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사회, 분리되는 것 아니야…“ 각국의 작가들이 말하는 미학의 ‘오해와 편견’ 바로잡기

[ 뉴스페이퍼 = 조은별 기자 ]지난 10월 11일, 동대문 DDP 현장에서 서울국제작가축제가 마련한 세 번째 ‘작가들의 수다’가 열렸다. ‘우리를 비추는 천 개의 거울’이라는 테마로 기획된 2019 서울국제작가축제는 작품과 사회에 대한 대담 ‘작가, 마주보다’, 작가들이 직접 대학 및 서점을 찾아가 독자와 소통하는 ‘작가의 방’, 낭독과 음악, 연극을 통해 읽는 문학을 넘어 보고, 듣고, 느끼는 문학을 제공한 ‘소설/시 듣는 시간’, 그리고 작가와 독자가 함께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 나누는 ‘작가들의 수다’ 프로그램으로 꾸려졌다.

작가들의 수다 세 번째 시간은 ‘미학과 글쓰기’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전 세계 작가들과 독자들 간 만남의 장으로서 마련된 이 날 행사장에는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라 치뷸랴(이하 치뷸라), 프랑스의 소설가 니콜라 마티외(이하 마티외), 한국의 소설가 한유주가 참석했다. 참여 작가와 사회자, 관객 모두에게 소통 편의를 위한 동시통역기가 제공되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작가들의 수다'에 참여한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치뷸라 시인 [ 사진 = 조은별 기자 ]

시인인 동시에 예술사학자인 치뷸라 작가는 2014년, “혈통의 끝으로의 여정(Journey to the End of the Blood)”을 처음으로 출간했다. 서울국제작가축제가 발행한 앤솔로지에 ‘엄격성과 시적 강성, 그리고 정신적 삶에 관해서’라는 에세이를 실은 그는 “시란 시인이 모든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전했다.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꽃을 피우는 이 선물을 갖고 누군가를 만드는 것”을 기쁨이라고 정의하는 치뷸라 작가는 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조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진부한 표현은 언어의 빈곤과 식상함을 선언하는 예술적 기법이 될 수 있다.”라며 새로운 형식과 언어가 미학적 구조와 성취를 이루고, 그 속에서 새로운 예술적 가치가 탄생한다고 밝혔다.

​미학 중심의 예술은 흔히 사회와 동떨어진 것으로 해석되기 쉽다. 치뷸라 작가는 이러한 오해에 대해 “개인의 내밀한 경험은 사회와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하며 사적인 고민과 사회적 고민을 가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인으로서 내가 하는 언어적, 형식적 고민의 바탕에 사회 문제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미학을 추구하는 것은 사유와 의미를 새롭게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라는 견해를 내비쳤다.

서울국제작가축제 '작가들의 수다'에 참여한 프랑스의 니콜라 마티외 소설가 [ 사진 = 조은별 기자 ]

마티외 작가는 2014년 첫 장편소설 “동물전쟁(To The Beasts, The War)”을 출간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8년 펴낸 두 번째 장편 소설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Their Children Who Came After Them)”로 콩쿠르 상을 수상했다. 미학적 성취를 위해 실험적 창작을 시도한다는 그는 평소 초고를 완성한 후 기존의 통사를 깨뜨리는 다시 쓰기의 방식으로 새로운 언어 지평을 도모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어떠한 가치나 존재도 실재하지 않으므로 ‘진실’이라는 개념 역시 허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에세이 ‘인간 소외’에서 “그 어떤 사회도 진실로부터 살아남을 수 없다.”라고 선언한 그는 의미라는 거짓말과 믿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라고 주장하며, 해석과 가치 부여를 통해 ‘만들어진 의미’를 쌓아가는 것이 인간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마티외 작가는 미학적 예술이 사회 문제와 담론을 외면한다는 시각에 대해 “세상과 조직, 미학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형식과 정신을 분리하려는 시도와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사회는 늘 독자에게 새로운 감흥을 주려고 하는데, 형식적 탐구 없이 감흥이 탄생하지는 않는다.”라는 말로 미학적 시도의 중요성을 시사한 그는 “문학에서의 미학은 언어 그 자체로 음악을 이루고 감동을 주기 위한 고민이다.”라며 작가로서 형식이 감동에 닿는 지점을 찾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어 마티외 작가는 “형식이란 언어인 동시에 작가 자신의 문체이자 통사다.”라는 해석을 밝히며 “자신만의 시선과 철학이 담긴 접근을 통해 전통을 벗어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작가로서 미학에만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되겠지만, 미학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그 역시 문제일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작가들의 수다'에 참여한 한국의 한유주 소설가 [ 사진 = 조은별 기자 ]

2003년 단편 소설 ‘달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들어선 한유주 작가는 서사 해체와 메타소설이라는 실험적 방식의 창작을 시도하며 우리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소설집 “달로”, “얼음의 책”,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연대기“, 장편 소설 ”불가능한 동화“를 펴냈으며 제프 다이어의 ”그러나 아름다운“, 베릴 마크햄의 ”이 밤과 서쪽으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등을 번역 출간했다.

​”해체적 글쓰기 과정에서, 이따금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이 ‘문학의 없음’은 아닐까 고민하기도 한다.“라고 털어놓은 한유주 작가는 언어와 의미가 가진 한계 속에서 자신만의 한 걸음을 확장해나갈 때 작가로서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 동물을 잃었고, 그 과정에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을 느꼈다.“라고 밝히며 불가지론적 경험과 생각, 느낌 등을 글 속에 녹여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한계와 마주하고 이를 돌파하는 것이 글쓰기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한유주 작가는 ”어디에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한계가 있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삶의 태도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지점이 있다.“라고 말하며 모든 사람들이 글을 쓰기를 바라기도 한다고 밝혔다.

'작가들의 수다' 프로그램에서 대화 중인 치뷸라 시인(좌)와 마티외 소설가(우) [ 사진 = 조은별 기자 ]

작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 이름에 걸맞게, 현장에서는 주제에 대한 논의 이외에도 자유로운 대화가 오고 갔다. 치뷸라 작가는 ”미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각국의 세 작가가 만났는데, 우리 모두 참 다른 작품을 쓰는 것 같다.“라는 감상을 전하며 ”두 작가는 창작자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도 없는 텍스트를 접할 때, 즉 미리 해석이나 수용 태도를 준비하지 않은 채로 새로운 텍스트를 읽을 때 그것이 좋은 텍스트인지 아닌지 가름하는 기준이 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마티외 작가는 ”기쁨을 주는 텍스트가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텍스트 속 즐거움과 희열에 주목한다고 답변했다. ”텍스트에 따라 비교 작업이 필요할 때도 있고, 문화적 배경 지식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읽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글들이 있다.“라고 말한 마티오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했다면 그것을 좋은 텍스트라고 받아들인다.“라며 자신의 독서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전적으로 사전 정보가 없는 텍스트가 드문 것 같다고 이야기한 한유주 작가는 재독이 자신만의 좋은 텍스트를 가름하는 판단 척도라고 밝혔다. 그는 ”이미 읽었던 글이라도 다시 읽을 때는 새로운 관점으로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작품이든 ‘구멍’ 같은 게 존재한다. 그건 작가의 무의식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고, 의도일 때도 있으며, 단순한 편집상의 오류일 수도 있다. 그 간극을 독자로서 직접 메워보려고 시도하게 만드는 글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세 번째 작가들의 수다 현장에서 우리는 의미에 대한 재해석과 언어 실험을 통해 텍스트가 가진 본질적 아름다움에 접근하고 있는 세 작가의 이야기를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행사를 위해 방문한 한국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치뷸라 작가는 ”청계천과 같은, 자연과 어우러진 공공장소들이 많아 시인으로서 명상하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은 어떤 새로움을 만날지 예측 불가능한 도시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마티외 작가는 ”문학 행사에 청년층의 참여가 활발하다는 것이 인상 깊다.“라며 한국에서 열린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한 것이 뜻깊은 경험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날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미학과 글쓰기에 대한 수다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아쉬운 작별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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