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가 열린 아라아트센터 5층 [사진 = 김상훈 기자]
행사가 열린 아라아트센터 5층 [사진 = 김상훈 기자]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사인)이 5월 20일 아라아트센터 5층에서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 개막식을 진행했다.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은 해외 한인 작가와 국내 작가가 모여 소통하며 평화를 모색하는 행사로, 20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22일까지 사흘간 이산, 평화, 전쟁, 한국문학, 소수자 등을 주제로 다양한 논의를 진행한다.

20일에는 개막식과 기조 강연 및 ‘이산의 삶’ 세션이 진행됐다. ‘이산의 삶’ 세션은 백여 년 민족 이산의 배경, 생면부지의 곳에서 다른 말과 글로 새로운 삶을 꾸려야 했던 고통과 아픔, 나아가 희망의 경험까지 이야기한다. 기조 강연은 최원식 평론가가 맡았으며, ‘이산의 삶’ 세션은 김혁(중국), 박미하일(러시아), 신선영(미국), 조해진(한국), 임철우(한국) 등이 참여했다.

21일에는 ‘DMZ의 나라에서’와 ‘왜 쓰는가’ 세션이 진행된다. ‘DMZ의 나라에서’ 세션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 총을 겨눠야 했던 한반도의 비극과 근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박본(독일), 임마누엘 킴(미국), 김연수(한국), 허연(한국), 이창동(한국) 등이 참여한다. ‘왜 쓰는가’ 세션은 작가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왜 쓰고 왜 읽을 수밖에 없는가를 이야기하며 글쓰기가 지닌 가치를 모색한다. 마야 리 랑그바드(덴마크), 최실(일본), 강영숙(한국) 등이 참여한다.

행사 마지막 날인 22일에는 ‘내가 만난 한국문학 · 한국문화’, ‘소수자로 산다는 것’ 세션이 진행된다. ‘내가 만난 한국문학 · 한국문화’ 세션에서는 한국문학의 장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국문학의 외부에서의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한국문학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해본다. 석화(중국), 신용목(한국), 게리 영기 박(미국), 전성태(한국), 아스트리드 트로치(스웨덴) 등이 참여한다. ‘소수자로 산다는 것’ 세션은 소수자로서의 한인 작가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하며 닉 페어웰(브라질), 제인 정 트렌카(미국), 김인숙(한국), 정의신(일본), 진런순(중국), 김혜순(한국) 등이 참여한다.

- 김사인 원장 ‘한국문학의 전체 모습 온전하게 확보할 수 있어야’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전한 한국문학번역원 김사인 원장은 먼저 ‘한국문학’의 상상력이 굉장히 협소하다고 지적했다. 한반도 남쪽은 서울 중심의 엘리트 문단문학을 중심으로 상상하고 있으며, 북쪽은 평양 중심의 문학을 조선문학으로 상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사인 원장은 “한인 문학의 윤곽을 한반도의 남과 북, 해외 한인 문학까지 아우르는 총체로서 상상할 때 비로소 우리 문학의 전체 모습이 온전하게 확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인문학의 시야와 논리가 복원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의 시야와 논리는 서로 다른 경로를 살아야 했던 남과 북의 현대사적 경험, 일본이나 만주, 미주 등지로 떠나야 했던 민족 이산의 체험, 해외 입양의 뼈아픈 드라마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김사인 원장 [사진 = 김상훈 기자]
김사인 원장 [사진 = 김상훈 기자]

김 원장은 “하나의 총체로서의 한인 문학의 윤곽을 복원해서 인류 문학의 장 속에 떳떳하게 제출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며 “전 세계 한인 작가들의 이번 서울 모임이 우리 문학의 본래 면모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첫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번 행사의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최원식 문학평론가가 기조 강연을 맡았으며 최원식 평론가는 “왜 플랫폼인가”라는 주제로 이번 행사가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내세우게 된 배경을 이야기했다. 

최원식 문학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최원식 문학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최원식 평론가는 "요즘 더욱 이분법을 기피한다."며 "그동안 한국지식인사회의 일각을 지배해온 척화와 주화의 이분법이 속절없다."고 이야기했다. "지배계급도 둘로 나누어지지 않을 것인데, 인민에 이르러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며 "이분법은 역사의 바탕인 생활하는 민중을 가비얍게 소거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변증법이라는 말도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며 "타방을 인정하는 듯 궁극적으로는 지양의 이름으로 부정함으로써 나의 무한확장으로 떨어지곤 하는 변증법은 이분법의 변종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최원식 평론가가 이분법과 변증법을 언급한 것은 해외한인작가와 한국작가가 만나는 모임의 이름을 정할 때 이분법과 변증법에 연계된 개념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최원식 평론가는 "주변을 위계적으로 상정하는 '중심'이나, 밖을 타자화하는 '안'이나, 타자를 억압하는 '주체' 같은 말들은 일차로 제외되었다."며 "요컨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야기할 억압과 항쟁의 무한반복으로부터 자유롭기를 기약"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짐주의의 변종들도 제외했다. 한때 중심주의의 대안으로 활용됐던 '허브'가 대표적인데, "위압적인 '중심'보다야 낫다고 하겠지만 허브 역시 모든 바퀴살을 통어하는 바퀴의 중앙부분을 가리키"며, 이 또한 중심의 변종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번 행사의 이름은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으로, 최종적으로 선정된 열쇳말은 '플랫폼'이었다. 플랫폼은 타는 것과 내리는 것이 호환되어 출발지이자 도착지이면서, 안이자 밖이기에 "중심주의적 이분법 또는 동일성의 변증법과 인연이 멀"다는 것이다. 최원식 평론가는 '플랫폼'의 역설을 오장환의 시 'The Last Train'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병든 역사(歷史)가 화물차에 실리여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즉도
누귈 기둘러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맛나면
목노하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실고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路線)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처있다.

- 오장환, Last Train 전문

최원식 평론가는 “이 시는 1938년에 발표되었는데, 중일전쟁(1937)의 발발 이후 병화가 확전일로에 오른 그 어두운 캐터필러의 시절, 시인은 황혼의 역을 사유한다.”며 역은 묘한 공간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를 다른 곳으로 실어나를 기회의 장소라는 가능성만으로도 역은 내가 지금 사는 곳을 상대화하는 Fern-Weh의 발신지”이며 “떠났던 이들이 귀향할 Heim-Weh의 수신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최원식 평론가는 “Fern-Weh의 황폐함을 보여주는 1, 2연과 Heim-Weh의 불모성을 드러내는 3, 4연이 마주보는 이 시의 역은 죽음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5연에 이르러 “기찻길의 선로가 거북의 잔등이 무늬로 변하고 다시 지도로 확산되는 대목은 눈부시다.”며 “5연의 어조는 무겁거나 감상적이지 않고 따듯하고 밝기조차 하다. 막차가 거북이로 변신하는 과정 어느 틈서리에 화자 역시 ‘전송객도 출영객도 아닌 거북의 승객’으로 된 점이야말로 이 시의 묘처”라고 설명했다. 화자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밤을 향해 떠나는 거북과 운명을 공유하는 참여자가 되는 것이다.

기조강연을 마무리하며 최원식 평론가는 “한인작가의 문학활동이 한국문학을 안팎으로 두드리는 본격적인 신호가 될 것으로 믿는다.”며 “'한국문학'이란 개념 자체가 이미 문제적”이라고 이야기했다. 당장 북한문학을 상정해 보아도 “문화어 위에 구축된 북한문학은 한국문학의 도전”이며 “기존의 디아스포라에 더해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 신이주자들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가운데 그들의 문학이 세계 각처에서 현지어 또는 한글로 속속 출현하는 오늘의 상황을 돌아볼 때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최원식 평론가는 행사장을 찾은 한인 작가들에게 “문제는 문학이다. 거북이 막차를 타고 싶다. 그 여정에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굴곡이 문학의 황홀한 연금술로 우리들의 영혼과 육체에 스파크로 빛나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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