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유채림 소설가의 「박정희 찬양대」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미니픽션] 유채림 소설가의 「박정희 찬양대」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아침부터 전운이 감돌았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기세였다. 날은 더욱 후텁지근했다. 에어컨 앞에서 일하는데도 강은 무섭게 땀을 흘렸다. 온몸이 끈적였다. 손님들은 대개 우산을 들고 왔으나 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마지막 손님이 빠져나갈 즈음, 그제야 툭툭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는 이내 달구비로 변했다. 차양 아래서 잠시 망설이던 마지막 손님은 우산을 쓴 채 뛰었다. 그의 바짓가랑이가 순식간에 젖어드는 게 보였다. 시간은 이제 겨우 한시를 넘고 있었다. 아직은 늦은 점심 손님이 있을 때였다. 하지만 달구비를 헤치고 아무도 올 것 같지 않았다.

   강은 선반에 쌓인 빈 물통들을 닦아 물을 채웠다. 개수대에 쌓인 빈 컵들도 닦아 소독기에 넣었다. 손님이 빠져나가면 홀 담당이 하는 일은 그런 거였다. 하긴 손님 많은 날은 숟가락도 삶아야 했다. 수저통을 채워놔야 저녁 장사까지 안심할 수 있었다.

   비는 여전히 가혹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강은 신문을 집어 든 채 에어컨 앞에 앉았다. 아침에 읽다만 기사를 시작으로 칼럼 두 꼭지를 읽었다. 세 번째 꼭지로 넘어갈 즈음,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빗소리가 따라 들어왔다. 한 떼의 손님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우산을 내려놓기 바쁘게 몸부터 털었다. 모두 다섯 명이었다. 칠십 대, 아니면 그 이상으로 보이는 나이든 손님들이었다. 한 해 내릴 비가 다 쏟아지는 것 같다고 중절모를 쓴 이가 투덜거렸다. 구두 안창까지 흠씬 젖었다며 백구두를 신은 이가 구두를 벗고 양말을 벗으면서 투덜거렸다. 이런 젠장, 우산 썼는데도 난 빤스까지 다 젖었네, 하필 오늘 같은 날 약속 잡을 게 뭐래요, 그렇게 투덜거리는 이는 옅은 푸른색 색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들이 자리에 앉는 걸 보고 강은 물과 메뉴판을 건넸다. 중절모가 이 집엔 뭐가 맛있냐고 물었다. 처음 식당을 찾는 이들이 더러 하는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강은 뭐가 맛있다고 추천한 적이 없었다. 그냥 웃는 얼굴로 서 있으면 손님이 결국 제 기호에 따라 주문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강은 배시시 웃기만 했다. 중절모는, 주인장이 장사할 줄 모르네, 하면서 기분 상하지 않을 만큼 핀잔을 놓았다. 

   그들은 파전에 감자전에 보쌈을 주문했다. 막걸리도 한 통 주문했다. 막걸리는 마침 다 떨어져 동네상표인 ‘망원동막걸리’밖에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중절모는, 망원동에도 술도가가 있었나, 하더니 그거라도 달라고 말했다. 강이 상을 차려 그들 앞에 내놓자 중절모는 막걸리 통부터 들었다. 통을 돌려가며 꼼꼼히 살피던 중절모는 망원동에 대해 뭐 좀 아느냐고 물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 걸 얘기하고 싶어 하는 투였다. 그럴 땐 알아도 아는 게 없는 척해야 한다는 것쯤 강도 알고 있었다. 막상 망원동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다. 고로케는 망원시장 고로케가 최곤데, 그 기억만이 떠올랐다.

   중절모는 그때부터 망원동 연가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에 의하면 망원동은 미나리꽝이었다. 그에 의하면 망원동은 장마철마다 물난리로 시름겨워하던 곳이었다. 그에 의하면 망원동은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 사는 곳이었다. 그 정도라면 강을 비롯해 마포 사람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과거는 늘 현실에 부합해야 의미가 살아나는 것 아닌가. 이를테면 미나리꽝이었던 데는 땅이 무르다, 혹 로또가 맞더라도 망원동에서 고층빌딩 살 생각 말라, 언제 와르르 무너질지 모른다, 그런 얘기라면 현실에 부합하니 괜찮겠다. 아니면 마누라 없이 장화만 끼고 살던 망원동이다, 그러니 망원동에서 홀아비 비웃다간 뼈도 못 추린다고 하면 그 역시 현실에 부합하니 괜찮겠다. 현실과 상관없는 과거의 지식이나 경험을 늘어놓으면 자칫 꼰대소리 말고는 들을 게 없다. 하긴 그렇더라도 강은 중절모의 기분을 아주 잡치게 해선 안 되는 처지였다. 강약이 부동인데, 홀 담당이 어찌 손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강은 아, 예, 아, 예, 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얻은 듯 감탄사를 연발했다.

   파전이 나오고 감자전이 나오고 보쌈이 나오자 그때부터 그들은 비교적 먹는 데만 집중했다. 이 집 보쌈 아주 괜찮네, 먹어본 것 중 최고야, 누린내도 안 나고 딱 좋아, 뭐 그런 찬사가 흘러나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그들은 씹고 삼키기에 바빴다. 아니면 바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가장 먼저 비운 건 막걸리 통이었다. 중절모는 망원동막걸리 두 통을 더 주문했다. 강은 막걸리 두 통을 기쁨으로 날랐다. 이번엔 중절모 대신 색안경이 막걸리 통을 받아들었다. 색안경은 이제부터 형들 대신 자신이 술을 따르겠다고 했다. 형들이 따라주는 술을 받아먹고 있자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거였다. 무슨 소리냐, 내가 더 어리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색안경이 가장 어리긴 어린 모양이었다. 강이 보기엔 그 나이가 그 나이처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비교적 조용하던 식탁이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건 백구두가 야당대표 얘기를 꺼내면서였다. 대표라는 놈이 말이야, 그 교활한 놈이 말이야, 그 실없는 자식이 말이야, 하면서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백구두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의 앞날은 알조였다. 교활한 놈이 대표로 있는 한 그렇다는 거였다. 현 대표가 뭐가 어째서 안 된다는 건지, 그건 말하지 않았다. 말 안 해도 될 만큼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대통령 권한대행 당시 몰염치한 행태를 두고 잠시 욕설이 난무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내 그들의 얘기는 비참했던 시절로 넘어가버렸다. 

   형님들, 내가 59학번이잖아요. 1154로 시작하는 와리바시 군번이라고요. 그때 우리 정말 배고팠어요. 아카시아 꽃 따먹고 배탈 나서 온 숲에 설사하고, 기찻길에 버려진 사과껍질 주워 먹고 그랬잖아요. 고생고생 말도 못했는데, 요즘 애들 그런 거 몰라요.

   ‘요즘 애들’ 얘기를 하면서 목소리를 높인 이는 색안경이었다. 그의 말을 받아 백구두도, 내가 57학번이잖아, 하고 말문을 열었다.

   망종 그맘때 생각나? 보리 이삭 꺾어다 불에 구워 먹고, 그것도 먹은 거라고 헤헤거리면서 우리가 살았잖아. 입술 주위가 새카맣게 변했다고 서로 손가락질해대고, 뭐 그러고도 웃고 그랬잖아. 뿐이야, 보리 꺼럭에 불 놓으면 감자 구워 먹느라 정신 줄 놓고 그랬는데, 요즘 애들이 그걸 어찌 알겠어?

   ‘요즘 애들’로 말 맺음한 백구두의 목소리 역시 컸다. 모름지기 요즘 애들에 대한 불만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비참한 시절과 요즘 애들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건지 덧붙이는 말은 없었다. 색안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월남전 선발로 갔잖아요. 육군병장인데 월급이 54달러였어요. 원래 200달러는 됐을 텐데 그것밖에 안 주데요. 그때 미군들은 300달러 넘었어요. 죽을 고비 숱하게 넘기고, 탄피 주워 돈 만들고 그랬는데, 요즘 애들 그때 우리 고생한 거 상상도 못해요. 박정희 대통령이 이만큼 살게 해준 건데 애들이 그걸 모른다니까요?

   색안경이 침을 튀기자, 이번엔 중절모가 나섰다. 

   내가 사우디 일세대야. 영국 놈들 공사 딴 데 하청 들어갔잖아. 그놈들이 우릴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 요즘 애들이 그 모욕을 알겠나? 수건 목에 감고 삼십분만 일해 봐. 수건 짜면 그냥 물수건이야. 요즘 애들이 그 사막 더위를 알겠냐고? 정말 박 대통령 아녔음, 지금 이렇게 살지도 못했어. 요즘 애들 몰라도 너무 모른다니까. 아휴, 답답해!

   자넨 그래도 집사람 잘 만났잖아?

   백구두가 반문했다. 중절모의 잔에 술을 쳐주면서 그가 덧붙였다.

   자네 뒤따라 나간 김 대리 알지? 사우디 삼년 만에 그 친군 아주 인생 조졌어. 마누라가 바람나서 집까지 날리고 그랬잖아. 그 돈이 어떤 돈이야? 금쪽같은 돈을 그냥 제비족한테 다 갖다 바친 거야. 박통이 제비족 단속해 올무를 채웠기 망정이지 돈 있겠다, 한창 나이겠다, 마누라들 숱하게 베렸을 거야. 요즘 애들 박통 고마운 줄 도대체 모른다니까. 

   백구두는 잔을 들어 막걸리를 꼴깍꼴깍 삼켰다.

   여전히 바깥은 달구비가 계속되고 있었다. 바람도 세서 불어난 물이 아스콘바닥에서 파도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 발길은 아예 끊겼고 드물게 자동차만 오갔다. 더는 손님을 기대하지 않는 게 속편할 듯싶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요즘 애들’이라도 들어온다면 강으로선 몹시 난감할 터였다. 그만큼 백구두 일행의 목소리가 크고 일방적이었다. 

   누군가 차양 아래서 우산을 접는 게 보였다. 강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아니 웬일로 이런 날 오신 거야, 강은 달려 나갔다. 강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백구두 일행이 그랬던 것처럼 우산을 내려놓기 바쁘게 몸부터 털었다. 주방에서 일하던 강의 아내도 달려 나왔다. 그녀는, 아버님 오셨어요, 하고는 수건을 건넸다. 아버지는 됐다, 됐다, 하면서도 수건을 받아들고 얼굴과 팔을 닦았다. 

   강은 아버지를 안쪽 자리로 안내했다. 아버지는, 이런 날씨에도 손님들이 계시네, 하면서 아들내외를 따랐다. 잘 따라오던 강의 아버지가 백구두 일행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동년배 노인네들에게서 어떤 동질성을 찾으려는 건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눈길이 한 사람한테만 꽂혀 있었다. 중절모였다. 중절모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윽고, 혹시 동아건설 최 과장님 아니시냐고 물었다. 중절모는 뜨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맞긴 맞는데,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때부터 강의 아버지와 중절모는 서로를 확인해갔다. 사우디에 먼저 간 이는 중절모였다. 강의 아버지는 중절모보다 이태 뒤에 사우디로 갔다. 57학번인 중절모는 과장이었고, 학번이 없는 강의 아버지는 말단 노무자였다. 중절모가, 강씨 이리 좀 와봐, 하면 강의 아버지는 급히 달려가는 처지였다. 중절모가, 강씨 뭐해, 노깡 받을 자리로 빨리 못 내려가, 하면 강의 아버지는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달려 내려가는 처지였다. 영국 놈들의 눈치를 보는 게 중절모였다면, 중절모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게 강의 아버지였다. 사우디에서 버틸 수만 있다면 최대한 버텨야 하는 게 강의 아버지였다. 사우디 취업할 때 거금 80만원을 들였기에 더욱 그랬다.

   원래 강의 아버지는 그냥 순조롭게 사우디에 가게 될 줄 알았다. 별다른 기술은 없어도 신체검사만큼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엉뚱한 데서 일이 터졌다. 신원조회에 딱 걸린 거였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육촌어른이 문제였다.
육촌어른은 육이오 때 실종됐다. 미군기 폭격을 피해 인민군이 밤에만 이동하던 때였다. 인민군은 전선으로 의용군을 끌고 갔듯, 필요하면 부역자도 뽑아갔다. 부역자들이 하는 일은 다양했다. 지게로 군수물자와 양식을 져다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참호를 파기도 하고, 흙 자루를 쌓기도 했다. 농사만 지어온 육촌어른은 흙 자루 쌓는 일에 동원됐다. 그것만으로도 모진 삶이었는데, 육촌어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호적 정리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사망으로 처리했으면 뒤탈은 없었을까. 어쨌든 면서기는 행방불명으로 처리해놓았다.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문제가 되었다. 부역자로 끌려간 육촌어른은 느닷없이 빨갱이가 되었다. 먼 훗날, 연좌제에 의해 강의 아버지까지 해외취업을 막는 이유가 되었다. 강의 아버지는 박정희가 남로당 출신임을 몰랐다. 강의 아버지는 박정희가 연좌제법을 존속시키는 이유에 대해서도 분통을 터뜨리지 않았다. 강의 아버지는 오직 사우디 취업에만 혈안이 돼 있을 뿐이었다. 고등학생 하나, 중학생 둘, 국민학생 둘인 아이들 교육을 위해 그 길밖에는 없다고 믿었다. 급기야 강의 아버지는 거금을 준비해 육촌어른의 고향을 찾았다. 면서기한테 뇌물을 안겼고 경찰한테도 뇌물을 안겼다. 그때는 뇌물이면 안 되는 게 없던 비열한 시절이었다. 강의 아버지는 마침내 사우디에 취업할 수 있었다.

   간신히 사우디로 간 강의 아버지는 삼년이 지나서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한동안 사우디 얘기뿐이었다. 날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말할 수 없는 모욕의 세월이었다, 견딜 수 없이 고생했다, 특히 사막 날씨가 그랬다, 비 오듯 땀 흘렸다, 네 놈들이 보내주는 편지가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데 편지는 가물에 콩 나듯 받았다, 앞으로 네놈들은 효도니 뭐니 하는 말 입에 담지도 마라, 나쁜 놈의 새끼들, 뭐 그런 얘기였다. 

   그런 강의 아버지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중절모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술잔을 털고 나자 이번엔 중절모에게 술을 따랐다. 여전히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백구두가 빈자리를 가리키며 앉기를 권했다. 강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 앉았다. 그때부터 백구두 일행과 본격적으로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시절 얘기로 꽃을 피우며 요즘 애들의 무지함을 계속 한탄했다. 그들은 박정희가 이만큼 살게 해준 건데, 요즘 애들이 도대체 그걸 모른다고 계속 한탄했다. 그때마다 강의 아버지는, 맞습니다, 맞습니다, 하면서 막걸리를 들이켰고 막걸리를 돌렸다. 기쁨을 잃고 강은 막걸리를 날랐다. 빗발은 제법 잦아들었으나, 다행히 다른 손님은 여태 없었다.

 

 

유채림 소설가

두리반 식당 주인의 남편. 1989년 「핵보라」를 『녹두꽃』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 『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 『금강산 최후의 환쟁이』, 『서쪽은 어둡다』, 『그대 어디 있든지』 외에도 여러 권이 있다. 중단편으로는 「흑염소 밴드」, 「오후4시」, 「그늘의 허기」, 「사북, 그 머나먼 길」 등이 있다. 장편 르포 『매력만점 철거농성장』으로 Red Awards를 수상했다. yoolim89@hanmail.net

※ 위 미니픽션은 웹진 "문화 다"와 공동으로 게시한 작품입니다.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intre_etc&ps_boid=158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