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우동 프랜차이즈‘용우동’
15년을 우동 하나로 버틴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있다. 전국적으로 200개에 육박하는 가맹점을 가진 ‘용우동’이다.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를 넘어 세계 우동시장의 ‘드래곤(용)’을 꿈꾼다는 이영찬 대표를 만났다.
1970~80년대, 기차는 대중교통의 중요 수단이었다. 이때 유명했던 것이 대전역 가락우동이다. 3~5분 정차시간 중 급하게, 그러면서도 맛있게 먹던 기억. 용우동은 이런 추억을 밑바탕으로 탄생했다. “경북 의령 출신인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왔어요. 상경하던 중 대전역에서 가락우동을 맛있게 먹던 기억이 너무도 강했죠.”
“한국의 우동육수는 일본과는 달리 멸치, 다시마, 양파 등을 중심으로 깊게 우려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재료의 비율, 끓이는 시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육수를 우려냈죠.”
맛을 보고 버리기를 수 십번, 인고의 노력 끝에 명품 육수가 탄생했다.
1998년이 지나면서 프랜차이즈 매장을 오픈하고 싶다는 창업자들이 찾아왔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전수창업 형태였다. 당시에는 분식전문점의 프랜차이즈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육수를 만드는 법 등을 전수하며 12개 매장을 추가로 오픈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똑같은 레시피를 전수했지만, 만드는 점주마다 맛에서 차이가 났던 것이다. 교육하고, 화도 내고, 당부도 했지만 점주들이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서 이 대표는 지금과 같은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했다. “소스 체계로 전환을 결정했죠. 일괄적으로 소스를 만들어 매장에 공급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당시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일부 점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점주 한명이 용우동의 레시피를 이용해 또 다른 우동 프랜차이즈를 시도한 것이다.
“전수창업으로 우동 레시피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점주가 욕심이 생긴 것 같아요.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3년간의 법적 소송으로 이어졌죠. 결국 승소했지만 마음고생이 컸습니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용우동은 2001년 수도권에만 100개 매장을 돌파했다. 대표 우동 분식 프랜차이즈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2003년 또 한번 시련이 닥쳤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개발붐이 불면서 상권이 변한 것이다. 일부 매장의 매출이 감소하면서 가맹점 개설에 대한 활로 모색이 필요했다.
수도권을 벗어날 필요성도 이때 나왔다. 이때부터 이 대표는 매장 인테리어와 상호를 과감하게 리뉴얼했다. 위기를 전국 브랜드화로 돌파하려고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용우동은 현재 전국적으로 170여개 매장이 성업 중이다. 대부분의 매장이 오픈한지 4~5년 이상 된 경력점포다. 그만큼 매출이 안정적이다. 그로 인해 브랜드와 본사 신뢰도가 높아졌다.
이 대표는 올해도 용우동 리뉴얼을 고민 중이다. 메뉴를 15개 정도로 대폭 줄여 우동의 전문성을 강화할 생각이다. 이를 토대로 용우동의 브랜드를 굳건히 한다는 계획이다. 세계 우동시장의 ‘드래곤(용)’이 되겠다는 이 대표의 용트림이 시작됐다.
이호 창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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