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문학관 관장으로서 삶, ‘세종시마루’를 꾸려가는 이야기

세종시에서 만난 이은봉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세종시에서 만난 이은봉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송진아 기자] 삭막한 요즘, 세종시와 대전에서 ‘시’를 매개로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시인이 있다. 재작년 강단에서 퇴직 후 고향인 세종시로 돌아온 이은봉 시인은 “고향의 문화예술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지금의 삶이 좋다.”며 환한 미소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2019년 9월 시집 “생활”을 발간한 이은봉 시인은 1984년 창작과비평 신작 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로 데뷔해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한 후 대전문학관 관장, 세종마루시낭독회 회장, 세종인문학연구소 소장, 한국문예창작학회 평의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은봉 시인은 “세종시에 사는 시인들이 ‘낭독회를 하자.’고 제안한 것을 바탕으로 세종마루시낭독회를 만들었다.”는 말로 운을 뗐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기왕이면 신작시 낭독회를 하자, 그것만 하면 재미없으니 짧은 스피치도 함께 하자. 최근의 생각, 읽은 책들을 나누며 생각의 끝을 맞춰보자.’ 등의 논의를 거쳐 지금의 세종마루시낭독회가 만들어졌음을 설명했다.

낭독회는 “세종시마루” 문예지 창간으로도 이어졌다. 세종문화재단에서 천만 원의 지원금 및 원고료를 받아 제작된 “세종시마루”는 창간호의 높은 성취 이후 3호 때부터 반연간지 정기간행물로 발간되고 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구매하고 읽을 수 있는 세종시의 문예지인 것이다. 이은봉 시인은 마오쩌둥이 강조한 ‘향상과 보급’을 언급하며 “모든 문화 예술 운동은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고 그다음이 널리 알리는 것이다. 널리 알리려면 상품 판매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세종시에서 만난 이은봉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세종시에서 만난 이은봉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한편, 대전문학관에서의 이은봉 관장은 대전시의 문인들을 서로 연결하고 문학적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술은 돈도 시간도 많이 드니 퇴직한 문인들 불러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며 “이외에도 직원들이 세운 기획을 검토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뛰어난 직원들이 상당 부분 도와주고 있다.”는 말로 근황을 전했다.

이은봉 시인 과거 ‘국회의원 출마 제안 거절’ 일화를 떠올리곤 “정치를 안 하길 잘했다.”고 웃어 보이기도 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을 돕다 정치계의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시인은 “당시 아내가 ‘책임질 테니 서울에서 같이 살자.’고 해서 상경하게 됐다. 지금과 같은 길을 걸어온 게 잘 됐다는 생각이다.”는 말을 덧붙였다.

세종시에서 만난 이은봉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세종시에서 만난 이은봉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문학을 통한 공동체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이은봉 시인은 “세종시마루도 일종의 공동체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모여 자기 과시나 자기 발견의 차원이 아닌 더욱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의식을 담아내는 시 공동체이자 문학 공동체다.”라는 말과 함께 다양한 공동체를 예시로 들기도 했다. 시인은 2019년 충남 보령시 봉성리 마을 사람들의 구술시집 “봉성리 사람들”을 엮은 때를 회상하며 ‘농촌의 새로운 공동체 운동’을 소개하는 동시에 이 역시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귀농한 이들의 ‘문학운동’이라고 명명했다.

과거 농경사회는 ‘마을 공동체’로서 공동 윤리나 도덕을 가지고 마을의 아이들을 같이 키워냈다. 이은봉 시인은 이를 ‘일종의 마을 복지’라며 “마을에서 굶는 이가 있으면 밥을 나눠주고 부자여도 삼시세끼 다 먹으면 미안해했다. 개인의식만큼 중요한 게 공동체 의식이던 시절이다.”라고 추억했다.

벌써 아침저녁으로는 쌀랑쌀랑 혀/ 벼 빌 때 다 되었다는 겨// 그란디 콤바인 읎어서 어떻게 혀/ 저기 상조마을 상근이 한티 부탁혀 봐/ 상근이는 바쁘다며 빼던디// 했날에는 다들 모여서랑/ 들밥 먹으며 함께 벼를 벴는디/ 아, 그때가 좋았는디
-“봉성리 사람들” 임건수의 ‘콤바인’ 중에서.

시집 “봉성리 사람들”과 “생활”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시집 “봉성리 사람들”과 “생활”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은봉 시인의 시집 “생활”의 표제작에서도 비슷한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은 “시가 다시 생활로 돌아와야 한다. 조작된 관념이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지혜와 발견, 깨달음이 필요하다. 시인들도 다시 오늘의 생활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라져 가는 농촌과 도시의 공동체를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은봉 시인은 “가짜 개인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사는 사람들이다. 깨어있는 개인은 당연히 함께 살 것을 생각해야한다.”고 첨언했다.

인삼주도 더덕주도 호박덩이도 함께 마르고 있는/ 우리집 거실 귀퉁이/ 고향을 떠난 지 도대체 얼마인가/ 농촌을 떠난 지 도대체 얼마인가/ 대도시 아파트에 살면서도 나와 아내는 여태껏 농촌을 떠나지 못 하고 있다 고향을 오가며 살고 있다.
-이은봉 시인 ‘생활’ 중에서.

그러나 시인은 우리가 ‘공동체’를 이야기할 때, 전체주의 공동체 즉 획일화 속에 합쳐지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 또한 놓치지 않았다. 이은봉 시인은 “의식 있고 깨어있는 개인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게 진짜 공동체”라며 “국가 제일주의는 문제가 있다. 개별 국가 구성원들이 자아를 실천하며 꿈을 이루며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좋은 곳이다.”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개인의식의 성장과 함께 타자를 배려하고 소중히 여기는 정신으로 개인이면서 항상 전체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은봉 시인은 최근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 줄어드는 끈끈함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면서도 과거 같은 목적을 위해 노력한 민주화운동 시대와 지금 시대는 다소 차이가 있음을 주지했다. 그는 “근래에는 삶의 형태가 바뀌면서 공동체 의식과 개인의식 모두 중요해졌다. 공동체에 개인이 말살되면 안 되고 깨어있는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부채밭’이라는 작은 밭을 가꾸며 말년을 보내고 있는 이은봉 시인은 앞서 나눈 많은 이야기를 몸소 실현해나가고 있다. 대전과 세종시를 아우르는 시인의 문학 공동체 활동과 이를 품은 따뜻한 시편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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