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권리를 보호할 단체는 어디에”

김금희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올 초 이상문학상의 우수상 저작권 양도 논란으로 문학계가 떠들썩했다.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윤이형 소설가의 연이은 문제 제기와 함께 동료 작가들이 대거 ‘문학사상사 보이콧 운동’에 동참하며 창작물에 대한 정당한 권리 보호를 요청했다.

​이후 한국작가회의, 한국출판인회의, 대한출판문화협회 등의 입장문 발표에 이어 이상문학상 주최측인 문학사상사의 공식 사과문이 게재되며 논란은 수그러드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 같은 저작권 논란은 비단 이상문학상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중 인기동화 ‘구름빵’의 원작자 백희나 작가는 여전히 험난한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동화 ‘구름빵’은 8개국 수출, 50만 권이 넘는 판매를 기록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큰 인기를 끌어왔으나 막상 저작권자인 백희나 작가에게 돌아온 수익은 터무니없었다. ‘구름빵’은 다양한 2차, 3차 저작물로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의 성공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신인 작가였던 백희나 작가와 출판사가 체결한 출간계약이 ‘매절 계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맺은 조항에 따르면 출판사가 일정 금액을 원작자에게 지급한 후 저작물 이용 권한 일체를 가져가 추가수익 역시 작가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백희나 작가는 지난 2017년 출판사 한솔교육, 한솔수북, 강원정보문화진흥원과 디피에스(DPS) 등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금지 등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 1월 1심에서 패소한 데 이어 지난달 21일 항소심에서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2019년 저작권 법규 및 제도 개선 공청회 현장 [사진 = 뉴스페이퍼 DB]
2019년 저작권 법규 및 제도 개선 공청회 현장 [사진 = 뉴스페이퍼 DB]

뉴스페이퍼와의 통화에서 백희나 작가는 “재판에서는 계약서를 ‘당사자 간 합의’로 보고 문건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판결의 근거로 삼는다. 그런데 애초에 출판사와 작가의 관계, 즉 갑과 을이 동등한 관계에서 합의한 계약서가 아니었다.”라며 “신인의 경우 특히 모르는 게 문제인 데다 소문이 빠르고 인맥이 중요시되는 출판업계의 특성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특정 집단에서 의도적으로 악성 소문을 퍼뜨리면 모든 곳에서의 계약이 어려워지고 이는 생계와 이어진다.”라고 밝혔다.

​당시 신인이었던 백희나 작가가 한솔교육 측에 계약과 관련해 무언가 물어볼 때면 ‘어휴 이런 거까지?’, ‘모두 다 이렇게 해요.’ 등의 대답이 돌아오기 부지기수였다. 백희나 작가는 당시를 회상하며 “지나온 곳곳에 함정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솔교육은 작가의 창작이 한창 진행되고 나서야 계약서를 작성했으며 불공정한 조항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면 ‘다른 작가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2차 저작물과 관련한 작가의 권리는 말할 것도 없이 부서졌다. 백희나 작가는 “우연히 문구매장을 가서 내가 만든 창작물로 2차 창작된 문구류를 발견하거나 건너건너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의 제작 소식을 듣곤 했다. 수익 배분은 물론 사전에 안내를 받거나 상의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백희나 작가는 “무엇보다 내가 창작한 작품의 의미가 변질되고 왜곡되는 것이 가장 속상했다.”라며 “기존에 재창작 및 판매된 것에 대한 수익을 포기하고 추후 2차 창작물의 검수와 공정한 재계약만을 요구했으나, 이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실제로 한솔교육 측은 ‘구름빵 작가에게 저작권을 돌려주기로 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게재된 이후에도 꾸준히 시간을 끌며 작가에게 권리를 돌려주지 않았다. 백희나 작가는 “결국 저작권법의 틀 안에서 무언가 지켜지고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작가의 당연한 권리인 저작권을 되찾는 길이길 바란다.”는 이야기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어린이청소년작가연대 저작권위원장 임정자 작가 [사진 = 뉴스페이퍼 DB]

이러한 문제는 ‘구름빵’을 포함한 도서출판계 전반에 만연한 문제다. 작가의 저작권이 ‘타인의 손에 의해 갈리고 찢겨 팔려나가’는 작금의 세태는 그 시작을 찾기 힘들 만큼 오래도록 고착화되어왔다. 특히 2차 저작물의 제작이 용이한 어린이·청소년책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지난 10일 어린이청소년작가연대는 “저작재산권 양도 요구, 이상문학상만의 일인가!”라는 제목의 9개 단체 1,625명이 동의한 공동성명을 진행하고 밀크T 창작동화상, MBC창작동화대상, 제2회 목일신아동문학 등 여타 문학상의 불공정 조항을 고발했다. 또한,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입장문을 비판하며 “회원사들을 중심으로 조사를 하였으며, 그 결과 문학상 운영과 작품집 발간하는 과정에서 저작권과 관련된 문제가 있는 출판사는 없다.”라는 주장이 과연 사실인지를 반문했다.

​나아가 저작재산권 양도를 전제로 한 모든 문학상의 자진 폐지, 불공정 관행을 묵인하고 협력한 문체부의 사죄, 원고료 매절 지급을 빌미로 저작재산권 양도를 요구하는 출판계 불공정계약 관행 즉각 중단, 정부 차원에서의 창작권, 저작인격권, 저작재산권을 보호를 요구했다.

​백희나 작가가 공개한 2019년 12월 6일 구름빵 2심 재판에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제출한 의견서에 출협은 “항소심에서 1심의 판결 취지가 그대로 유지되기를 희망한다.”며 “원고(백희나 작가) 측의 주장대로 문제가 된 저작물들의 캐릭터를 원고인 작가에게 돌려준다면 출판사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이상문학상 사태 때 발표한 입장문과는 크게 상이한 주장으로 기존의 계약 관례에 따라 출판사의 이익을 우선시 둔 것으로 해석된다.

 

어린이청소년작가연대 저작권위원회 유영소 작가 [사진 = 뉴스페이퍼 DB]
어린이청소년작가연대 저작권위원회 유영소 작가 [사진 = 뉴스페이퍼 DB]

뉴스페이퍼와의 취재에서 어린이청소년작가연대 김하은 작가는 “주변을 둘러보면 저작권, 2차 저작물에 관련해 제대로 자기 권리를 받지 못한 경우가 상당수”라며 “특히 2차 저작물에 관련해서는 수익의 50% 이상을 출판사가 가져가는 계약서를 많이 쓴다. 계약 기한은 5년이나 자동 연장이 되는 형식이다.”라는 현실을 전했다.

​어린이청소년작가연대 저작권위원회 유영소 작가는 “이번 성명을 진행하면서 독자들의 공감과 분개를 느꼈다. 아이들에게 하는 이야기 희망적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을 아이들과 함께 읽는 것에 배신감을 느끼는 독자분들도 많았다.”는 이야기로 입을 열었다.

​유영소 작가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전집과 지식·정보책의 경우 특히 저작권이 출판사에 양도되는 경우가 심각하다.”며 “문체부의 시정명령이 내려온 이후 2차 저작물에 관한 선택 조항이 생겼으나 이는 표면적인 ‘선택 조항’일 뿐 모두 동의하지 않으면 계약이 무산된다.”고 밝혔다.

​현재 어린이청소년작가연대 저작권위원회는 자문하는 변호 단체를 갖고 저작권 교육, 상담과 토론회, 소송, 투쟁을 이어가는 등 활발하게 작가들을 돕고 있다. 그러나 “저작권법이 기업 위주인 데다 문체부 측에서 정작 주체가 되어야 하는 작가의 목소리보다는 유통·출판 관계자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있다.”는 게 어린이청소년작가연대 측의 입장이다.

​인터뷰 말미 유영소 작가는 “작가들이 불공정 관행을 이어지게 했다는 책임감과 자기반성 등을 가지는 듯하다. 작가들 자체가 저작권 인식이 부족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 단체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라며 “그러나 현재 당면한 문제들은 문학사상만의 일이 아니다. 어떤 단체나 작가든 거시적 시점에서 바라봐 주길 바란다. 문체부나 출협 역시 문제를 축소 시키지 않고 이 기회에 더 열린 관점에서 뜯어보고 고쳐나갔으면 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정우영 작가 [사진 = 뉴스페이퍼 DB]
정우영 작가 [사진 = 뉴스페이퍼 DB]

한편, 일각에서는 ‘작가들의 권리를 보호해줄 마땅한 단체가 없다.’는 주장 역시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작가회의 저작권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정우영 작가는 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그간 저작권위원회 내부에 법률자문위원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과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으나 의견 합일과 공론화에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운을 뗐다.

​그러나 차기 집행부부터는 “저작권위원회를 상임위로 강화하고 전문적인 법률 자문을 구해 작가들에게 보다 힘이 되고자 한다.”는 계획을 전했다. 한국작가회의 소속의 작가에 국한된 내용이 아니라 관련한 자문과 도움을 원하는 작가 누구든 연락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겠다는 설명이다.

​정우영 작가는 더불어 “표준계약서에서조차 출판권과 저작권을 하나의 계약서에 함께 명시하는데, 이는 잘못되었다.”라며 “출판권은 출판권대로, 저작권은 저작권대로 명확하게 명시해야 한다. 더욱 큰 틀에서는 저작권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작가와 독자들은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운동에 이어 #구름빵을작가에게돌려주세요 라는 내용의 해시태그 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초기 이상문학상에 관해 입을 연 윤이형 작가는 물론, 장은정 평론가,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 연대 모임 아가미 등의 단체 역시 부적절한 출판계의 관행 타파를 위해 목소리를 더했다. 향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출판인회의,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유관 단체와 업계의 조속한 대안 마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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