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도재경 소설가의 「노르웨이와 카트만두 사이」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미니픽션] 도재경 소설가의 「노르웨이와 카트만두 사이」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선배를 만나기로 한 곳은 대학로 인근 좁은 골목에 위치한 아담한 펍, <노르웨이>였다. 선배로부터 진흙탕에 처박힌 쭈글쭈글한 늙은 천사의 이야기를 들은 게 마지막이었으니 거의 이십 개월만이었다. 그날 선배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썼다는 짧은 소설에 대해 내게 얘기했었다.

교황청에서는 그 노인에게 배꼽이 있는지, 아랍어를 사용하는지, 그리고 날개가 달린 노르웨이인은 아닌지 따위를 물었어.

나는 선배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격자창 아래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창틈에는 분홍색 꽃잎 하나가 끼어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선배는 비록 오래전에 펜을 놓긴 했지만 두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선배의 입담이 좋은가 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선배의 얘기를 듣다보면 나는 곧잘 다른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이를테면 율희 언니를 처음 만나던 날 선배의 발그스레한 얼굴빛이라든지 하객들에게 둘러싸인 채 입맞춤하는 두 사람을 사방에서 비추던 찬란한 조명 같은 것들이 표표히 떠올랐는데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유리잔의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른다든지 냅킨을 접었다가 펴곤 했다.

그러니까 교황청의 상상력은 형편없던 거였어.

나는 웃음을 피식 흘렸다.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촛불이 선배의 그늘진 얼굴을 핥듯 어른거렸다. 나는 한 손에 턱을 괸 채 선배의 메마른 입가와 그림자가 드리운 갸름한 턱을 바라보았다. 선배는 무연히 마주한 내 시선을 의식하고선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았다. 나는 선배의 손끝에 놓여 있는 꽃잎을 보며 어딘지 모르게 선배의 손톱과 많이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난 어느 날 선배는 공항에서 연락을 해왔다. 선배가 어디론가 불쑥 떠나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하물며 선배의 방랑벽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었다. 칠 년 전 율희 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늘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설마 노르웨이에 가는 건 아니겠지, 하며 이런저런 너스레를 늘어놓고선 예전처럼 엽서 따위나 사가지고 와서 선물할 거라면 아예 귀국할 생각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선배가 메일을 띄운 곳은 발렌시아에서였다. 모로코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그곳까지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중해 해안을 따라 터키까지 이동한 다음 중앙아시아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에 받은 그 메일을 끝으로 나는 선배의 소식을 한동안 들을 수가 없었다.

선배가 <노르웨이>에 들어설 무렵 눈발은 더욱 굵어져 있었다.

여긴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선배는 어제 만난 사람처럼 태연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미소를 머금었지만 내심 서운했다. 주문을 받기 위해 다가온 바텐더가 탁자 위의 촛불을 밝혀 주었다. 선배의 머리와 어깨 위에는 미처 털어내지 못한 눈송이가 스르르 녹아내리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수척한 얼굴 때문인지 맥주를 주문하는 선배의 모습이 조금은 서먹했다.

선배는 사흘 전 카트만두에서 귀국한 길이라고 했다. 예상과 달리 선배는 꽤 오랜 기간 네팔에 머문 듯했다. 안나푸르나가 내다보이는 작은 마을에서 카트만두로 내려오기 전까지 선배의 여정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나는 마치 선배와 함께 설산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카트만두에서의 일은 너무나도 느닷없었다.

거기서 율희를 만났어.

나는 선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털모자를 눌러쓴 바텐더가 우리 앞에 맥주를 내놓는 바람에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바텐더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검정색 티셔츠 차림이었는데 굵은 팔뚝에는 정교한 올빼미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바텐더가 돌아가자 선배는 맥주를 한 모금 홀짝이고는 선물이라며 내게 엄지손가락만 한 도자기 인형을 건넸다. 이목구비가 세밀하게 세공된 인형은 왠지 율희 언니와 닮아 보였다. 선배가 인형을 산 곳은 수많은 성전과 조각상이 감추어져 있는 카트만두의 미로 같은 뒷골목에서였다. 그곳에서 선배는 율희 언니를 만났다고 했다.

그 도시에는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신들이 살고 있더라.

오래전 선배가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어쩌면 선배는 머지않아 다시 펜을 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편 선배의 상상이 우려스럽기도 했다. 나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탁자의 나무무늬를 손톱으로 꾹꾹 눌렀다. 그러는 동안 또 한 잔의 맥주가 내 앞에 놓였다. 격자창 너머 골목엔 맥주를 내어준 바텐더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가로등 불빛을 머금고 떨어지는 눈송이들을 한참동안 올려다보더니 벽에 세워둔 넉가래를 집어 들었다.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팔 사람들에게 카트만두는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마법의 도시였다. 뿐만 아니었다. 그곳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고 환생하는 윤회를 거듭하였다. 현세에서 덕을 쌓아 내세에서 해탈에 이른 이들도 있었고, 그러지 못해 거미나 사마귀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어느새 선배의 목소리는 세상의 모든 신을 다 만나고 온 듯 겸허해져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곳이 아직 있을까.

선배의 얘기를 듣다보니 어쩐지 그 도시가 부조리하게 다가왔다. 물론 나는 선배만큼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넉가래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창밖엔 밤새 넉가래질을 해도 소용없을 정도로 많은 눈이 쌓여갔다. 바텐더의 입에선 하얀 입김이 규칙적으로 새어 나왔고 이내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그날 밤 나는 바텐더의 굵은 팔뚝을 힘차게 박차고 날아오르는 올빼미를 보았다. 녀석은 커다란 날개를 펴고 우리의 머리 위를 선회하더니 깊은 밤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우리 앞에 놓인 촛불이 사그라지고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선배에게 위로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랐다. 그 후 선배로부터 율희 언니에 대한 그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우리는 예전보다 더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고, 함께 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린 자주 만났던 만큼 더 멀어져만 갔다. 선배는 마치 나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그날의 날씨나 교통체증 따위의 얘기를 나누었다.

그날 밤의 풍경으로부터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된 건 삼 년이 지난 후였다.

선배와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바그마티 다리를 건너는 중이었다. 오물로 가득한 잿빛 강 위엔 화장터에서 피어오른 연기로 자욱했다. 파슈파티나트 사원 아래의 강가에는 윤회의 사슬을 끊기 위한 운구 행렬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었다. 일주일 가까이 인파로 북적이는 카트만두 거리를 헤매었지만 선배가 내게 건넨 도자기 인형을 파는 곳은 찾을 수 없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두르바르 광장의 노점부터 타멜 거리까지 골목 구석구석을 온종일 누비고 다녔지만 헛수고였다.

선배가 만난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거리를 거닐며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문득 그들이 나눴을 작별인사가 궁금해졌다. 쓰레기더미에서 들끓어 오르는 악취와 음식 냄새가 뒤섞인 골목모퉁이를 돌아설 무렵 어디선가 나타난 원숭이 무리가 부랑자처럼 내 주위를 얼쩡거렸다. 녀석들은 내 가방끈을 낚아채려는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말을 건네려는 것 같기도 했다. 크고 작은 사원과 트레킹 장비를 파는 상점과 과일을 파는 노점을 지나는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녀석들 때문에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다. 그러다 회반죽을 덮은 벽돌집 앞에 이르렀을 때 나는 비로소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선 사실을 알아차렸다. 녀석들은 가뿐하게 담장 위로 뛰어올라 나를 힐끗거리고는 철제계단으로 이어진 옥상 너머로 사라졌다. 벽돌집 안에서는 어지러울 만큼 짙은 향연이 피어올랐는데 반쯤 열려 있는 출입문 너머로 사리탑이 보였다.

나마스테.

골목을 되돌아 나가려는데 작은 목소리가 내 발걸음을 붙들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마에 티카를 찍은 한 아이가 사리탑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얼결에 그 애가 그랬던 것처럼 인사를 건넸다. 그 애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 사냐고 묻고 싶었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묘한 정적이 우리 사이에 감돌았다. 나는 망설이다가 가방에서 도자기 인형을 꺼내어 아이를 향해 내밀었다. 하지만 아이는 수줍게 웃고선 사리탑 뒤로 몸을 숨겼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뜰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사리탑 주위의 성긴 풀숲에서 작은 새들이 푸드득거리며 날아오르는 바람에 일순간 무르춤했다. 아이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정작 사리탑에 다다랐을 때 아이는 어느새 옥상으로 올라가 나를 내려다보며 다시금 나마스테, 하고 인사했다. 그러곤 옥상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아이는 나와 숨바꼭질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불현듯 피로가 몰려왔다.

골목을 되돌아 나왔을 때 먼지가 자욱한 늦은 오후의 거리는 어느덧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오토바이 한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골목을 향해 달려갔다. 매캐한 매연 사이로 익숙한 향내가 코끝을 스쳤다. 그제야 그 애와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언젠가 선배의 손끝에 놓여 있던 꽃잎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거대한 날개를 가진 노인과 작별인사를 나누었을까.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선배로부터 들은 이야기의 결말은 기억나지 않았다. 흙먼지가 날리는 골목 끝에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아른거렸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선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도재경
소설가
201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피에카르스키를 찾아서」로 등단 soul2007@hanmail.net

※ 위 미니픽션은 웹진 "문화 다"와 공동으로 게시한 작품입니다.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intre_etc&ps_boid=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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