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아닌 자기 삶을 살면 되는 거야. 우린 그냥 쥐일 뿐이니까.”

“인간들은 정말 불쌍해. 먹기 위해 일하고, 또 일하기 위해 먹어야 하니 말이다.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하니,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지. 머리가 좋다고 잘난 척하지만 그 머리 덕에 개고생하며 사는 거지. 하하하.”
-전성희 글, 소윤경 그림 “난 쥐다” 중에서 엄마 쥐의 대사.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쥐의 해다. 쥐는 오래전부터 다산과 재물의 상징으로 인간과 가깝게 지내왔다. 현대에 들어 더럽거나 하찮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쥐의 해 경자년을 맞은 만큼 ‘쥐’와 관련한 작품 네 편을 선정해보았다. 

올해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여러분에게 일상 속 작은 여유가 될만한 동화부터 추리소설까지, 다양한 장르로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작품을 한데 모아 소개한다.

첫 번째 작품 “난 쥐다”는 제10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작 “거짓말 학교”를 집필한 전성희 작가가 쓰고 소윤경 작가가 그린 장편 분량의 어린이소설이다. 어린이소설이라고 섣불리 편견을 갖기엔 이르다. 쥐의 시점으로 쓰인 소설은 언뜻 보기에 동화와 같은 형식을 취하지만, 인간 세계 이면에 존재하는 디스토피아적 쥐 세계를 그리며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주인공 시궁쥐 ‘나루’와 그의 가족들은 쥐를 보고도 쫓아내거나 놀라지 않는 이상한 할머니의 집에서 함께 산다. 그러던 중, 식음을 전폐한 할머니가 정신병원으로 떠나고 그들은 떠날 곳을 찾아 헤매게 된다. ‘나루’는 쥐를 신으로 모시는 ‘카르니마타’ 사원을 꿈꾸다 우연히 ‘고리’ 아저씨를 만나고 쥐의 도시 ‘뉴토’에 관해 듣게 된다.

일하기 위해 꼬리마저 자르고 치솟는 집값과 먹이를 찾아 헤매는 ‘뉴토’ 속 쥐 사회는 우리에게 사뭇 친숙하다. 거대 자본의 힘과 분배의 불균형 아래 착취당하고 세뇌당한 쥐들은 ‘인간 세계에 가면 모두 먹이가 될 것’이라 믿고 쥐가 가진 본성을 거스른 채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난 쥐다!”
나루는 얼얼한 머리를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자식이 아니라 쥐의 자식이니까. 인간들이 뭐라 하는 그 말에 놀아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가고 싶으면 너나 가라.”
-전성희 글, 소윤경 그림 “난 쥐다” 중에서 엄마 쥐의 대사.

엄마 쥐와 ‘나루’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도달한다. ‘쥐’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험난한 세상을 이어가는 와중에 ‘진짜 나’는 무엇일까? 거대 가문 ‘파라 가문’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쥐들은 과연 어떤 변화를 마주하게 될까? 주인공 ‘뉴토’의 고민과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남 일 같지 않은 작중 스토리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음 작품인 “니임의 비밀”은 로버트 오브라이언의 동물 판타지 소설로 앞선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쥐들의 세상을 그려냈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이는 “니임의 비밀은” 아기자기한 동화처럼 시작해 SF 소설의 전형으로 진행된다. 앞부분의 다소 평범한 이야기를 지나면 자신들의 문명사회를 건설하는 주체적인 쥐들의 세계를 마주할 수 있다. 

매해 미국 아동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작가에게 수여되는 뉴베리상을 받은 해당 작품은 폐암에 걸린 아들 티모스를 위해 밖으로 나서는 프리비스 부인과 그가 만나게 되는 올빼미가 들려주는 시궁쥐들의 이야기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 '니임(NIMH)'의 한 실험실에서 탈출한 시궁쥐들은 인간처럼 글을 읽고 추론하며 늙지도 않는다. 지나친 과학 경쟁의 무모성과 인간의 이기를 고발한 “니임의 비밀”은 평범한 일상 속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며 다양한 생각을 안겨준다.

세 번째 작품 “쥐덫”은 쥐가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작품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1947년 영국의 메어리 여왕을 위해 쓴 ‘어린 쥐의 복수’라는 극을 원작으로 한 “쥐덪”은 1952년 11월 초연 이후 오늘날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연되어 역사상 최장기공연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와 있다.

부부 몰리와 가일즈가 운영하는 몽스웰 여관. 이곳에 묵는 이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수상하다. 여관의 손님은 보일 부인과 크리스토퍼 렌, 메트카프 소련과 파라나비치로 총 네 명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형사가 찾아온다. 트로터 형사는 이 호텔 안에 살인자가 있음을 공표한다. 런던에서 한 부인을 죽이고 온 살인자가 곧 누군가를 살해할 거라는 예측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보일 부인은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되고, 독자들은 저마다 괴상한 인물 중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여관은 폭설로 고립된 상태다. 뛰어난 구성과 치밀한 트릭을 사용하며 ‘범죄의 여왕’, ‘추리소설의 퍼스트레이디’ 등으로 불리는 아가사 크리스티만의 쫄깃한 연출을 통해 추리소설의 진면모를 발견하길 바란다.

마지막을 장식할 작품은 방정환의 “시골 쥐 서울 구경”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최고라는 말이 있다. 누구든 한 번쯤 어릴 적 ‘시골 쥐 서울 쥐’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많은 독자에게 익숙할 제목과는 달리 1920년대 거리 곳곳 낯선 서울을 엿볼 수 있는 재미는 덤이다.

“불은 무슨 불이야요. 서울 사람들은 으레 걸음걸이가 그렇지요. 서울서 사는 사람이 그렇게 시골서처럼 담배나 피워 물고 한가히 지내서야 살 수 있겠습니까. 굶어 죽지요. 저렇게 바쁘게 굴어도, 그래도 돈벌이를 못 하는 때가 많으니까요. 그리고 우선 전차, 마차, 자동차, 자전거가 저렇게 총알같이 왔다 갔다 하는데, 시골서처럼 한가히 굴다가는 당장에 치여 죽을 것 아닙니까?”
-방정환 글, 김동성 그림 “시골 쥐의 서울 구경” 중에서.

풍경은 달라졌어도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추운 겨울,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책 한 권의 여유 속에서 잠시 휴식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