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형 소설가 [사진 제공 = 문학사상]
윤이형 소설가 [사진 제공 = 문학사상]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 “러브 레플리카”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윤이형 소설가가 지난 2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붕대 감기>는 당분간 저의 마지막 단독 저서가 될 것 같다.”라며 작품 활동의 일시 중단을 알려왔다.

그는 “문단에서 더 이상 소설가 혹은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지 않기로 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어떤 이익이든 얻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는 심경을 밝히며 “소설로 독자들을 만나는 것은 저에게 정말 순수하게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더는 일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어 “이곳을 나아지게 해야 한다는 마음도 이제 그만 갖고 싶다. 이 시스템을 만든 분들, 멀리서 젊은 작가들 내려다보며 논평하고 평가하고 대견해하거나 일침 놓는 분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셨으면 하고 현장으로 와서 직접 무언가를 해보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이며 그간 지쳐온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윤이형 신작 “붕대 감기”

2005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검은 불가사리’가 당선되면서 데뷔한 윤이형 소설가는 그간 SF 요소와 가상의 세계를 도입해 현실의 고통을 감각적인 문장으로 그려왔다. 그는 제5회, 제6회 젊은작가상, 제5회 문지문학상, 2019년 제4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사태의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문학계 내 위계와 성차별적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달 출판사 작가정신에서 발표한 “붕대 감기”에서는 다양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며 그들의 갈등과 연대를 그렸다.

윤이형 소설가의 이번 발언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절필 선언” 또는 “활동 중단 선언”으로 보도했지만, 인스타그램을 통한 작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문단’이라는 시스템과 그 안의 부조리로 인한 누적된 피로감과 회의감으로 해석된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윤이형 소설가는 “문단에서 작가로 살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저는 다른 일을 알아보고, 하면서 열심히 계속 살게요”라고 전했다.

한편, 윤이형 소설가는 올 상반기 출판사 마음산책에서 짧은소설집을 낼 계획이었으나 취소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신작 “붕대 감기”의 북토크는 다음 달 12일과 19일로 예정되어 있으며 이는 별다른 차질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소식에 윤이형 소설가의 작품을 아끼던 많은 독자들은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잠시 쉬어도 된다”, “언젠가 다시 돌아와 주길 바란다.” 등의 목소리를 건네고 있다.

 

아이 혼자 키우기는 젊은 시절 이미 한 번 넘어본 산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젊은 특유의 회복력과 반드시 더 나은 날이 오리라는 대책 없이 질기고 바보스러운 기대, 그리고 어찌 됐든 이건 내가 선택한 쇳덩어리 같은 각오들이 하루의 틈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어 앞이 안 보이는 전쟁통에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걸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내겐 그런 게 없었다. 이런 것을 생존이나 생활이 아니라 삶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나는 일종의 숟가락 같은 것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휘청이는 몸에 위태롭게 아이를 얹고 낮에서 밤으로, 하루에서 다른 하루로 끝없이 옮겨놓을 뿐이었다.

-윤이형 소설가, ‘대니’, “2014년 제59회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에서.

 

* 2020년 02월 01일 추가.

하단은 윤이형 소설가의 입장문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윤이형입니다. 

저는 문학계에서 어떤 정의로운 일들을 하다가 지쳐서 그만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회자되는 것이 불편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한없이 수치스러운데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그만둡니다. 저의 인스타그램 친구분들에게 글을 그만 쓰려 한다는 개인적인 심정을 적은 것이 동의 없이 기사화가 되었고, 기자님들께서 취재 요청을 하셨는데 마음이 힘들어 제대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저의 활동 중단 이유에 대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기사가 나갔고, 추측성 기사들도 나오고 있어 마음이 불편해서 입장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받은 이상문학상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부당함과 불공정함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돌려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이미 상금을 받았고 그 상에 따라오는 부수적 이익들을 모두 받아 누렸습니다. 더불어 저작권 개념에 대한 인식 미비로 양도 문서에 사인을 했기 때문에 제 작품을 그 일에서 떼어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상에 대해 항의할 방법이 활동을 영구히 그만두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작년 1월 이상문학상 수상 통보를 받은 직후 저는 ‘대상 수락 및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 거기에는 작가는 작품의 저작권을 문학사상에 양도하고, 3년 뒤에 개인 작품집이나 단행본에 수록할 수 있지만 대상 수상 작품은 표제작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용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저작권’과 ‘출판권 및 배타적 발행권’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오랫동안 이상문학상 작품집 뒤에도 실려 있던 약관입니다. 그러나 저는 평소 그 상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았고 그때까지 문제의식이 없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만 온 문서이기 때문에 우수상 수상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날부터 이어지는 수상작품집 제작과정은 매우 급박하고 무리하게 몰아치듯 진행되었습니다. 당장 당일 내로 작가론과 작품론을 써줄 작가와 평론가를 제가 직접 섭외해 청탁을 해야 했습니다. 수상작품집이 1월 20일께에 발간되기 때문에 이 원고들의 마감기한은 겨우 10일 정도였으며, 저 자신은 며칠 내로 수상소감과 문학적 자서전을 쓰고 수상작을 퇴고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급박하게 진행되는 과정이 무리라고 느껴 진행 중 3번이나 이것은 무리라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저에게뿐 아니라 다른 원고를 써주실 분들에게도 무리한 일이라고요.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하지 말고 차라리 12월에 수상작을 결정해 작가에게 차분히 원고를 쓸 시간을 주든지, 아니면 수상작품집 발간을 2월로 늦춰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안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고 그렇게 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말만 반복해 돌아왔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어서 다들 그렇게 해 왔다고 했습니다. 

김금희 작가님께서 우수상 수상작 저작권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신 후 저는 뉴스를 보다가 문학사상사에 메일을 보내 해명과 사과를 부탁했습니다. 1월 10일, 문학사상 대표님으로부터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공식 입장을 준비 중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같은 날 저녁에 문학사상사의 전 직원분과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수상 수상자들의 저작권을 문학사상사에 묶어 놓는 부당한 조항은 지난 두 해만 적용되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문학사상사 회장님께서 그런 문서를 우수상 수상자들에게도 보내라고 강요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로부터 저작권을 풀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풀어주었고, 들어오지 않으면 그대로 3년 동안 개인 작품집에 수록할 수 없도록 묶어놓는 것으로 진행하고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판매 수익을 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대상 수상 이전에 이미 3번 우수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데 한 번도 그런 문서를 받아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직원 분께서, 부당하다는 생각에 자신과 직원들이 그것을 막을 수 있을 때는 막았고, 막지 못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런 문서가 작가들에게 보내졌다고 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 회사의 모든 일에 대해 일방적이고 폭압적인 방식으로 명령을 내리셔서 직원들이 모든 일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작가들이 문서를 받은 경우에는 저작권이 묶이고 받지 않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게 되는 임의적인 상황이 오랫동안 발생해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올해 뉴스에 보도된 것처럼 직원 한 사람의 실수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전 직원은 회장님과의 알력 끝에 지난해 퇴사를 하신 상태입니다. 

저는 이것이 명백하게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문학상과 같은 상의 운영을 회장님 한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못해 일관성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작가에게 저작권을 양도하는 문서를 ‘형식상으로’ 제시하고 이의가 들어올 때만 풀어주어서도 안 됩니다. 다른 수상작품집에 수록을 해야 하거나 개인 작품집 출간이 임박해 이의를 제기할 명분이 있는 작가에게만 풀어주고 그럴 수 없는 작가에게는 그러지 않는다면 공식 문서나 계약서는 대체 무슨 의의가 있습니까. 작가는 문학상 운영위원회에서 어떤 문서를 제시하면 일반적으로 그것이 정상적이고 문제가 없을 거라고 여기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나 상황을 잘 모르거나 정보가 없거나 처음 수상을 하게 된 신인작가에게는 항의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 나지 않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불공정하고 들쑥날쑥한 방식으로 우수상 저작권을 취급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저는 이런 부분을 적어 문학사상사 대표님께 다시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문제임을 알고 계신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직원의 실수라고 하신 것인지도 물었습니다. 상의 권위를 지키려 하지 마시고 우수상 수상자들에게 먼저 제대로 해명하고 사과하시라고도 썼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너무 괴로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제대로 된 대응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변명과 방어만 할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문학계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이 일이 연루된 작가들에게만 상처를 남길 뿐 절대 투명하게 해결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활동 중단을 결심하고 제게 있던 청탁들과 계약들을 취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치심과 자괴감을 견딜 수 없었고, 이제 더 이상 문학계에서 어떤 곳을 믿고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곳에서 우수상 작가들의 권리 침해가 일어났는데 저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거기에 일조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상황을 무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작가가 마음 놓고 어느 곳과 일을 하고 작품을 발표할 수 있습니까. 대체 무엇을, 어떤 인정과 평가를 신뢰할 수 있습니까. 

계약을 하고 일을 하거나 상을 받는 일에 부당함이 있을지 없을지 한 명의 작가가 어떻게 미리 예측할 수 있습니까. 왜 김금희 작가님을 비롯한 우수상 수상자분들은 일상에 방해를 받아가며 이렇게 힘든 문제제기를 하셔야 합니까? 저는 왜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며, 올해 대상 수상자분은 어째서 이런 상황을 감당해야 합니까? 작가가 미리 조금 더 조심해야 했습니까? 작가들이 불안하지 않게 상을 받고,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하지 못한 출판사의 책임이 먼저 아닌가요? 
지금까지 일을 해 오면서 저는 문학계에 지뢰처럼 깔려 있는 이와 같은 수많은 문제와 부패와 부조리들을 한 명의 작가가 제대로 다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인데 계속 부조리에 얽히게 됩니다. 성과를 기뻐하기는커녕 문제는 없는지 의심을 먼저 해야만 합니다. 저는 곡예를 하는 것처럼 마음 졸이고 두려워하면서 일을 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태인가요? 저는 더 이상 제가 무엇에 일조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부조리에, 범죄에, 권리 침해에 일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계약금, 선인세 혹은 상금을 받았기 때문에 대응할 방법이 없이 찜찜한 상태로 일을 계속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지금껏 문학계에서 어떤 문제를 제기했을 때 연루된 작가들의 피해가 제대로 보상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기시감과 환멸이 느껴집니다. 이런 일들은 지금껏 끝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싸우다 지치고 고통받고, 침묵을 강요받거나, 한계를 느껴 말없이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측은 제대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을 안전한 곳에서 지켜보면서 젊은 작가들이 싸우는 것을 관전하고 논평하는 문학계의 어른들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봉합되고 아무 일 없이 흘러갈 뿐입니다. 이런 제도와 관행들을 만들어놓은 것은 윗세대 문학인들인데 피해는 젊은 작가들만 보게 됩니다. 아무도 작가들의 상처에 대해 보상해주지 않습니다. 
문학계 전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학계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험에는 이런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불신이 한계치를 넘어간 상황입니다. 
저는 이런 환경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할 수 없습니다. 일하지 않는 것이 제 작품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를 그만둡니다. 
다른 작가들이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와 같은 선택을 하는 작가가 앞으로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작가들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수상을 무를 수 없기 때문에 저는 이 일에 일조한 책임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없습니다. 같은 이유로 지금껏 많은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의 활동을 영구히 중단했으니 조금은 말할 자격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전 직원 분과 다시 통화를 했는데요, 문학사상사 측에서 공식입장 발표를 최대한 늦추기로 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갈 것이라고 회장님께서는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문학사상사는 회장님 한 사람의 억압적인 명령에 따라 이상문학상을 자의적으로 운영한 것, 우수상 수상자들의 저작권을 불공정한 방식으로 빼앗은 것, 형식상의 계약서를 보내며 거래하듯 상을 수여해 작가들에게 부당한 상황을 만든 것, 그리고 이것이 직원의 실수라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고 상처받은 작가들과 독자들에게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상의 운영방식과 저작권 관련 방침을 개선해 정상적으로 운영할 것임을 약속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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