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햇살이 참으로 강렬했었다.

새벽 출근 전에 밤늦게까지 마신 술로 몸이 좋지 않아 하루 쉴까 하고 전화했더니 팀장은 안된다고 정색을 했다. 오늘 들어올 통이 일곱 차나 된다고 했다. 부득이 술이 덜 깬 몸을 끌고 늘 그렇듯 신길역에서 팀장의 차를 탔다.
먼저 탄 후배 세 놈이 팔짱을 끼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인사를 했다. 뒷좌석에 엉덩이 밀고 들어가자 차가 어두운 자유로를 달려 일산으로 들어갔다.

작업복을 갈아입고 먼지 뿌옇게 날리는 1층 로비로 모였을 때 이미 수백 명의 노동자가 각자의 회사 푯말 앞에 줄지어 섰다. 단상 앞에는 원청관리자들이 늘어 서 있고, 단상 왼쪽 벽에는 오성기가 가운데는 태극기가 좌측에는 황성주기가 붙어 있었다.

이 현장에 베트남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중국인은 반이 넘어 보였다. 명색이 자국민인 한국인은 발을 붙이기가 쉽지 않은 현장이 되었다. 이제 노가다는 주민등록으로 누리는 혜택이 크지 않는 망할 직업 중 하나가 되었다.

안전조회 시작 10분 전쯤 되었나?

뒤쪽 계단과 입구에서 안전모 헐렁하게 쓴 노가다들이 단상으로 몰릴 때, 갑자기 단상 앞 중앙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리더니 한쪽으로 사람이 쏠렸다.

“누가 쓰러졌나 봐?”

누군가 물었다. 아마 구로동 사는 필리핀 처를 얻은 박 씨인 듯했다. 호기심 많은 그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갈 때 나는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숙취를 어떻게 달랠까? 그 생각뿐이었는데, 잠시 후, 7미터쯤 되는 로비 천정에서 구르릉거리는 가래 끊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소동이 일더니 다시 알 수 없는 어둡고 깊은 심연에서 올라온 가래 끓는 소리가 천정을 타고 흩어졌다. 세 번째 울리더니 곧 그것으로 가래 소리는 끝이었다.

“간질이래요. 직영 반장이 뭘 좀 아는가 봐요. 인공호흡을 해요.”

간질에 인공호흡을? 가지가지군.

박 씨가 다가와 이야기를 할 때 관리자들의 호각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회 취소가 이어졌고 사람들은 잘 됐다는 듯 각자의 현장으로 흩어졌다. 잠시 후 현장에 올라갔을 때 1번 출구에 덕트를 잔뜩 실은 차 뒤로 구급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몸은 죽을 맛인데, 차는 쉬지 않고 들어왔다. 영악한 사장은 8층 높이인데도 고층 사다리차를 불러 통을 쉴새 없이 올려보냈다. 오전부터 시작된 ‘양중작업’은 멈추지 않고 차에서 덕트 통을 사다리차에 쏟아 냈다. 아주머니까지 손수레를 끌고 와 남자도 버거운 통을 날랐다.

오전에 통 뒤에서 구역질을 두 번쯤 하고 오후에는 다리가 풀려 무중력을 걷는 기분이 들 즈음 작업이 멈추었고, 마지막 탑차는 지붕을 내렸다.

“오늘 7차를 내렸어.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아래를 보며 의정부 김 반장이 사다리차를 내리는 기사와 말하는 사장을 향해 침을 뱉었다.

아주머니 넷은 둘러앉아 먹을 것을 나누고 남자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핸드폰을 꺼내 보며 목에 흐른 땀을 닦았다.

그래 오늘 작업은 이것으로 끝이다.

이런 날은 일찍 보낼 줄 법도 한데 사장은 말이 없다. 일꾼들은 투덜거리며 허드렛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끝날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팀장이 올라와 청소를 시켰다. 다른 일을 시키자니 미안해서 그런 것 같았다. 모두 빗자루 하나씩을 들고 넓은 방사형으로 흩어졌다.

그때쯤 건물 위쪽을 돌던 한낮의 태양이 가라앉는 중이었다.

태양이 눈높이로 올 때 나는 빗자루를 들고 빛을 마주하고 섰다.

느릿한 움직임의 열댓 명의 노동자들이 느리게 멈춘 듯 빗자루를 들고 빛 속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와, 화염방사기다.”

식당동 사는 키가 손가락만 한 오 씨가 소리쳤다. 강렬한 빛이 그를 앙상한 뼈대만 남기고 집어삼켰다. 더 움직이기를 포기한 노동자들이 눈을 가리며 돌아섰다. 그들 모두 우주선에서 막 내린 미지의 우주인처럼 빛 속에 있었다. 그게 아니면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 경계에 서 있는 중음의 영혼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침에 그 사람이 죽었데요.”

퇴근길에 팀장인 후배가 얼핏 생각난 듯 조수석에 앉은 나를 보며 말을 했다.

“그랬나? 그랬구나.”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차장을 보았다. 자유로 옆 한강 위 우리를 따라 쫓아 오는 태양이 물결에 부서지고 있었다.

미친 듯 빛을 주체 못 하는 태양은 왜 현장에 쏟아져 들어올까? 실상 그럴수록 현장 안은 색을 잃고 더 차갑고 앙상한 뼈대로 변해 가는데.

그 사내가 쓰러졌을 때, 볼까 말까 하다가 결국 다가가서 사람들 어깨 틈으로 언뜻 보았다. 사람들 발아래 누워 있는 그는 몸집이 큰 젊은 사람이었다. 붉은 얼굴과 막 면도한 두툼한 턱, 진한 눈썹이 생각났다.

가족들은 어떡하라고 그렇게 맨바닥에 누워 있단 말인가? 아침에 인사나 제대로 나누고 왔을까? 아침의 그 가래 끓는 소리는 마지막 호흡이었단 말인가? 인간의 호흡이 그렇게 크게 들릴 수가 있나? 이 각박한 현장에 무슨 아쉬움이라도 있었나?

말을 전하는 팀장 목소리는 떨리는데 다른 놈들은 대꾸도 없다.

뒷자리에서 귤이 하나 건네진다. 귤을 까자 신 귤 향이 좁은 차 안에 확하고 번진다. 운전하는 팀장에게 한 알을 주니 입으로 받아먹는다. 귤을 오물거리며 말한다.

“오늘 첫 출근이었다고 하던데, 간경화 환자였데요. 아까는 심장마비가 왔다나 봐요.”

불분명한 병명과 확실한 사망 소식. 노가다 판에 하루 둘이 죽나? 하나? 덕분에 오늘은 넘긴 건가?

“작업 시작 전에 죽었으니 일에는 별일 없겠네.”

어떤 놈인지 그렇게 대꾸를 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 강렬한 태양이 뇌를 흔들고 있으니 말이다.

태양은 왜 눈높이에 올 때 가장 빛이 날까?

어렸을 때, 태양을 쳐라! 라는 만화가 있었다.

야구만화다.

나는 가끔 태양을 치는 상상을 한다. 힘껏 방망이를 휘두르면 그 강렬한 빛이 터져 내가 잠기는 상상을. 내 이성이 산산이 흩어져 저 강렬한 빛에 잠기는.

가끔 미쳐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나를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저 망할 태양으로 인해 그 광기로 인해. 가셨던 취기로 인해 무심결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최경주
1963년생. 전남 화순 출생. 서울건설산업노조 조합원. 인천작가회의. 1997년 전태일 문학상 소설부분 우수상. 2006년 산문집 ‘덕트공 최씨 이야기’. 2019년 ‘소설 사막의 모래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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