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SF와의 이상적 결합 돋보여

SF 어워드 사회자, 진행자, 수상자, 시상자 [사진 = 유승원 기자]
SF 어워드 사회자, 진행자, 수상자, 시상자 [사진 = 유승원 기자]

한국SF어워드운영위원회가 주관하고 국립과천과학관이 주최하는 SF어워드가 지난 1일 개최됐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참석인원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행사장은 가득 찼다. 

SF어워드는 한국을 대표하는 SF 상으로 국내 최초의 SF 작품 시상식이다. 웹툰으로는 김성민, 이기호 작가의 ‘나이트 런’. 영상으로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 장편 소설은 노희준 작가의 ‘깊은 바다 속 파랑’. 중·단편 소설 대상은 김보영 작가의 ‘얼마나 닮았는가’ 등 유수한 작가들과 감독들이 상을 받았다.

영상 부문의 대상은 신대용 감독의 ‘이브’였다. 독립 영화 ‘이브’의 주인공인 ‘이브’는 발명가 ‘공복남’이 만든 섹스봇이다. 하지만 미래에서 넘어온 ‘윤하담’으로 인해 미래에 인류를 멸망시킬 터미네이터라는 게 밝혀진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사이버다인’ 회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감독이 ‘터미네이터’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사를 맡은 ‘해밀픽쳐스’ 양정화 대표는 ‘단편 영화로서 시도해 볼 만한 설정과 아이디어, 영화적 재미까지 갖춘 작품.’이라는 평을 했다. 심대용 감독은 무대에 올라 “결국은 제가 보고 싶은 작품을 만들었을 뿐인데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 소감을 밝혔다. 

우수상으로는 김일현 감독의 ‘지옥문’, 김성훈 감독의 ‘킹덤 시즌1’이 받았다. ‘지옥문’은 애니메이션 장르로 사망 뒤 저승에서 억울하게 죗값을 받아야 하는 남자가 자신을 변호하는 스토리로 김일현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표현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킹덤 시즌1’은 조선 시대 배경의 좀비 아포칼립스물로 전염 루트, 좀비 습성 등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영상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큰 투자를 한 만큼 영상미 또한 뛰어나다.

총 심사평을 맡은 양정화 대표는 “예산 문제로 자주 등장하지 않던 SF 장편 영화나 드라마가 부산행, 엑시트 등을 통해 약진하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 더 좋은 작품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며 발전할 SF계의 미래를 조망했다.

윤필 작가(좌)와 재수 작가(우) [사진 = 유승원 기자]
윤필 작가(좌)와 재수 작가(우) [사진 = 유승원 기자]

웹툰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은 윤필, 재수 작가의 “다리 위 차차”로 웹툰 플랫폼 ‘저스툰’에서 17년 10월 29일부터 18년 12월 9일까지 연재되었다. 해당 작품은 다리에 배치된 자살 방지 로봇이 자살하러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철학적 주제를 건네 찬사를 받았다. 심사위원 노미영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잔잔하고 따뜻한 차차의 이야기에 보는 내내 감동이 있었다.”라는 평을 남겼다. 스토리를 맡은 윤필 작가는 멋쩍게 웃으며 “SF장르는 생소해서 어려웠지만, 재수라는 좋은 그림 작가를 만나 즐거웠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림 담당인 재수 작가는 “윤필 작가가 글로 보낸 콘티를 읽으며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라며 윤필 작가와의 캐미를 자랑했다.

우수상으로는 정지훈 작가의 ‘모기전쟁’, 천계영 작가의 ‘좋아하면 울리는’이 선정되었다. ‘모기전쟁’은 포식자가 된 모기와 식량이 된 인간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언뜻 보면 단순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작화, 연출, 캐릭터 등을 통해 독자들을 매료시킨 작품이다. 심사위원 박인하 교수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빠른 속도의 스크롤에 현란하게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를 언급하며 작품의 시원시원함을 높게 평가했다. 

‘좋아하면 울리는’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세상을 그려냈다. 박인하 교수는 이 작품의 배경 설정을 ‘인물들의 로맨스가 실현되는 세계임과 동시에 SF다운 사고실험이 계속되는 세계’라고 평가했다. 총 심사평은 노미영 작가가 맡았다. 그는 “전수 조사를 통해 추려진 SF웹툰이 한 해에만 총 70편인 것을 보며 놀랐다. 그중에서 재미, 연출, 장르의 적합성, 작화, 스토리, 주제의식 두루 살폈고 최종심의 열세 작품은 이를 모두 충족시킨 훌륭한 작품들”이라며 감탄했다.

엄선웅 문피아 미래전략실장 [사진 = 유승원 기자]
엄선웅 문피아 미래전략실장 [사진 = 유승원 기자]

웹소설 부문 대상은 글쟁이S 작가의 ‘사상 최강의 보안관’이었다. 문피아에서 연재된 이 작품은 폭넓게 SF적 요소들(안드로이드, 인공지능, 외계인 등)을 다뤘으며 디스토피아적 배경을 마치 실제 있는 곳처럼 표현한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은 ‘SF의 주제 대부분을 만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작품’, ‘모든 분야의 심사위원들에게 꼭 일독을 권했던 작품’ 등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글쟁이S 작가는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고 대리인 문피아 엄선웅 미래 전략 실장이 대신 소감을 발표했다. 그는 “요즘 모순이라는 소재로 새 글을 쓰기 위해 절에 들어갔는데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제게 생긴 것을 보고 시간과 장소가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떨리는 마음을 전했다.

우수상으로는 임이도 작가의 ‘나 혼자 천재 DNA’, 클로엘의 ‘내 안드로이드’가 받았다. ‘나 혼자 DNA’는 초능력을 지닌 제약회사 직원이 질병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작가의 거침없는 필력과 제약회사 직원인 작가의 경험에 의한 전문 지식으로 소설의 몰입감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내 안드로이드’는 안드로이드가 상용화된 시대에서 장애가 있는 여주인공이 남자 안드로이드를 들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안드로이드가 여러 명령을 거치며 점차 인간적인 면을 지니며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은 독자들의 재미를 한층 끌어낸다.

임성순 작가 [사진 = 유승원 기자]
임성순 작가 [사진 = 유승원 기자]

장편 소설 부문의 대상은 임성순 작가의 ‘우로보로스’가 받았다. ‘우로보로스’는 강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들의 풍경을 그렸다. 인공지능과 빅뱅 이론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노련하게 사용한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은 ‘치밀한 과학적 고증, 상상력과 주제의식, 짜임새 있는 서사와 품위 있게 제련된 문장 등 여러 요소가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며 입을 모아 칭찬했다. 임성순 작가는 수줍은 모습으로 “제가 쓴 소설 중에 가장 적은 독자가 읽은 책이라서 마음 한쪽에 빚이 있었는데 빚을 갚은 것 같다.”며 심사위원들과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우수상에는 문목하 작가의 ‘돌이킬 수 있는’, 박문영 작가의 ‘지상의 여자들’이 받았다. ‘돌이킬 수 있는’은 거대한 싱크홀이 생기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로 잘 짜인 플롯과 세밀한 묘사가 장점인 작품이다. ‘지상의 여자들’은 화내는 남자들이 사라지는 도시, 그곳에 사는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외계 존재가 일으키는 초자연적 현상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총 심사평을 맡은 이유미 기획자는 “많은 작가가 SF 요소를 거부감 없이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희에게 굉장히 고무적으로 다가왔다.”며 SF의 장래를 밝게 비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에 심사한 작품들 상당수가 과학 기술적인 토대 마련이 생략된 채로 상상 속에서만 답을 찾으려는 경향이 보였다.”며 아쉬워했다. 

심너울 작가 [사진 = 유승원 기자]
심너울 작가 [사진 = 유승원 기자]

중·단편 소설의 대상은 심너울 작가의 작품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에게 돌아갔다. 플레이어가 65,536번 점프를 하면 서버가 터지는 버그가 있고 그걸 발견하게 된 게임 회사 서버 개발자의 이야기다. 마치 매트릭스와 코스믹 호러를 섞은 듯한 기분을 들게 하는 이야기로 ‘SF 팬들이 가장 좋아할 작품이라는 점에 심사위원 모두 공감했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심너울 작가는 수상 자리에 꽃과 함께 ‘트리케라톱스’ 모형을 받은 그는 “우울증을 해소하기 위해 쓴 글이 이렇게 상까지 받게 되어 기쁘다.”라 소감을 밝혔다.

우수상으로는 김초엽 작가의 ‘나를 키우는 주인들은 너무 빨리 죽어버린다’, 구병모 작가의 ‘미러리즘’, 고호관 작가의 ‘아직은 끝이 아니야’가 받았다. ‘나를 키우는 주인들은 너무 빨리 죽어버린다’는 우주에 표류 되었던 여인이 늙어서 돌아와 있었던 일을 손녀에게 들려주는 내용이다. ‘아직은 끝이 아니야’는 출판사나 작가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던 ‘오타는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오타 자연 발생설’을 소재로 한 재난 스릴러이다. ‘미러리즘’은 생물학적으로 남자에서 여자가 되는 주사를 맞는 ‘주사기 테러’를 당해 여자가 된 주인공이 겪는 차별의 이야기다. 

심사위원 최지혜 편집장은 “페미니스트적인 교류가 굉장히 강하게 느껴졌다. 최종 본심에 올라온 네 작품 모두 주인공이 여성이다. 이걸 보면 페미니즘과 SF와의 결합이 굉장히 이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지금까지 상상력에만 치중했던 SF였다고 했다면 이제는 페미니즘의 정치적 질문을 함께 물어보려는 시대적 흐름의 한 부분이라 볼 수 있겠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제6회 SF어워드는 지난 회와는 다르게 웹소설 부문의 수상이 추가되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통계에 의하면 웹소설 시장은 불과 5~6년 만에 100억에서 4000억 원으로 40배 이상의 폭발적 성장을 했다. 변화하는 매체 시장에 발맞춰 웹소설 부문이 추가된 것을 보면서 내년 SF어워드에는 어떤 작가와 어떠한 작품이 나올지 기대된다.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