틴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들어오는 돈이 확 줄었는데 매달 그 비싼 임대료를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사드 이슈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사드 배치를 결정한 이후부터 직ㆍ간접적으로 보복을 자행해온 중국은 4기까지 배치된 지금, 그 기세를 꺾지 않고 있다. 6기 배치가 완료되면 중국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렇다 할 묘책도 딱히 없다.

유커 비중 너무 컸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 1월부터 7월까지 입국한 유커는 253만4178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한국을 방문한 473만4275명보다 46.5% 줄었다. 유커 수가 줄어드니 그들의 큰손에 기대던 산업이 맥을 못 추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건 역시 유커에 의존하던 화장품 업계다. 계속되는 사드 이슈에 실적은 갈수록 악화하고, 주가는 걸핏하면 바닥을 치니 지난해부터 웃을 일이 없다.

▲ 두툼한 지갑을 거침없이 열던 유커가 급감하자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크게 늘었다.[사진=뉴시스]

대표적인 화장품 업체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0.2% 감소했다. 주요 계열사인 아모레퍼시픽(-28%)을 비롯해 이니스프리(-40%), 에뛰드(-66%) 모두 지난해 상반기 보다 실적이 쪼그라들었다.

‘미샤’ 브랜드를 갖고 있는 에이블씨엔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상반기 112억1060만원이던 영업이익은 올해 상반기 73억7326만원으로 34% 줄었다. 하지만 다른 화장품 업체들 실적을 보면 에이블씨엔씨는 그나마 양반이다.

토니모리와 잇츠한불(잇츠스킨)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토니모리는 1년 사이 영업이익이 73% 줄었고, 잇츠한불은 67% 감소했다. 내로라하는 브랜드부터 신생브랜드까지 수십 개의 매장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명동의 브랜드숍 종업원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이유다.

취재 중 만난 한 상인은 이런 말을 했다. “이건 우리가 뭘 잘하고, 잘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외교적인 문제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냥 이렇게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기다려야지 별 수 있겠나.” 그의 말이 명동을 벗어나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김미란ㆍ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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