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특수성과 세계 변화 속에서 언론이 가져야 할 자세

발표 중인 박영흠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발표 중인 박영흠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기레기’란 단어는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것으로 근래 대부분 국민이 아는 단어가 됐다. 이는 가짜뉴스 또는 자극적인 기사만을 다루는 기자를 비난하는 표현으로, 신조어라고 부르기에도 무색할 만큼 보편적인 단어가 된 지 오래다.
 
한국인의 뉴스 신뢰도는 영국의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9’ 조사 결과에서 22%를 기록하며 조사 대상 38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이는 비단 올해만의 결과가 아니다. 무려 4년째 꼴찌를 기록하며 뉴스에 대한 범국민적인 불신을 보이고 있다. 물론, 뉴스 신뢰도가 낮다고 해서 언론이나 사회가 ‘비정상’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재국가 중에 높은 뉴스 신뢰도를 기록하는 국가가 있는 한편, 이른바 선진국으로 불리는 프랑스도 한국과 하위권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유통되는 뉴스를 신뢰하지 않는 현상은 언론인에게도 사회구성원들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이 외면받아 소비되지 않으면 한 사회에 공유되는 정확한 정보의 양이나 질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문예커뮤니케이션 학회가 주최한 2019 7월 여름 학술세미나 ‘커뮤니케이션이다’에서 두 번째 발표를 맡은 박영흠 교수는 “이처럼 언론은 사회와 밀접한 관련성 속에서 진화하고 발전하는 존재다.”라는 설명과 함께 언론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박 교수는 “그간 많은 사회 변화가 있었다. 기술 혁신, 수익모델, 형태, 그중에서도 언론 윤리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오늘 이 자리는 새로운 언론 윤리의 대안을 제시한다기보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함께 대안을 고민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발표 중인 박영흠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발표 중인 박영흠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언론 윤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박영흠 교수는 여러 사회 변화 중 첫 번째로 ‘참여적 시민성(participatory citizenship)의 발현’을 꼽았다. 근래 ‘부재하는 정의’에 대한 분노와 갈망을 느낀 시민들은 정치, 사회적으로 높은 참여도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물론 신자유주의 이후 대두된 경제 양극화와 사회모순의 심화, ‘촛불집회’와 같은 사회적 사건, 이로 인한 정치적 효능감의 극대화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사용하는 ‘포퓰리즘’적 성격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때 선동의 의미가 아니라 학술적인 의미로 ‘포퓰리즘’은 민중과 엘리트 사이의 대립적 관계를 상정하고 민중 중심의 정치가 진정한 민주주의임을 지향하는 대중운동 또는 정치 전략을 말한다.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포퓰리즘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반엘리트주의’의 성향이 강해 엘리트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흔히 관찰되기도 한다. 박영흠 교수는 “정치인, 기업인, 법조인, 관료 등 한국 사회의 지배 엘리트들이 그동안 보여준 부도덕과 무능력, 책임의식의 결핍은 포퓰리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핵심 자원이 된다.”고 부연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참여적 시민성이 ‘정치적 소비주의’를 통해 발현되기도 한다. 정치적 소비주의는 경제 행위를 통한 정치 참여를 뜻하는 표현으로, 최근 ‘NO 재팬’ 움직임과 같이 마음에 안 드는 기업의 물건을 불매하거나 자신의 가치에 맞는 기업의 물건을 구매,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인 ‘정파성’과 결합하며 독특한 양상을 띠게 된다. “최근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이념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지면서 정치·사회적 현안 발생 시에도 자신이 지지하고 있는 정파의 이해관계에 의해 판단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게 박영흠 교수의 주장이다. 자신이 어떤 정당 또는 정치세력을 지지하느냐에 따라서 각자 이야기하는 ‘정의’가 달라지는 것이다.

박영흠 교수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탈진실(post-truth)’의 개념을 차용했다. 그에 따르면,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fact)보다 개인의 신념과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관련한 대표 사례로는 가짜뉴스에 열광하거나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실을 가짜뉴스 취급하는 세태를 꼽았다.

한국 사회는 탈진실 시대의 한 가운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적 사실이나 객관적 데이터보다는 자신의 신념과 입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때, ‘탈진실의 시대에서 언론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다. 

언론은 진실을 찾아 보도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사명이었으므로, ‘탈진실’은 언론 입장에서 그리 달가운 변화는 아니다. 기존 책무대로라면 탈진실의 시대에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 사실인가’에 대한 인식론이 변화하는 역사적·세계적 흐름 속에서 언론이 무작정 맞서 싸우는 게 해결책이라 부를 수는 없다.

발표 중인 박영흠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발표 중인 박영흠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박영흠 교수가 가져온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포인터연구소는 2014년 디지털 시대의 핵심적 윤리를 ‘진실, 투명성, 공동체’의 세 가지로 정리해 발표한 바 있다. 박 교수는 그중에서도 특히 ‘진실’에 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일각에서는 이런 시기일수록 더욱 객관주의의 원칙과 윤리 굳건히 해서 언론과 가짜뉴스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보여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국내외 안팎으로 가장 많이 하고 가장 쉽고, 맞는 이야기이다.”라며 “그런데 과연 이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우리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에 도움이 될까? 탈진실 시대에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정의의 회복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사회에서 ‘전통적 객관주의’는 한발 뒤로 물러나 있는 인상을 줘 자칫 비겁하게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언론학자 스티븐 워드는 ‘민주적으로 관여하는 저널리즘’을 새롭게 제안했다. 관여하는 저널리즘은 객관적인 자료 수집과 취재를 바탕으로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참여하는 언론을 말한다. 이를테면 ‘법정의 판사’들과 같이 논리와 객관적 증거 수집을 거쳐 옳고 그름을 판단하자는 의견이다.

민주적으로 관여하는 저널리즘이 중요한 이유는 언론에 대한 불신은 단순히 ‘언론’ 그자체에 국한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9’ 신뢰도 상위권을 차지한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국가에서는 언론 신뢰도와 더불어 모든 공적 기관들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반면, 한국은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정부, 국회, 법원 등 공적 기관 전반의 신뢰도가 낮다. 이에 박영흠 교수는 “언론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공적 영역 자체에 대한 불신이 쌓여 나타난 결과이므로, 언론 신뢰도를 높이려면 사회 공적 영역 자체에 대한 신뢰도를 제고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공적 영역 전체에 대한 기능과 신뢰 향상이라는 종합적인 해결 없이는 언론도 신뢰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기계적 반영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더불어, 최하위에 머무르는 언론 신뢰도와 지속적인 불신 속에서 학술세미나와 같은 적극적 고민 장소와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7월 5일에 열린 문예커뮤니케이션학회 여름 학술세미나 “커뮤니케이션이다”는 ㈜스토리미디어랩, ㈜스토리프로, ㈜트리짓소프트웨어, 한국동물문화산업협회(KACIA)의 후원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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