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 당신과 詩詩콜콜’을 테마로 둘러앉은 작가와 독자 

북토크를 진행하는 방수진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지난 8월 22일, 시집 “한때 구름이었다” 출간을 기념해 방수진 작가와 함께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행사가 열린 ‘다이브인’은 아티스트 네 명이 주거하는 아트스테이, 아트샵, 갤러리가 함께하는 아트플랫폼으로 이색적인 분위기를 선사했다.

작은 다락방에 둘러앉은 독자들은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수진 작가는 그간 시 창작 외의 밴드, 방송 활동을 소개하며 그 과정에서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소개했다.

방수진 작가는 EBS 세계테마기행의 중국 음식 기행 큐레이터, 중국 읽어 주는 시인, 밴드 시인과 정원 등 다양한 활동과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시인수첩에서 출간된 “한때 구름이었다는” 작가의 데뷔 후부터 지금까지, 총 12년 치의 작품과 시선을 담은 시집이다. 

방수진 작가 시집 “한때 구름이었다”

우산 없는 아이들보다 우산 있는 친구들의 고함소리가 더 빨리 잦아들곤 했었다 젖지 않으려면 우산 하나에 모두 숨거나 하나씩 덧댈 수밖에 없어서, 갑자기 친구 손이 우산 속으로 쑤욱 나를 끌어당겼다 나란히 어깨동무한 난쟁이 행성들 만들어 놓고 우린, 그때 처음 깨달았는지 몰라

교집합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이다.

-‘雨연히’ 중에서.

행사 끝에 이어진 시 낭독 시간에서는 모인 독자들이 몇몇 시를 골라 돌아가며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집의 첫 번째 시이자 첫 낭독시인 ‘雨연히’는 시집 제목이 된 ‘우리는 한때 구름이었다’라는 구절을 담고 있다.

방수진 작가는 “제목으로 삼을 만큼 아끼는 글이다. 자주 되풀이해서 읽기도 한다.”며 “내 시의 99% 이상이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雨연히’ 역시 어릴 적 경험을 그린 시다.”라고 설명했다. 시인은 이어 어린 시절 우산 놀이를 하다 비가 내렸고 한 친구의 손에 이끌려 우산 아래로 들어간 경험을 들려줬다.

작가는 당시 친구의 손을 맞잡으며 느꼈던 감정을 복기하다 ‘교집합은 아름답다’는 문장을 떠올리게 됐다. 유년 시절을 돌아보던 작가는 ‘우리는 결국 맞닿은 손과 같은 교집합으로 살아가는 존재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시를 읽는 방수진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들러붙은 웃음들로 벽지가 눅눅해졌다
마주한 어깨가 쉼 없이 녹아내렸다
자주 너는 등을 한껏 웅크린 채
아무리 불을 끄고 눈을 감아도
쉽사리 어두워지지 않는 밤에 대해 중얼거렸다
그럴 때면 가 본 적 없는 알래스카의 자정을 떠올린다 했었지

-‘알래스카의 밤’ 중에서. 

다음으로 낭독된 ‘알래스카의 밤’과 관련해 방수진 작가는 “앞의 시가 유년의 일기라면, 이번 시는 성인이 된 이후의 연애와 사랑을 담은 시다.”라는 말로 운을 뗐다.

이번 시 역시 실제 경험담이 소재다. 작가는 “잠이 오지 않을 때 알래스카로 떠나는 생각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한동안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고 했다. 방수진 작가 또한 잠이 오지 않을 때 같은 상상을 해본 적이 있으나 상대의 생각이나 세계를 완벽히 이해할 순 없었다. 이 같은 감정과 경험은 ‘알래스카의 밤’에서 ‘어쩌면 애초부터 나에겐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을지 모르는 너의 세계’라는 구절로 재창조됐다.

자리에 함께한 독자 중 한 명은 “시인들은 어떤 느낌을 받고 바로 시를 쓰는 건지 혹은 시를 쓰기 위해 마인드맵핑을 하며 쓰는 건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방수진 작가는 “대부분 그 순간에 바로 쓰지는 않는다. 감정에 사로잡혀있을 때 쓰면 시 전체가 울음바다와 같아진다.”며 “독자들은 나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시를 읽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 상태에서보다 어느 정도 객관화가 된 시점에서 글을 써야 독자들의 진정한 공감과 감흥을 끌어낼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에 또 다른 독자는 “그냥 쓰고 싶을 때 쓰는 거 아닐까.”라고 말을 꺼내기도 했다. 방수진 작가는 “정답이다. 쓰고 싶을 때 쓰는 것이다.”라면서 “하지만 창작가들은 그럴 때 쓸 수 있는 총알이 항상 있어야 한다. 총알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매 순간 매 경험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북토크 현장 사진 [사진 = 김보관 기자]

선전물이 붙는다 오늘 하루뿐이라는 창고대개방
준비 없는 행인의 주머니를 들썩이게 만든다 간혹
마음 급한 지폐들이 앞사람 발뒤꿈치를 따라가고
몇몇은 선전물처럼 벽에 붙어 버린다

-‘창고大개방’ 중에서.

방수진 작가의 데뷔작 ‘창고大개방’ 역시 낭독됐다. 앞의 두 시와는 전체적인 무게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해당 시는 작가가 스물세 살 무렵 쓴 글로, 그를 시인으로 살게 만들어 준 고마운 작품이라고 한다. 이번 시집이 12년간의 작품을 담은 만큼 시인이 지나온 12년의 스펙트럼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창고大개방’과 관련해서 방수진 작가는 “이 시 만큼은 특별한 경험으로 쓰인 시다. 흔히 ‘영감’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런 적은 별로 없다. 그러나 단 한 번 ‘영감’을 받아서 썼다.”라고 부연했다.

어머니의 큰 사고로 상심에 빠져 거리를 지나가던 어느 날, ‘창고대개방’이라는 문구가 담긴 전단이 작가의 다리에 붙었다. 그가 전단지를 떼어내 읽는 순간 영화 파노라마처럼 시의 장면이 펼쳐졌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면서 길을 걷던 작가의 머릿속은 이내 “얼른 집에 가서 시로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메워졌다. 집으로 돌아가 울며 밤새 써낸 작품이 방수진 작가를 데뷔로 이끈 것이다.

방수진 작가는 “그때, ‘나에게 시가 왔을 때 빨리 써야 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구나’하고 느꼈다.”며 “배우나 개그맨이 상을 당해도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고 웃겨야 하는 것처럼 시인도 마찬가지다. 나의 삶은 항상 아픔과 모순을 가지고 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당일 북토크 장소에서는 짤막한 기타연주와 노래가 함께 했다. 방수진 작가의 시에 음정을 붙여 노래로 만든 것이다. 기타연주는 박창민 뮤지션이 맡았으며 두 사람이 함께하는 밴드 시인의 정원 자작곡 두 곡이 나란히 울려 퍼졌다.

보랏빛 커버의 시집 “한때 구름이었다”는 방수진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를 고루 담은 시집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시집 안에서 더욱 다양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수록 시와 챕터 구성 역시 단순히 시간 순서로 엮기보다는 독자가 체감할 전반적인 분위기와 가독성을 고려하며 결정했다고 한다. 다가오는 가을 단 한 권의 시집을 통해 다채로운 감성을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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