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위기 탈출 하려면 …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보복 등으로 한국 자동차가 설자리를 잃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내뱉는 볼멘소리다. 전문가들의 진단은 다르다. 리스크의 본질이 ‘줄어든 상품 경쟁력’에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 자동차도 이젠 성장전략에 손을 대야 할 때다. 과감한 투자와 M&A 등은 꺼내봄직한 전략들이다.

▲ 한국 자동차 산업이 최악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사진=뉴시스]

“현대차 9월 중국 판매량 8월 대비 60% 증가.” 국내 자동차 업계가 중국발發 희소식에 모처럼 웃었다. 연초 8만대 수준에서 사드 보복이 극심했던 4~6월 3만5000대 수준까지 떨어졌던 현대차 중국 판매량이 회복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1년 전에 비해서는 18% 줄어든 판매량이지만, 업계는 감소폭이 줄었다는 데 의미를 뒀다.

덕분에 일부에서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중’이라고 분석한다. 올 상반기에 거셌던 중국 시장의 불매 분위기가 점차 누그러졌다는 거다. 또한 중국 일부 부품업체가 현대차에 부품 공급을 중단하면서 멈췄던 공장이 곧바로 재가동하면서 생산 차질 우려도 씻었다. 최근에는 새 공장인 충칭重慶공장에서 생산된 신차가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글로벌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반등 시그널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세계 2위 자동차 시장인 미국이 말썽이다. 9월 현대차 미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14.4% 감소한 5만7007대에 그쳤다. 미국의 전체 자동차 판매량이 152만6000대로 전년 대비 6.3% 증가하는 사이 현대차는 오히려 뒷걸음질한 것이다. 미국시장 내 자동차 기업 중 유일한 ‘두자릿수 추락’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시장은 가시밭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다시 쓰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자동차 업계가 주요 타깃이다. 미국은 FTA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던 관세를 2012년 협정 발효 후 2015년까지 4년간 유지하다가 지난해 폐지했다. 현재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자동차는 무관세다. 관세를 부과하는 일본과 유럽산 자동차에 비해 유리했다. 현대차는 올해 전체 수출량의 3분의 1 정도를 미국으로 수출했다.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업계 맏형 현대차가 흔들리니 다른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기아차는 중국 딜러들이 판매 부진에 따른 1000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고 동시에 국내에서는 통상임금 소송 패소로 우발채무를 쌓았다. 한국GM은 회사 측의 거듭된 부인에도 ‘철수설’에 시달리고 있다.

자동차 업황도 말이 아니다. ‘글로벌 차 생산 5위’라는 타이틀은 인도에 내준 지 오래다. 국내차 생산량이 2011년 465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쪼그라든 결과다. 2011년 315만대에 달하던 수출도 지난해 262만대로 5년 만에 17%가량 줄었다.

한미 FTA 재협상의 변수

내수시장에서도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젠 수입차 브랜드의 공세를 막아낼 힘도 없어 보인다. 수입차 브랜드들은 디젤게이트로 판매금지 조치를 당한 폭스바겐의 판매량을 빼고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 증가한 15만3327대(8월 누적)를 팔아치웠다.
승승장구하던 한국 자동차가 고전하는 이유는 뭘까.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대내외 리스크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여러 악재 중 하나일 뿐이다. 외교나 안보, 정책적 리스크는 매번 발생했다. 앞으로도 발생할 거다. 문제는 갈수록 떨어지는 한국 자동차의 경쟁력이다. 그간 시장 트렌드는 물론 신기술과 미래차 개발에 소홀했다.”

한미 FTA만 봐도 그렇다. 미국의 기본 수입관세는 2.5%에 불과하다. 2.5%의 가격차이로
한국 자동차 산업이 크게 망가질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미국 관세가 유지되던 2015년까지 한국차 대對미 수출이 매년 증가했던 게 그 증거다. 관세가 철폐된 지난해에는 오히려 판매가 꺾였다.

전문가들은 “전략의 실패”라고 입을 모은다. 글로벌 시장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픽업트럭을 찾는데 한국차는 세단을 고집했던 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거다. 자동차 산업의 새 먹거리 사업으로 꼽히는 친환경차 시장에서도 한국 자동차는 별다른 두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쟁 업체들에 밀리며 앞날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판매 부진을 이유로 전략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은 형편이다. 수출 시장은 글로벌 기업들의 치열한 각축장이다. 어설프게 진입해서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해법은 없을까. 해외 투자업계 관계자의 말에 힌트가 있다. “기업의 성장 전략은 내부 투자와 전략적 제휴, 인수ㆍ합병(M&A) 등 세가지로 나뉜다. 이중 가장 빠르게 변신하기 위해선 M&A가 제격이다.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왜 현대차가 M&A에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를 물을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현대차의 FCA 인수설’이 끊임없이 도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FCA는 피아트ㆍ크라이슬러ㆍ지프ㆍ마세라티ㆍ알파로메오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다. 이중 지프 브랜드는 SUV와 픽업트럭에 특화됐다. 경쟁력 있는 SUV를 갖지 못해 중국시장서 고전하고 있는 현대차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FCA 인수설 왜 도나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세단에 치우친 포트폴리오를 가진 현대차가 FCA를 인수할 경우 시장 트렌드에 적합한 판매 구성을 보유할 수 있다”며 “시간과 비용, 실패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M&A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국 자동차는 과감한 양적성장 전략을 추구했고, 실적을 통해 전략이 성공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과감한 투자와 M&A 등으로 기존 사업 모델의 변신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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