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열려! “블랙리스트 검증과 실행이 공무원의 의무인가?”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 이양구 극작가 [사진 = 김보관]

[뉴스페이퍼 = 김규용 기자] 5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해결과 관련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대법원이 김기춘, 조윤선 등 블랙리스트 주범들에 대한 직권남용죄를 다시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데 이의를 제기하는 자리였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주범에 대한 최종 처벌을 앞두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대법원은 김기춘, 조윤선 등이 유관 국가기관과 공무원들에게 행사한 직권남용 사실을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일부 재판단의 여지가 있다고 결정했다.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 정윤희 미술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긴급토론회 “블랙리스트 검증과 실행이 공무원의 의무인가?”는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등의 단체가 주관, 주최하였으며 정윤희 미술작가(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블랙위원회 위원장)가 사회와 여는 말을 진행했다.

대법원은 국가기관 및 공무원이 지원사업 명단을 송부한 행위와 공모사업 내용을 수시로 보고한 것을 ‘통상적인 일 관계에서 의무 있는 일’로 보았다. 이에 직권남용죄가 성립되지 않으며 블랙리스트 주범 김기춘이 퇴직한 2015년 2월 이후 발생한 일에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윤희 작가는 이 같은 판단에 대해 “국정농단이라는 국가폭력, 반헌법적인 특수한 상황에서 법리적 오해나 해석의 기준이 통상적일 수 있는지”를 반문하며 “과도한 형식주의, 곡해된 법 실증주의적 판결”이라 비판했다. 

강신하 블랙리스트 소송대리인단 단장 [사진 = 김보관 기자]

이번에 논쟁의 중심에 있는 ‘직권남용’과 관해서는 형법 제7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당 법령 제123조에 의하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강신하 블랙리스트 소송대리인단 단장은 “예술위·영진위·출판진흥원 소속 직원들이 공모사업의 보조금 신청자 명단을 문체부나 청와대에 보내야 할 직접적인 법령상의 근거가 없다.”며 “이러한 행위는 기관 사업에 대한 정당한 감독권 행사를 위한 게 아니라 정치적 성향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특정 대상자를 지원에서 배제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으로 위헌, 위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공무원은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를 의무가 없으므로 명단 송부 행위 등은 법령상의 ‘의무 없는 일’을 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 원심(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이 정당하다. 대법원이 재판단을 근거로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낸 것이 오히려 불합리적인 것이다.

더불어 “김기춘이 퇴임한 이후에 특정 대상자들에 대한 지원 배제가 멈추었다는 증거가 없”고 “실질적 영향력은 지속되었”기 때문에 최근 대법원의 판결에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강신하 단장은 또한 “예술위·영진위·출판진흥원 직원들은 인사와 예산, 정책집행까지도 결정할 수 있는 대통령과 그 비서실 직원들, 문체부 공무원의 관계에서 복종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으므로 강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다음 발제를 진행한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블랙리스트 사태는 ‘직권남용죄’가 아닌 ‘내란죄’로 다루어져야 한다며 몇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내란죄란 형법 제87조에 표기되어있는 것으로 “폭동에 의하여 국가의 존립과 헌법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 즉 국토를 참절(僣窃)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킴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를 말한다.

오동석 교수는 “블랙리스트 사건은 국토 참절을 넘어 국민을 참절했다. 참절은 어떤 국가의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여 그 국가의 주권 행사를 사실상 배제하고 국가의 존립, 안전을 침해하는 일이다.”라며 “국헌을 문란할 목적은 더욱 명확하다.”고 단언했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았고 헌법에 따라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적으로 전복, 기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블랙리스트 작성은 필연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그 사실 자체만으로 위협을 주는 측면이 있는 데다 국가기관 공무원들이 받는 강압 효과 및 정도가 증대”되므로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협박 행위”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그는 ‘문화예술계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를 인용하며 블랙리스트 사건은 ‘입헌민주주의 침해’, ‘민주적 기본질서의 부정’, ‘정책을 가장한 국가범죄’로 규정했다.

심용환 역사학자(역사N교육 연구소 소장)  [사진 = 김보관 기자]

마지막 발제를 맡은 심용환 역사학자(역사N교육 연구소 소장)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말로 운을 뗐다. 그는 ‘사법적극주의와 죄형법정주의라는 해묵은 갈등’, ‘공무 집행에 대한 극도의 소극적 판단’, ‘조사위원회의 활동과 이후 관련 주체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무관심’을 현 상황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심용환 소장은 “사법부가 그간 보여준 대부분의 판결이 보수적, 선별적이었으며 퇴행적, 최소주의적이기까지 했다.”고 기술했다. 더구나 “대부분의 국민은 이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으며 문화예술계에 국한된 이야기다. 법률 용어와 판결 논리의 낯섦 또한 논란이 퍼지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법부의 보수성, 사건에 대한 피로도, 국민적 무관심이 종합적으로 엮어진 모양새다.”라고 상황을 직시했다.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 홍예원 연극인 [사진 = 김보관 기자]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오성화 [사진 = 김보관 기자]

이후 토론회에서 역시 국민적 관심을 어떻게 돌이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함께 실제 블랙리스트 사태 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오갔다. 토론자로는 신은실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회원,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오성화, 이동민 독립기획자, 이양구 극작가, 홍예원 연극인 등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들이 함께했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해결을 위한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긴급토론회 “블랙리스트 검증과 실행이 공무원의 의무인가?”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오는 12일, 혜화역 인근의 예술가의집에서 “블랙리스트 그 이후, 문재인정부, 블랙리스트 적폐 청산 어디까지 왔나?”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린다. 사회를 맡은 정윤희 작가는 “문화예술계는 물론 적폐 청산에 뜻이 있는 국민들의 활발한 참여를 바란다.”며 더욱 많은 관심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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