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시인에게' 상영 후 발언하는 배수연 시인
'나의 작은 시인에게' 상영 후 발언하는 배수연 시인 [사진 = 나영호 기자]

[뉴스페이퍼 = 나영호 기자] 지난 7월 25일 홍대의 라이즈 호텔에서는 ‘당신 안의 작은 시인에게’라는 제목으로 배수연 시인의 강연이 있었다. 이날 강연은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상영 후 이어졌으며 주로 시를 평소에 어떤 방식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시 창작 수업을 다니는 유치원 선생님 리사가 유치원생 지미가 가진 시 쓰는 재능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리사는 자기의 진가를 모르는 어린아이의 재능을 살려준다는 명목으로 지미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착한다. 낮잠 자고 있는 지미를 깨우기도 하고 자기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며 시가 떠오르면 자기에게 전화로 알려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리사는 영화에서 네댓 살 애들도 종일 핸드폰과 티비를 보거나 게임만 해서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리고 리사는 페리를 타면서까지 지미와 함께 시 낭송 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배수연 시인은 이 부분이 리사에게 일상이랑 예술은 강 건너듯 다른 세상인 걸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상징적이라 말했다. 리사에게 시를 향유하는 저쪽 편은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가치 있는 세계이고 자기 일상과 가정, 가족들이 있는 이쪽 편은 시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를 동경해야 하는 세계였다.

발언하는 배수연 시인 [사진 = 나영호 기자]
발언하는 배수연 시인 [사진 = 나영호 기자]

이 부분에서 배수연 시인은 리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리사가 다른 활동을 무시하면서까지 시 쓰는 행위를 고급 취미로 생각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배수연 시인은 문학을 왜 하는지에 대해 “남을 더 이해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왜 쓰겠냐.”라고 말했다. 타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자기를 둘러싼 장벽으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있게 해주려고 문학이 있는 것이지 “오히려 이 사람과 저 사람 편 가르기 위해 문학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문학을 즐기는 사람과 즐기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여 차별하는 리사를 안타깝게 생각했다.

배수연 시인은 시를 주제로 한 다른 영화 ‘패터슨’을 언급하며 주인공 패터슨은 리사와 다르다고 말했다. 패터슨은 시와 일상을 구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패터슨의 파트너 로라가 예술가인 양 쿠키를 손수 만들고 기타를 연주하고 시 쓰는 패터슨은 지극히 평범하다. 패터슨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고민하고 응시했던 것들을 시로 담담하게 쓴다.

하지만 배수연 시인이 리사를 좋게 본 부분도 있었다. 리사가 지미의 시를 시 창작 수업 때 자기가 쓴 시인 것처럼 발표하다가 시 낭송 대회 때 연단에서 자기가 쓴 시가 아니라고 밝히는 부분이다. 이를 두고 배수연 시인은 굉장한 용기라고 말했다.

강연을 듣는 참가자 [사진 = 나영호 기자]
강연을 듣는 참가자 [사진 = 나영호 기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른바 ‘소확행’은 하루키가 했던 얘기이다. 배수연 시인은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에 소확행에 머무르고 있다면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그건 소확행을 누리는 게 아니라 자기 최면으로 일상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시 창작 수업 때 지미의 시를 자기가 쓴 것처럼 하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용기를 낸 리사를 배수연 시인은 높게 샀다.

배수연 시인은 소확행을 얘기할 때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하기 싫어하는지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객관화가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이에 배수연 시인은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 중 ‘자기 앞’이라는 표현이 재밌다고 했다. “평소에는 삶을 반추하거나 삶과 대화할 수 있는 여유가 없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삶을 내 앞에 둘 수 있다.”면서 자기 삶이 아무리 엉망진창이어도 한낱 글감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 배수연 시인은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경험은 글쓰기”라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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