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문학은 장막 없는 욕망의 투사다”

강연 중인 이융희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유승원 기자] 최근 큰 인기를 끈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은 문피아 기준 누적 조회수 3천만, 추천수 150만을 웃돌며 본편 완결을 맞이했다. 해당 웹소설의 오랜 팬이었던 독자들은 “전지적 독자 시점”의 싱숑 작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SNS상에서 자발적인 이벤트를 열어 축하와 선물을 나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현대판타지 장르로 스마트폰과 웹플랫폼이 강조되는 시대에서 ‘장르문학’과 ‘웹소설’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그 외에도 카카오시리즈 기준 538만 명 이상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한 “달빛조각사”를 비롯해 “템빨”, “닥터 최태수” 등 다양한 작품들이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장르문학’과 ‘웹소설’에 관한 독자들의 관심만큼이나 작가 지망생들의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는 한때, 지난 11월 초 개최된 제1회 영호남문학청년학교에서는 텍스트릿의 이융희 작가와 함께 ‘장르와 웹소설’을 주제로 한 강연을 진행했다.

제1회 영호남문학청년학교에 참여한 문학청년들 [사진 = 김보관 기자]
제1회 영호남문학청년학교에 참여한 문학청년들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융희 작가는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자크 데리다가 언급한 “문학이라는 낯선 제도”라는 문장을 언급하며 문학과 소설을 정의했다. 그는 “나, 도둑, 거지 등의 비천한 개인조차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근대적 노블(Novel)’의 탄생이다.”라고 전했다. ‘소설’에는 대중들의 욕망이 투사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간 부분이다.

이어 ‘웹소설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개념과 기능의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융희 작가는 “웹소설의 기능에 관한 정의는 그간 문학 장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며 현대 웹소설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 이론의 틀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는 시장(자본주의), 미디어(매체이론), 이미지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읽게 되는 웹소설의 매체적 특성에 따른 내용으로 해석된다. 이날 강연에 언급된 ‘웹소설’과 ‘장르문학’은 별개의 개념으로 볼 수 있지만, 다수의 웹소설은 ‘장르’적 성향을 함께 띄고 있어 서로 교차하며 이야기가 이어졌다.

강연 중인 이융희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강연 중인 이융희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융희 작가는 ‘장르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일이 왜 어려우며 어째서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는지에 대해 입을 뗐다. 그에 따르면 기존의 문학에서는 ‘공통 화소’를 통해 서사를 전달하는 것을 ‘장르’의 특징으로 바라봤다. 단순히 빈칸에 꽃다발이 들어가면 ‘로맨스’라는 식으로 구분한 것이다. 

그러나 이융희 작가가 말하는 ‘장르’의 가장 큰 판단 기준은 ‘상호작용하는 이들의 반복 서사’다. ‘특정 화소(꽃다발)에 의해 장르가 만들어진다’는 게 기존의 접근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우리가 읽을 준비를 하는 과정’이 ‘장르’의 주요 특성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웹소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각 작품의 장르와 카테고리가 사전에 명시되어 독자가 취향껏 선택하기도 한다.

애초에 독자와 작가가 장르 자체를 규정하고 소설을 쓰고 읽어내려가기 시작한다면 빈칸에 ‘꽃다발’을 넣어 “남자가 여자에게 꽃다발을 주었다”는 문장을 만들더라도 추리소설이 될 수 있다. 이융희 작가는 이를 두고 “독해의 경제성에 맞춰 서로가 약속하는 것”이라며 “근대의 총체성이 아닌 독자에서 더 구체화 된 팬덤, 마니아 문화이자 키치 문화가 장르문학의 본질이다.”라고 전했다.

이융희 작가의 강연을 듣는 학생들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융희 작가의 강연을 듣는 학생들 [사진 = 김보관 기자]

‘장르문학’의 발달과 소비를 이야기할 때에는 컴퓨터의 보급과 전자, 통신의 발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의 등장 이전에 ‘장르문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르문학의 계보도를 그리다 보면 ‘사회와의 접촉 방식’이 눈에 띈다. 이융희 작가는 “장르문학이 그 시대에 어떤 기능을 했는지에 관한 객관적인 논의”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일제강점기 무협 소설은 절대적 가치로서의 ‘정(正)’을 이야기하며 의협심을 불태우는 데에 일조했다. 1910년, 20년대 추리·범죄물이 유행한 것도 당시 시대상을 통해 설명 가능하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이웃의 밭에서 과일 또는 작물을 따 먹는 ‘서리’라는 마을 공동체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며 대부분 지주는 일본인으로 바뀐다. 이 과정에서 ‘처벌’과 ‘법’을 주입하기 위해 저널리즘과 더불어 추리문학이나 범죄소설 소설이 더 빠르게 유입됐다.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느냐’를 기준으로 다양한 소설이 호출됐다.

강연 중인 이융희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강연 중인 이융희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독립 이후, 근현대, 군사독재, 민주화, 산업화의 흐름 아래에서도 줄곧 소설의 ‘사회 참여’가 중요했다. 그러다 컴퓨터가 등장하고 ‘용산’과 ‘세운상가’라는 공간이 대두되며 새로운 문화가 형성됐다. 

당시 국가에서 일본 등의 해외 콘텐츠 수입을 금지했으나 ‘용산’과 ‘세운상가’에서 은밀하게 해외 콘텐츠와 문화를 소비하는 얼리어답터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의 ‘유희문화’가 장르문학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 하나의 ‘놀이’로서 기존의 법칙 바깥에서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강연 중인 이융희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강연 중인 이융희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나아가 이융희 작가는 ‘장르문학’을 이른바 ‘장막 없는 욕망의 투사’로 규정했다. 최근 들어 1990년대 이전 존재하던 많은 명제가 사라졌다. 거대 서사나 이데올로기가 소실되고 자본주의가 떠오르며 욕망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졌다. 

그는 “제도권의 문학은 장막을 치고 인간이 욕망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멀찍이 관찰하거나 고백하는 방식을 취한다. 나의 욕망이나 타자의 욕망에 관해 대화하는 형식이다.”라며 “반면 장르문학은 욕망의 장막을 없앤다. ‘우리 모두 이런 욕망이 있지?’라는 질문에서 나아가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상상과 시도를 통해 환상을 내 것으로 가져온다.”라고 말했다.

제1회 영호남문학청년학교에 참여한 문학청년들 [사진 = 김보관 기자]
제1회 영호남문학청년학교에 참여한 문학청년들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융희 작가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귀여니’를 하나의 ‘사건’으로 주목하기도 했다. 1990년대 계도적, 계몽적인 청소년 소설의 영향 아래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로 소비하는 서사”로서 귀여니 소설이 큰 의미를 가진다는 주장이다. 이융희 작가는 “당시 1, 20대들이 소통하는 메신저, 채팅언어 등을 소설의 언어로 끌어와 대중 여성의 욕망과 환상을 투사했다는 점에서 귀여니 소설은 병리적 현상이 아닌 하나의 사건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귀여니’는 2000년대 초반 “그놈은 멋있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늑대의 유혹” 등 다수의 인터넷 소설로 인기를 끈 작가다. 몇몇 작품은 영화화로까지 이어졌다.

강연 중인 이융희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강연 중인 이융희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이후 인터넷 소설은 웹소설로 변하며 단편 연재, 빠른 호흡과 상상력 등의 ‘웹매체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스마트폰으로 웹소설을 읽는 행위는 언제 어디에서든 가능한 ‘접속’의 개념으로 독해를 바꾸었다. 이융희 작가는 “웹소설은 독서가 아니라 접속이다. 장시간 몰입해서 여행을 떠나는 시간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상업성과 문학성을 구분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라며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특정 시대의 제도권 문학이 재현 또는 충족하지 못했던 욕망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로 장르문학의 가치를 한 번 더 짚었다.

강연 중인 이융희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융희 작가는 끝으로 “스마트폰이라는 매체 때문에 더욱 가시화됐을 뿐 웹소설 작가의 숫자나 독자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며 그보다는 웹소설이나 장르문학을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해야 할지를 고민할 때라 정리했다.

작가는 “지금 왜 장르문학이 대두되는가? 어떤 매체를 통해? 어떤 기능과 가치를 주는가? 어떤 이들에게? 웹소설이나 장르문학을 어떻게 비평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이에 대한 총체적 해석이 필요한 시기라 밝혔다.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은 예정된 수업시간을 훌쩍 지나 문창과 학생들을 비롯한 문학청년들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웹소설이나 장르문학의 경우 다수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서는 수업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이융희 작가가 속한 ‘텍스트릿’의 “비주류 선언”이나 환상문학웹진 “거울” 등을 제외하면 웹소설 또는 장르문학의 비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매체나 문예지 또한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와 현실 사이의 괴리 앞에 수많은 과제가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인보호구역 정훈교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시인보호구역 정훈교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한편,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대구에서 개최된 “제1회 영호남문학청년학교”는 한국문화예술관광진흥원이 주최하고 뉴스페이퍼와 시인보호구역이 주관한 행사로 이융희 작가와 더불어 송재학, 백가흠, 문보영, 이기호 작가가 함께했다.

“제1회 영호남문학청년학교”는 영호남 간 문학 교류를 통해 역사적 갈등을 해소하고 나아가 지역 문학청년들에게 문학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에 일조했다. 행사에는 대구와 광주 지역의 문학청년 70여 명이 참여해 다채로운 문화와 경험을 공유했다.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