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명의 가장 큰 결과는 ‘도서 유통 구조’의 변화일 것

발언 중인 존 톰슨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발언 중인 존 톰슨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서울국제도서전 연계협력 프로그램 중 하나로 “2019 북비즈니스 콘퍼런스 (Book Business Conference 2019)”가 열렸다. 연계협력 프로그램의 경우 출판문화산업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는 동시에 도서와 출판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들을 다뤘다.

“2019 북비즈니스 콘퍼런스”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디지털 혁명 이후 도서·출판 업계의 변화 및 미래 예측으로, 영미 시장과 독일 시장을 중심으로 소개됐다. 초대된 두 연사 모두 단순한 포맷의 변화 외에 ‘도서 유통 구조의 변화’ 그리고 ‘독자 맞춤형 서비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사말을 맡은 김종수 (사)출판유통진흥원 회장 [사진 = 김보관 기자]
인사말을 맡은 김종수 (사)출판유통진흥원 회장 [사진 = 김보관 기자]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 당일인 6월 19일, 코엑스에서 열린 “2019 북비즈니스 콘퍼런스”는 ‘출판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출판산업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들이 모여 현장감 있는 사례와 미래 출판전략을 논했다. 국내외 출판, 유통, 도서관 등의 관계자는 물론 일반인 관람객도 참석했으며 (재)한국출판연구소와 (사)출판유통진흥원이 주최했다. 후원에는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과 한국출판협동조합이 참여했다.

본격적인 행사 시작 전 김종수 (사)출판유통진흥원 회장은 서울국제도서전 북비즈니스 콘퍼런스를 찾아 준 이들은 물론 유럽에서 온 두 연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후 유럽 인쇄술의 역사와 스마트폰이 도래한 현실을 언급하며 인사말을 이어갔다. 김종수 회장은 끝으로 각 연사와 주제를 소개하며 말을 마쳤다.

 

발표 중인 존 톰슨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발표 중인 존 톰슨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서울국제도서전에 초대된 첫 번째 연사는 존 톰슨(John B. Thompson) 케임브리지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디지털 시대의 도서출판: 영미 세계의 최근 동향과 미래 트렌드”를 주제로 잡았다. 존 톰슨 교수는 본격적인 발제에 앞서 영미 음반 시장의 선례를 꼽았다. 과거 영미 음반 시장의 경우 기존의 카세트테이프 외에 시디, 다운로드 등 다양한 포맷의 등장 이후 전반적인 매출의 감소 추이를 겪은 바 있다.

E-book(전자책)이 시장을 잠식할 거다?

처음 E-book이 영미 시장에 나타났을 때 다수의 전문가가 우려를 목소리를 높였다. ‘E-book이 출판 업계를 잠식할지 모른다’, ‘500년 역사를 가진 종이책의 시대는 사라질 것이다’ 등 수많은 추측이 쏟아졌다. 그러나 좀 톰슨 교수가 제시한 2008년부터 2015년까지의 E-book 총판매액(%) 그래프에 따르면, 2012년부터 정체되기 시작한 E-book 판매액은 2014년 이후 점차 감소한다. 

좀 톰슨 교수는 이를 두고 ‘전형적인 S curve graph’라 설명했다. ‘S curve graph’란 초기의 가파르고 기하급수적인 성장세 이후 점점 줄어들거나 수평화되는 형태의 그래프를 말한다. 영미 E-book 시장의 총판매액(%) 그래프는 해당 형태와 거의 동일했다.

E-book 등장 초기, 일시적인 성장세만을 보고 판단한 전문가들의 예언과 지적이 산산이 부서진 것이다. 언론을 중심으로 퍼진 ‘도서의 종말’과 같은 이야기 또한 모두 억측으로 확인됐다.
 
E-book 카테고리별 편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한편, E-book 총판매액(%) 그래프의 경우 모든 도서 분야를 하나의 평균 수치로 뭉뚱그린 자료이므로, 더욱 세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분야별, 장르별로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애초 ‘출장 중인 비즈니스맨이 주 이용객일 것이다’, ‘E-book 형태에선 경제 도서가 가장 잘 팔릴 것이다’ 등의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어긋났다. 실제 E-book의 주된 독자층은 여성이었으며, 그들은 주로 아마존의 ‘킨들’이라는 단말기를 통해 ‘로맨스 픽션’ 분야를 즐겨 보았다.

좀 톰슨 교수의 자료에 의하면, 2013년 기준 로맨스 픽션의 60%가 이북 형태로 전환됐다. 하지만 이조차도 2015년부터 둔화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디지털화가 활발히 이루어진 분야는 미스터리, 스릴러, SF 등이었다.

한편, 인문이나 문학 쪽의 도서의 디지털 전환율은 비교적 낮았다. 논픽션 장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논픽션의 경우, 최고 15% 내외의 총판매액 수치를 기록했으며, 요리, 여행, 아동 등의 분야에서는 10% 이하의 수치가 나타나 디지털화가 가장 힘든 분야임을 알 수 있었다.

 

발표 중인 존 톰슨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발표 중인 존 톰슨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존 톰슨 교수가 제시한 도서 분야별 E-book 이용률 차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음과 같다.

우선 ‘Textual character’, 원문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E-book 형태에서 잘 팔리려면 이른바 ‘선형의 내러티브 텍스트’가 필요하다. ‘선형의 내러티브 텍스트’란 특정 시공간 내에서 인과 관계로 이어지는 사건의 연속을 담은 한 덩어리의 글이라 할 수 있다. 로맨스·스릴러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쭉 따라 읽을 수 있는 장르가 좋은 예시다. 반면, 요리책이나 여행책은 대개 독자들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건너뛰고 참고서처럼 활용하는 편이다. 해당 경우 E-book 형태로는 효용성이 떨어지므로, 그때그때 원하는 페이지를 펼쳐볼 수 있는 종이책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다음 요인으로 꼽은 ‘User experience’에서는 아마존의 E-book 리더기 ‘킨들’이 다시 언급됐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쭉 스크롤 해 읽는 독서 방식이 사용자 입장에서 큰 편리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스릴러 장르를 읽을 때 E-book 형식은 다른 일상에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몰입하기에 좋다. 그러나 ‘비선형의 책’, 즉 실용서의 경우 독서 중 이전에 나온 정보를 뒤로 넘겨 찾는 경우가 빈번해 E-book보다 종이책이 더 편리하다는 주장이다.

존 톰슨 교수는 ‘Possession value’, 콘텐츠의 소장 가치에 대한 지점도 빼놓지 않았다. 현실에서 정말 소장하고 싶은 책이 있는가 하면 아닌 책도 있다. 교수는 그런 ‘실물’의 도서를 책장에 꽂고 자신의 취향을 보여 주는 행위를 조명했다. 그에 따르면, “종이책은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성이자 각자의 기호나 가치관을 나타낼 수 있는 부분”이며 “미국에서 각광 받는 양장판과 같이 ‘책’이라는 실물 자체가 가진 미적 감성”이 분명 존재한다. 반면 어떤 책은 ‘실물’로서의 소장 가치가 없다. 빠르게 내용을 소비하고 다음 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회용에 가까운 책들의 경우 E-book에 더 적합할 수 있다.

분야에 따라 독자를 위한 디지털 파일 생성이 쉽고 저렴한 경우도 있다. 반면 삽화가 많이 들어간 도서는 디지털 파일을 생성하는 게 복잡하고 비싸 E-book에 적합하지 않다. 어떤 때에는 기존의 콘텐츠 파일 변환이 불가해 처음부터 설계하고 다시 시작해야 하기도 한다.

디지털 혁명, ‘책’이라는 본래 속성이 바뀌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포맷’이 생겨나는 것뿐

존 톰슨 교수는 “이러한 (역사적 분석과 과정이) 내용이 갖는 함의는 여태 우리가 했던 억측은 모두 틀렸다는 지점이다. 이북은 책의 여러 포맷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설파했다.

이어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서 ‘책’이라는 본래 속성이 바뀌는 게 아니라 도서의 또 다른 포맷이 생겨나는 것뿐”이라며 “E-book의 매출 성장세가 꺾이고 정체되는 것 또한 E-book이 그저 하나의 포맷임을 증명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E-book은 그저 추가적인 매출원에 불과하다. 많은 평론가와 출판 업계에서 경고하고 우려했던 것과 달리 E-book의 파괴력 또한 크지 않았다. 선례로 삼은 음반 산업과도 상이 한 부분이 있었다. 음반 산업은 디지털화 이후 매출이 급락했지만, 영미 시장 도서·출판 산업의 경우 매출 세가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전체 매출에서 E-book이 자치하는 비중은 일부일 뿐이고 대부분은 종이책이다.

존 톰슨 교수는 “여러 재앙설과 두려움, 우려는 해소됐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그는 “해당 기간(E-book 등장 이후) 출판사들은 수익성을 유지했고 오히려 디지털 기술 도입을 이용해 비용 절감, 마진 개선을 이뤄낸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도서·출판 시장이 음반 시장을 선례로 삼고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해 그 양상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무시하지 않았다.
 
‘비주류적 측면’, ‘기존의 이면’을 주목하자 

주류 도서·출판 업종에 대한 논의 이후에는 ‘자가출판’을 언급했다. 존 톰슨 교수는 “디지털 혁명 이후 자가출판의 폭발적 성장이 있었다. 이젠 저자가 먼저 출판사에 돈을 낼 필요 없이 플랫폼상에 업로드만 하면 된다. ‘자가출판의 세상’이 숨은 대륙처럼 떠오르는 중이다. 그렇기에 정확한 특성을 알 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증거로 상당히 커져 있는 상태이고, 잘 구축되어 있다”고 밝혔다.

존 톰슨 교수가 발표한 2016년 자료에 의하면 아마존 내 E-book 판매 권수 기준 베스트셀러 가운데 27%가 자가출판도서이다. 빅 파이브(영미 시장 내 가장 큰 다섯 개의 출판사) 출판사에서 출간한 E-book보다 두 배나 더 많은 비율이다.

반면 매출 기준으로 보았을 땐 자가출판이 23%, 빅파이브 출판사가 40%를 차지했다. 이는 큰 출판사일수록 책의 가격이 높아 생기는 결과이다. 존 톰슨 교수는 “여기서 포인트는 우리가 주류만 눈여겨보다 주변의 현상을 놓칠지 모른다는 점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최근 5년 사이 오디오북의 급성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초창기 오디오북은 시디 위주였다. 이후 디지털 혁명 그리고 스마트폰 등장 이후 다운로드의 형태로 전환되면서, 오디오북 매출 수입은 2009년 약 10억 달러에서 2017년 약 25억 달러로 급성장했다. 주류 출판 업계에서 E-book이 감소한 비중만큼 오디오북이 늘어나기도 했다.

 

발언 중인 존 톰슨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발언 중인 존 톰슨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예측 불가능한 도서·출판 업계, 앞으로의 방향성은?

발제를 마치기 전 존 톰슨 교수는 “개인적으로 미래를 예측할 순 없다는 입장”이라며 “워낙 세상은 복잡다기하고 여러 변수가 있으므로, ‘반드시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예측은 불가능하다. E-book만 해도 여러 전문가들이 잘못 점쳐왔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어 “그러나 거시적인 트렌드는 관찰 가능하다.”며 말을 이었다.

그중 첫 번째로는 ‘도서 유통계의 혁명’을 이야기했다. 존 톰슨 교수의 말에 따르면, “디지털 혁명의 가장 큰 결과물은 E-book이 아니라 도서의 유통 구조의 변화”이며 그 예시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아마존을 꼽았다. 아마존의 경우 도서 매출 비중 중 40%, E-book 매출 비중 중 70%를 넘게 차지한다. 아마존은 기존의 리테일(소매) 영역뿐 아니라 오디오북, 이북, 자가출판은 물론 기타 오르는 신생 부문에서도 상당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아마존의 엄청난 부상과 존재감이야말로 큰 도전과 트렌드“일 것이라는 게 교수의 예측이다.

다음으로는 ‘E-book의 판매 정체 및 하락세’를 언급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향은 “종이책과 E-book이 경쟁하기보다 공존하는 방향”이며, “프린트와 디지털이라는 서로 다른 포맷을 가장 잘 활용하는 출판사가 성공할 것”이라는 미래를 관망했다.

존 톰슨 교수는 자가출판과 오디오북의 성장세에 대한 부분도 다시금 강조했다. 자가출판의 강점으로는 저자 입장에서 기존 출판 업계 진입 장벽의 우회 가능성을, 오디오북의 강점으로는 독자 입장에서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멀티태스킹의 가능성을 꼽았다. 오디오북의 경우 “독서 문화 발현 초기 누군가 대신 책을 읽어 주고 다수가 이를 청취하던 시절과 유사하게, 새로운 형태의 구전 문화·음독 문화가 생겨났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함께였다. 

이어 직접 서점을 방문하고 서평을 참고했던 예전과는 달리 많은 과정이 사라진 세태 속에서, ‘발견성’의 문제에 대한 지적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예시로 든 아마존은 정규적으로 관심 가질 만한 책에 대한 안내나 추천을 이메일로 보낸다고 한다. 과거 독자들이 직접 서점을 다니며 우연히 책을 발견하던 때와는 많은 부분 달라진 것이다.

이처럼, “독자들과의 직접적인 관계 구축이야말로 디지털 혁명 이후 출판 업계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하고 심오한 경과”라는 게 존 톰슨 교수의 결론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난 500년 동안 도서·출판산업은 비투비 사업으로 운영됐다. 출판사가 유통업체에, 유통업체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방식에서는 출판사가 알 수 있는 독자 정보가 거의 없다. 일종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의견이다. 반면 아마존의 경우 온라인 책 판매 시 독자들의 데이터를 쌓고, 이를 통해 미래에 좋아할 만한 책을 가려냈다. 독자가 무얼 좋아하고 어떤 책을 선호하는지 아마존은 알고 출판사는 모르는, 힘의 비대칭이 나타난 상황이다.

존 톰슨 교수는 “독자와의 관계 형성 비대칭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출판사가 이면에서 열심히 노력 중”이라며 “영미 출판 업계의 화두는 ‘독자들과의 직접적인 관계 맺기’이다. 이를 위한 대거 투자는 물론 고객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다.”라는 말을 전했다. 이처럼 그가 생각하는 디지털 혁명이 도서·출판 업계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이란 “출판사가 고객을 상대하는 방식”이다.

 

발언 중인 존 톰슨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발언 중인 존 톰슨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어진 두 번째 발표자 크리스토퍼 블래시(Christoph Bläsi) 구텐베르크 대학교 도서학과 교수는 “2019 독일 도서 시장: 최고의 사업 지표, 독자 수 감소 그리고 혁신 동향(인공지능 등)”을 주제로 삼았다. 크리스토퍼 블래시 교수는 독일 도서·출판 업계의 현황을 소개한 후, 독자 설문조사 결과 및 시장 내 인공지능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설파했다. 

두 발표자 사이의 공통된 요지는 디지털 혁명은 ‘종이책의 종말’이 아닌 ‘새로운 유통 구조’ 및 ‘독자 맞춤화 서비스’의 도입을 이끌어 온다는 것이다. 한편, 존 톰슨 교수가 언급하지 않은 도서·출판 시장 내의 인공지능 도입 예시 및 상세 내용은 2부 기사에서 이어 다룰 예정이다.

 

- 2부 기사를 읽고 싶다면 링크(클릭)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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