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연재 완주를 맞이해

연재 완주 소감을 말하는 이승하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Q. 안녕하세요, 이승하 선생님. 최근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65일 완주를 마치셨습니다. 매일 매일 1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시를 고르고 해설을 쓰는 일이 만만치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처음 이 연재를 기획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연재에 얽힌 비화를 들려주세요.

​2002년 3월에 『백년 뒤에 읽고 싶은 백 편의 시』라는 시 해설서를 낸 적이 있습니다. 10년 뒤인 2012년경에 속편 격의 책을 써서 제가 아는 몇몇 출판사에 원고를 메일로 보내며 출간을 타진했는데 다들 난색을 표했습니다. 그간 저작권법이 강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시의 전문이 책에 실리면 저작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편당 10만원씩, 그러니까 모든 시인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허락을 받아내야 하고, 1000만원을 선 지불해야지만 책을 낼 수 있다는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수고와 비용을 필자가 감당해야 한다는 출판사 대표의 말을 듣고는 책 출간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인터넷신문인 뉴스페이퍼 이민우 대표가 사석에서 이야기를 듣더니 독자들에게 시를 소개하는 공적인 목적으로 게재하시는 것은 저작권법상 문제가 없을 것이니 자기네 신문에 연재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 출범한 신문사인지라 원고료를 드릴 형편은 못 된다고 신문사의 사정을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즉석에서 흔쾌히 수락, 2019년 4월 15일에 처음으로 글이 실렸습니다. 송기원의 신춘문예 당선시 「회복기의 노래」(클릭)부터 시작되었죠.

 

Q. 365일간 ‘내 영혼을 움직인 시’를 연재하시며 처음 시작할 당시와 달라진 부분도 있을 듯합니다. 연재 중 유달리 힘들거나 특히 인상 깊은 점이 있으셨나요?

​애당초 책으로 내고자 한 원고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매일 하나씩 보내면 되겠구나 생각하고선 연재를 쉽게 생각했는데 어언 10년 전에 쓴 글이라 대상 시도 해묵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막 봉투를 뜯고 펴본 문예지와 시집의 시를 열독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체로 5권의 시집을 통독하면 1편을 건지게 됩니다. 그 시가 좋든 그렇지 않든 제가 느낀 바가 있어야지 해설을 쓸 수 있었습니다. 즉, 제 영혼에 어떤 울림을 전해준 시여야 할 말이 떠올랐기 때문에 그런 시를 골라내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연재가 시작된 이후에 시집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근 2,000권을 읽은 것 같습니다. 평일에는 시, 토요일에는 시조, 일요일에는 동시의 원칙을 지키느라 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시조집과 동시집을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종이신문이 아닌 인터넷신문이지만 본인의 시가 실리고 제가 쓴 해설이 붙여지면 시인들이 제게 연락을 해와 고맙다고 하는 것도 이 일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에 소개된 시인과 동료들 [사진 = 김보관 기자]
이날 행사는 입장 전 열 검사와 손 소독, 주소 및 연락처 수집 등 관련 사항을 철저히 준수해 진행되었음을 알립니다.

Q. 지난 주말 조촐한 자리를 통해 연재 종료를 맞이한 소회를 나누기도 했습니다만, 그간 ‘내 영혼을 움직인 시’를 읽어준 수많은 독자와 시인분들에게 지면을 통해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대부분의 독자는 시가 지나치게 난해하거나(혹은 현학적이거나), 지나치게 길거나, 운문이 아니라 산문조면 골치가 아파 기피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명한 출판사에서 낸 시집에 그런 시가 유독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소위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시집을 낸 후배시인이 시집을 보내주면 더욱 열심히, 읽고 또 읽습니다. 그런데 골치가 아프고 느낌이 없습니다. 결국 해설을 쓸 시를 골라내지 못하고 맙니다. 독자인 제게 문제가 있나 보다 하고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릅니다.

​그다지 널리 알려진 시인은 아닐지라도, 시로선 미흡한 구석이 있을지라도, 문학평론가라면 그 시의 좋은 면을 세상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집의 해설이 시보다 더 어려운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시집의 일부로서 그야말로 독자들을 위한 안내의 글이 되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스스로 고고한 경지에서 필봉을 휘두르는 시집 해설을 보면서 저는 친절한 안내자로서의 해설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행이 좋은 가이드 덕분에 더욱 재미있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쓰다 보니 종종 사사로운 잡담이 들어가기도 하고 정치적인 견해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해량해주어 종착역에 무사히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행사가 열린 인사식탁 앞마당, 새 순이 돋아난 나뭇가지 [사진 = 김보관 기자]

Q. 이번 문예지 봄호들을 쭉 읽다 보니 이승하 선생님 원고가 정말 많더라고요. 작년에는 ‘문예지 100주년 공동 심포지엄’에서 우리 문예지 100년사를 짚어주셨고, 올해는 구정 무렵에는 호주에 가서 교민 대상으로 보름 동안 강의도 하고 왔습니다. 중앙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기도 하고요. 이 무시무시한 일정을 버텨나가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서정시학』 『오늘의 문예비평』 『작가와 사회』 『문학사상』 『시문학』 『문학에스프리』 『포엠포엠』 『애지』 『시조21』 『모:든 시』…… 하하,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많았네요. 시는 안 쓰고 잡문만 쓰고 있었습니다. 술도 잘 못 하고 제가 놀 줄을 몰라서 그저 글이나 쓰다 보니……. 제 글쓰기의 비밀은 빨리 쓰고 그 글과 헤어진다는 것입니다. 마감 일자를 셈하며 시달리면 힘드니까 빨리 쓰고는 잊어버립니다. 위의 모든 계간지, 월간지 편집자들은 제 원고를 제일 먼저 받았을 겁니다.

 

책을 추천하는 이승하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Q. 저희끼리는 ‘이승하 선생님의 지하실에 글을 쓰는 요정들이 있다.’라거나 ‘이승하 선생님 1, 2, 3…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눴는데요. (웃음) 하루에 글을 몇 편이나 쓰시나요? 잠은 얼마나 주무시나요?

​몇 편을 쓰는지는 잘 모르겠고요, 그저 청탁을 못 이겨 억지로 쓰는 거지요. 잠은 적당히 자는 편인데, 비결이 있습니다. 저는 운전을 못 하기 때문에 학교의 셔틀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합니다. 학교에 갈 때 1시간, 올 때 1시간씩 버스 타고 자니까 좀 못 잔 날도 보충을 할 수 있지요. 요즘엔 지하철에서나 시내버스 안에서 졸기도 합니다.

Q. 상상하기 힘든 분량의 원고를 작성해오시며 여전히 ‘독수리 타법’을 이용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와 관련한 고충은 없으신가요?

​제가 컴퓨터 자판기를 처음 두드린 것은 1988년에 쌍용그룹에 입사했을 때였습니다. 신입사원인 제 책상 위에 컴퓨터가 놓였고 저는 문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양손의 장지만 갖고 톡톡톡톡 두드려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렇게만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 쓰는 것이 무척 느리고, 자연히 제 글에는 오타가 많이 납니다. 기자님께 부랴부랴 전화해서 오자를 고쳐달라고 한 적이 최소한 50번은 되었을 겁니다. 원고 쓸 때는 오자가 없었던 것 같은데 실리면 눈에 들어오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즉시 고쳐준 기자님께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이승하 시인의 신간을 소개하는 이근배 시인·대한민국예술원장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승하 시인의 신간을 소개하는 이근배 시인·대한민국예술원장 [사진 = 김보관 기자]

Q. 최근 신작 시집 『예수ㆍ폭력』과 개정판 시집 『뼈아픈 별을 찾아서』 또한 발간하셨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에 발표된 시편이지만, 함께 맞닿아 있는 부분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시집에 관해 차례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편히 덧붙여 주세요.

​『뼈아픈 별을 찾아서』는 제가 2001년에 낸 시집인데 재판을 찍겠다고 한 출판사가 갑자기 문을 닫는 바람에 절판되고 말았습니다. 그 시집 머리말에 “이 시집을 아버님께 바칩니다”라고 쓴, 저로서는 아주 의미 있는 시집인데 말입니다. 철없던 사춘기 시절의 일이었는데 아버지와 한집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네 번 가출하고 세 번 자살기도를 했으니 아버지와 심리적인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지요. 그래서 그 시집을 헌정했습니다. 아버지 작고 9주기에 맞춰 내면서 다시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그 시집은 ‘시간’, ‘공간’, ‘인간’이란 소제목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사실상의 주제는 가족입니다.

『예수ㆍ폭력』은 성당에 잘 안 나가는 사이비 신도로서 예수와 10년 동안 싸운 결과물입니다. 저의 대부님인 구상 시인이 영세 받는 날 선물로 주신 『나자렛 예수』를 닳도록 읽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신학자 에르네스뜨 르낭의 『예수의 생애』, 루돌프 슈낙켄부르크의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에밀 로드미히의 『예수의 전기』 등 십여 권의 책을 읽으면서 신 예수가 아닌 사람의 아들 예수를 만났습니다. 예수의 행적지인 예루살렘, 시나이반도, 골단고원은 지금 전화(戰火)로 얼룩져 있습니다. 예수와 마호메트가 남긴 말에는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중동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 요즘은 좀 조용한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수를, 신을 믿는 이스라엘 주민들의 집단폭력의 희생자로 간주하여 제목을 그렇게 붙여보았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앞세운 범죄행위에 지금까지 2000년 동안 수난을 겪고 있는 예수의 초상을 저는 그분의 ‘고뇌’에 초점을 맞춰 그려보려고 했습니다. 인간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온갖 살육을 아신다면 피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찬양받기를 거부하고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고 외치며 가슴을 치지 않겠습니까. 작년이 대부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서 이중섭과의 우정을 그린 희곡을 써 낭독공연도 했고 10년 넘게 써 온 시편을 정리해 이번에 시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Q. 지금도 충분히 바빠 보이시지만…(웃음) 그동안 이승하 선생님께서 걸어오신 행보로 미뤄보아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과 창작을 염두에 두고 계실 것으로 예상합니다. 향후 예정된 일정이나 계획, 또는 꼭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올해 책을 몇 권 더 내게 되었습니다. 대부님이 스승으로 모셨던 공초 오상순 평전과 윤동주의 생애와 시세계를 청소년용 전기로 쓴 책, 그리고 시조에 대해 쓴 450쪽의 문학평론집이 곧 나올 예정입니다. 한 해에 책 5권을 내는 것은 저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서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글도 남발하고 책도 남발하고. 꼭 하고 싶은 활동은 10년 넘게 해온 교도소 재소자들과 소년원의 아이들 교화 시치료 프로그램 소화에 좀 더 열정을 쏟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들 중 죄인 아닌 사람이 누가 있습니다. 그들은 성장환경이 불우했거나 운이 나빠서 혹은 무전유죄라서 담장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겠지요.

 

축하 공연을 맡은 싱어송라이터 김대중 [사진 = 김보관 기자]
이날 행사는 입장 전 열 검사와 손 소독, 주소 및 연락처 수집 등 관련 사항을 철저히 준수해 진행되었음을 알립니다.

Q. 이밖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말씀해주세요.

​매일 200자 원고지 10매 정도의 원고를 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원고도 쓸 것이 있어서 그 원고 완성에 시달리는 날들이 있었고, 강의도 해야 했고, 지방에 행사가 있어 내려가 하룻밤 자는 날도 있었습니다. 해외 문학 심포지엄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면서도 머릿속에는 펑크를 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아침에 실리지 않고 저녁에 실리거나 간혹 그다음 날 실릴 때도 있었는데 원고가 늦게 들어가서가 아니라 신문사 측의 사정 때문이었으니, 저는 42.195km를 어떻든 완주했습니다.

​그간 마음에 든 시가 있으면 ‘좋아요’를 눌러주며 응원을 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특히 시의 현장에서 창작을 하고 계신 시인 여러분의 해맑고 밝은 시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시 게재 이후에 고맙다며 연락을 해주신 몇 분 시인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를 잘 이겨내시고 좋은 시 계속해서 써주십시오. 여러분이 시를 쓰고 있는 한, 이 세상은 소돔성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국회의원 선거일이 오늘인데 좋은 시가 사랑받는 나라, 참된 시인이 존중받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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