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수상 후보자 발표,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

김영하 "검은 꽃" 표지
김영하 "검은 꽃" 표지

박광수는 오뚝이 인형처럼 쓰러지지 않으려 애쓰며 양손을 든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밝게 웃었다. 정부군 병사도 웃으며 그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품에서는 손만 대면 찢어질 것 같은 낡고 바랜 증명서 한 장이 발견되었다. 그 문서엔 ‘전라도 위도생 28세 박광수’라는 한자와 대한제국의 관인이 희미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영하, “검은 꽃”, 317쪽.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플랫폼 ‘작은 도서관’은 2018년 광복절에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을 뽑았다. “검은 꽃”은 1905년 제2차 을사늑약에 의해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빼앗긴 당시 멕시코에 이민 간 1,033명 조선인의 비극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일종의 디아스포라 문학적 성향을 띄고 있는 소설은 멕시코에서 노예와 다름없이 착취당하는 이들을 그리며 동시에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겪었던 수모를 묘사해 나간다. 특히 조선인들이 시류에 휩쓸려 멕시코 혁명과 과테말라 군사 정변에 참여하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신대한’을 꿈꾸는 이들의 모습은 민족적 아픔을 여실히 드러낸다.

작년 8월 JTBC의 인기방송 비정상회담에서 김영하는 한국에서 유명한 문학상으로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등을 꼽으며 ‘자신이 받았던 상중에 제일 좋았던 상’으로 동인문학상을 이야기했다. 김영하 작가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아픔이 담겨있는 소설 “검은 꽃”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이날 방송에서 김영하 작가는 멕시코 대사에게 받은 축사를 회상하며 ‘보람이 있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동인문학상은 소설가 김동인의 유지를 이어받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상으로 조선일보가 주최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지점은, 김동인의 과거 친일매국 행적에서 발생한다.

‘만주사변’을 통해 조선인도 내선일체가 되어 국민의식을 높여가게 되었는데, 이번에 다시 ‘대동아전’이 발발되자 인제는 ‘내선일체’도 문젯거리가 안 됐다. 지금은 다만 ‘일본 시민일 따름이다. 한 천황폐하의 아래서 생사를 같이하고 영고(榮枯)를 함께할 한 백성일 뿐 (중략) 이미 자란 아이들은 할 수 없지만,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는 ’일본과 조선‘이 별개 존재라는 것을 애당초부터 모르게 하련다. ―김동인, 매일신보, 1942.1.

김동인은 적극적 친일 행보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인물 중 하나다. 1938년 “매일신보” 산문 ‘국기(國旗)’를 통해 일장기를 찬양하며 내선일체와 황민화를 선전·선동했을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징병·징용을 우상화하여 당시 수많은 이들을 전장으로 이끌었다. 김영하의 “검은 꽃”에 나오는 것처럼 당시 멕시코로 이주하던 조선인 중에는 이 같은 징병·징용제를 피해 나선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에 작년 동인문학상 시상식장 앞에서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역사정의실천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모여 친일문인기념상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또한, 지난 5월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 학술세미나는 대표적인 친일문학상이라 불리는 동인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을 대상으로 비판적 성찰을 이어가기도 했다. 6월에는 팔봉비평문학상 폐지 집회가 열려 “김기진과 같은 신문학의 개척자이면서도 명백한 친일 문인의 경우 ‘기념’의 대상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기억’되어야 할 인물”이라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JTBC “비정상회담” 김영하 동인문학상 언급 장면 캡쳐
JTBC “비정상회담” 김영하 동인문학상 언급 장면 캡쳐

민족의 아픔을 그려낸 작품 “검은 꽃”을 통해 친일문인기념상을 받은 김영하 작가와 같은 역설적인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근 조선일보는 8월 9일 자 기사에서 지난 1월 선정된 윤성희·기준영·정이현·김태용·구병모·윤대녕·김금희·권기태·김세희·최은미·이동욱·김의·최수철·엄우흠·이승은 후보에 이어 최근 독회에서 윤성희·조해진·박상영이 본심 후보에 추가됐다고 밝혔다. 각각 ‘동성애로 연애소설을 부활시켰다’(박상영), ‘삶은 디테일이라는 것을 보여줬다’(윤성희), ‘독자를 울컥하게 하는 진심이 담겼다’(조해진)는 평이 언급됐다. 

동인문학상 주최 측인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를 ‘동성애·입양아·아역 배우 다룬 소설 세 편 합류… 풍부해진 동인 후보들’(클릭)이라는 제목으로 엮었다. 성소수자의 사랑과 아픔, 일상을 그려낸 “대도시의 사랑법”(박상영), 아역 배우로 인기를 끈 주인공이 등장하는 “상냥한 사람”(윤성희), 미군 기지촌 여성과 해외입양아의 이야기를 담은 “단순한 진심”(조해진)이 친일인사를 기리는 문학상의 후보로 올라가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과 한국 간 무역 전쟁이 격화되며 광복절을 맞아 서울 곳곳에서 반아베, 반일본 집회가 예정된 가운데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자가 누가 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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