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가 건강해야 유통도 공급도 원활할 것... 지금의 상황은 동맥경화와 같아”

‘낭독서점시집’ 앞에서 공간을 안내하는 이민아 대표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규용 기자] 부산의 책방골목에 위치한 ‘낭독서점시집’은 문자 그대로 ‘시詩가 사는 집’이다. 시인인 동시에 ‘낭독서점시집’을 운영하는 이민아 대표는 “장애인, 할머니,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등의 주민들과 작가가 함께하는 서점”을 가꿔나가고 있다. 

인터뷰에 앞서 이민아 대표는 102명이 참여하고 있는 동네책방네트워크(이하 책방넷)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동네책방을 알리자는 취지의 프로젝트 ‘바이북 바이로컬’을 진행한 책방넷은 ‘책방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 ‘모종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사람’에게 지식을 공유하는 나눔터와 같다. 

이민아 대표는 “대기업은 정보를 독점하고 외부인을 철저히 이겨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곤 한다. 하지만, 책방넷은 특이한 구조를 띠고 있다.”며 “서로 경쟁해야 하는 대상임에도 조건 없는 정보 공유가 이뤄진다. 이때 조건은 딱 하나다. ‘버텨라.’”는 말을 덧붙였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버텨라’는 말이 조건일 만큼 동네책방, 지역서점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연 매출 3억 이하’라는 소상공인의 기준은 꿈만 같은 이야기다. ‘낭독서점시집’ 이민아 대표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대규모 서점은 동네책방을 다 모아도 하나를 이기기 힘들지만, 그들도 스스로 대기업이 아닌 ‘소상공인’이라고 칭한다. 값비싼 물건이 아닌 책을 판매한다는 이유에서다.”라며 “하지만 과자를 판매하는 농심을 두고 대기업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토로했다.

동네책방을 위협하는 것은 비단 대형서점뿐만이 아니다. 이민아 대표가 작년 1월부터 올해까지, ‘헌책방’ 또는 ‘책마을’이라는 단어로 지자체가 홍보, 육성하는 지역을 돌아다닌 결과 제대로 된 지원 체계가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기존에 몇십 년간 서점을 운영해 온 사람을 돕기보다는 인위적인 창업 지원을 통해 ‘서점업’에 관한 고민조차 없는 이들이 옵션처럼 책방을 넣어 지원을 받는 사례가 다수 있었던 것이다. 이민아 대표는 이를 ‘묻지마 창업 지원’이라 칭했다.

이러한 지원 사업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인터뷰를 진행한 장소인 보수동 책방골목의 ‘우리글방’ 주인과 같이 세계의 서점과 살롱을 다녀보며 책방 구성을 고민하고 소품 하나하나에도 이야기를 담고자 노력하는 책방지기의 노력을 간과한 데에 있다. ‘낭독서점시집’ 이민아 대표는 “자신이 하려는 사업에 서점업을 살짝 끼워 넣는 행위는 서점과 서적상의 이미지를 도구화하는 행위로 해석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헌책방 ‘우리글방’ 서가 중 일부 [사진 = 이민우 기자]

여기에 온라인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도 가세했다. 도서출판계의 상생을 앞세웠던 밀리의 서재는 지난해 말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 “어떡하죠? 지금 가는 서점에 이 책은 없을 텐데”라는 광고를 게재하며 논란이 된 바 있다. 이후 밀리의 서재 측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민아 대표는 해당 사례를 떠올리며 “그간 서점업에 종사한 사람들이 축척해 온 콘텐츠와 문화, 저력 등을 일축한 부분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어 “동네책방을 애호하는 이용자들은 없는 책을 찾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었다. 동네책방에 와서 책을 사 가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책방을 방문해서 서점주와의 소통과 대화, 현장의 경험을 통해 도서를 구매한다는 이야기다. 

일련의 과정은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어 ‘실패하지 않는 독자와 서점주의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서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만나 두 사람은 서로의 사정을 돌봐주고 새로운 문화 매체를 전달하는 등 더욱 폭넓게 교류한다. 실제로 이민아 대표는 서점을 찾는 손님들에게 인근의 좋은 밥집이나 찻집을 소개하거나 타지역 서점과의 연대를 통해 손님의 편의를 살펴주곤 했다.

부산의 동네책방 ‘낭독서점시집’의 이민아 대표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이와 같은 지점을 역이용한 일화도 있다. ‘졸업 전시를 앞둔 대학생’의 신분으로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은 한 손님에게 이웃 서점을 찾아 ‘문학과지성사’ 초판본 시집을 구해주고 본인의 서가 안 절판된 책을 꺼내준 이민아 대표는 후일 놀라운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대학생’인 줄만 알았던 손님은 예스24의 지점장이었으며 처음부터 모든 내용을 기획, 지점 개관 행사에 해당 도서들을 전시한 것이다. 전시된 도서는 추후 옥션에서 경매로 판매되어 이민아 대표가 거듭 강조했던 ‘다시 되팔지 않겠다’는 약속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

이민아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마지막까지 ‘학생들이 좋은 후원처를 구했구나.’하고 생각했다. 다시 되팔지 않는 대신 책을 도로 가져오면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기사를 보고도 학생들이라고 믿고 있다가 개관일 전시에 방문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책방지기의 선심을 악용해 의도적으로 신분을 속이고 자신의 이익만을 채운 지점장으로 인해 이민아 대표는 책방문도 열지 못한 채 오래 힘들어했다.

동네책방네트워크(이하 책방넷)의 ‘바이북 바이로컬’ 프로젝트 로고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한편, 불합리한 유통구조 및 과정, 큰 폭의 공급률 차이 등의 시스템적 지점 역시 동네책방의 생존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민아 대표가 책방을 시작할 때, 도서 유통 총판인 북센과 전화 연결을 하는 데에만 한참의 시간이 소요됐으며 이마저도 현금 거래, 반품 불가로 까다로운 조건이 뒤따랐다. 수십 번 전화를 돌려 연결한 다른 유통사들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래를 튼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됐다. 반품 불가의 조건 때문에 소량으로 주문한 도서가 다른 서점으로 가버리거나 누락되는 때가 잦았기 때문이다. 주문 접수, 배송 알림 이후에 미확보 도서에 대한 공지 없이 부분 취소가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라 책을 기다리던 손님을 돌려보내게 되는 일이 반복됐다. 유통사에 건의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본인이 알아서 확인해라’였다. 8번 같은 도서를 주문한 적도 있다. 

간신히 주문에 성공해도 찍힌 책이나 더러운 책이 도착해 손님에게 내보이기 곤란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민아 대표는 “복지관 납품용 도서 다량과 30권의 도서를 동시에 받아본 적도 있다. 이때 전자는 모서리 하나 안 틀어진 반면, 30권의 소량 주문 도서는 모두 모서리가 터져있었다.”라고 회상했다. 

독과점에 가까운 유통망 아래 지역서점, 동네책방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이 경우 다행히 출판사 차원에서 원만한 처리를 진행해 더 큰 손해를 보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다. 북센에 문의하면 ‘파손품을 모아서 반품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동네책방을 담당하는 직원이 오직 한 명인 탓에 여름철에는 ‘담당자 휴가 전에 주문하자’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이민아 대표는 “물류가 건강해야 유통도 공급도 원만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마치 동맥경화와 같다.”며 책을 열 번 주문해서 열다섯 권 받은 때를 상기했다. 배송이 지연되면 서점도 독자도 모두 기다리게 되어 곤란한 상황이 펼쳐지지만, 소규모 주문을 할 수밖에 없는 동네책방은 출판사 직거래를 하기에도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부산의 동네책방 ‘낭독서점시집’의 서가 중 일부 [사진 = 이민우 기자]

이민아 대표는 마지막으로 국가 제도의 미비를 꼬집었다. 2018년 도입된 지역서점 생활문화시설 인증 제도는 해당 심사를 거친 서점에 공적 거래 우선권이나 혜택을 주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그러나 한국서점조합연합회를 거쳐 ‘지역서점 인증제’가 도입되며 허점이 생겨났다. 

‘낭독서점시집’의 경우 매달 문화 행사를 진행하며 꼼꼼한 절차를 밟아 구청의 ‘생활문화시설 인증’을 받았으나 각급학교·교육행정기관 입찰을 위한 S2B(학교장터)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S2B에서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지역서점 인증’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때 ‘지역서점 인증’은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월회비를 납입하는 회원을 대상으로 한다. 

이민아 대표는 “공익성도 대표성도 없는 이익단체의 절차에 따라 지역서점을 인증하고, 공적 거래 우선권을 주는 행위는 말도 안 된다.”며 “도서정가제나 서점인증제 등에서 낭만화, 업적화 된 부분을 걷어내고 싶다.”는 부분을 확실시했다. 나아가 관리 주체를 명확히 하고 보다 체계적인 제도 구축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부산의 동네책방 ‘낭독서점시집’의 이민아 대표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인터뷰 말미 ‘‘동네책방’만의 특별함을 묻자 이민아 대표는 “책방은 서점주인과 책에 얽힌 이야기나 주제의식을 주체적으로 나누는 등 색다른 발견과 지적인 충족이 이뤄지는 장소”라며 “지역서점에서는 벽 없이 정보가 공유되며 동네 아이들의 커뮤니티 케어 또한 가능하다. 장소의 가변성과 유연성 덕분에 다양한 주제로 폭넓게 활용되곤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책을 이용해 바느질, 사진, 음식 등 여러 분야의 고급 정보를 교환하고 지역의 수요에 맞게 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무궁무진한 활약이 가능한 동네책방의 숨통이 트일 날을 위해 여전한 과제 해결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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