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유쾌하고 가깝게 읽히길”

“보이스프린트” 책방 한켠 [사진 = 김보관 기자]
“보이스프린트” 책방 한켠 [사진 = 김보관 기자]

올가을 이지아, 정지우, 조동범 작가가 편집 동인으로 함께하는 문예단행본 “보이스프린트”가 시작된다. “보이스프린트”는 ‘작가의 목소리를 보다’라는 의미를 담은 문학 시리즈로 도마뱀 출판사에서 발간한다. 

작가에서부터 가수와 배우까지, 폭넓은 필진이 참여한 “보이스프린트” 제1호를 기다리며 도마뱀출판사 조동욱 대표와 편집 동인 이지아 시인, 조동범 시인을 만나보았다. 정지우 평론가는 부산에 사는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다.

세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새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지아 시인은 “문학계의 무겁고 딱딱한 질서를 깨고 즐겁고 재밌는 일을 해보기 위해 모였다.”며 “독자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란다. 두 달 정도 기획 후에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다.”는 이야기로 운을 뗐다.

“왜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과 좀 친해지고 싶어서…….”
“좋아. 그렇다면, 저 놀이터 보이죠? 구름사다리에 올라갈 수 있어요? 높이. 끝까지.”
도마뱀은 하겠다고 했다. 젠장 구름사다리는 얼마나 무서운가. 그 옆에 미끄럼틀은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꼬깔콘 친구와 밀크 쉐이크 녀석과 무 한 토막 여자애는 여유롭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신나서 휘파람도 불었다. 휘파람은 천재다. 휴, 떨렸다. 두려움을 이기고 우리 넷은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문장을 마시며 시작했다.

비매품으로 발간된 보이스프린트 0호의 머리말에는 이지아, 정지우, 조동범, 조동욱 네 사람이 모이게 된 배경이 동화처럼 묘사된다. 잔뜩 취해 시를 읽는 무 한 토막 여자애는 이지아 시인이고 ‘곱슬곱슬한 머리’로 묘사되는 도마뱀은 파마머리를 한 조동욱 대표다. 어느 날 “더이상 사람의 책을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한 도마뱀은 “새로운 책을 발명”하기로 결심한다. 이윽고 여러 능력을 보유한 주차금지 꼬깔콘을 닮은 친구를 불러들이고 밀크셰이크처럼 새하얀 바닷가 도시에 사는 자칭 ‘사랑의 천재’라는 녀석도 만난다. 

각각 통통 튀는 개성을 보유한 네 사람은 속전속결로 일을 진행한다. 희한하게도 어떤 논의건 큰 의견충돌 없이 모두 기쁘게 동조한다. “보이스프린트”의 꼬깔콘을 맡은 조동범 시인은 “나와 이지아 시인이 안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지우 평론가 역시 SNS로 교류하던 사이다. 문화평론을 하는 그의 역할은 우리 잡지의 성격에 딱 맞는다.”라며 “기존에 알음알음 알던 사이에서 진행한 게 아니라 최선의 캐릭터와 멤버들로 구성됐다.”고 웃어 보였다. 

보이스프린트 준비호 [사진 = 김보관 기자]
보이스프린트 준비호 [사진 = 김보관 기자]

흔히 생각하는 ‘문예지’가 아닌 ‘문예단행본’의 형식으로 출간되는 “보이스프린트”는 3개월 정도의 시효성을 가진 문예지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해서 독자에게 다가설 방법을 모색한다. 세 사람은 “작고 가벼운 디자인”으로 “잡지와 단행본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기존에 없던 스타일’의 책이 출간”될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도마뱀출판사 조동욱 대표는 “무겁고 두꺼운 에세이집이 아니라 좀 더 손쉽고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짧은 에세이 기반 도서를 염두에 뒀다.”고 전했다. “보이스프린트”에 수록되는 에세이는 200자 원고지 10매에서 15매 내외다. 조동욱 대표는 “짧은 글을 접하며 책 읽기가 부담스러운 분들도 편하게 접하면 좋겠다.”며 보이스프린트를 계기로 읽는 문화가 확산하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쳤다. 

이지아 시인은 “그동안의 에세이 방식을 탈피하고 다양한 독자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가고자 한다.”며 “딱딱하고 권위적인 글이나 지식을 요하는 내용은 최대한 배제했다.”고 했다. 이지아 시인이 바라는 “보이스프린트”는 마치 친한 친구처럼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제1호 필진인 백민석 소설가의 경우 새로운 장르인 ‘픽션에세이’를 수록한다. 나 역시 대화 방식을 빌려 드라마 대사나 광고 대사처럼 독자들에게 확 와닿을 수 있는 형식의 에세이를 구상 중이다.”라며 “각각의 작가들이 내는 목소리를 들으며 친구의 일기장을 펼쳐보는 듯한 재미를 느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총 16명의 필진이 참여한 “보이스프린트” 제1호에서는 여러 분야 예술가들의 신선한 시각도 엿볼 수 있다. 대세 배우인 김응수 배우와 크라잉넛 한경록,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 뮤지션 겸 북튜버 김겨울 작가 등 장르를 넘나드는 이들이 대거 등장할 예정이다.

이들이 준비한 “보이스프린트” 1호의 주제는 ‘탕진잼’이다. 이지아 시인이 떠올린 ‘흥청망청’이라는 키워드에서 시작한 ‘탕진잼’은 큰 집을 사거나 커다란 목표를 이루기 힘든 사회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이들을 향한 이야기다. 조동범 시인은 “언뜻 보기에는 재밌으면서도 요즘 세대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주제”라고 이야기했다.

‘흥청망청’이라고 해서 술에 거나하게 취한 모습이나 과소비를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이지아 시인은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행복한 순간에 발산하는 일”라고 표현했다 사랑하는 꿈이나 대상, 취미와 아이템 등에 투자함으로써 스트레스나 억압으로부터 탈출하는 즐거운 마음을 나타낸다는 설명이다. 20대 무렵 차곡차곡 용돈을 모아 사고 싶던 물건을 산 기억을 회상하던 이지아 시인은 “크건 작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꿈, 마음, 물건 등을 조금씩 이뤄나가는 과정과 그 소중함을 담으려 한다.”는 말로 “보이스프린트” 제1호 주제를 나타냈다.

최고령 필진인 김응수 배우도 이 같은 맥락에서 참여하게 됐다. 우연한 계기로 김응수 배우와 만나게 된 조동범 시인은 “젊은 시절 연극에 매진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온 선배가 전할 수 있는 목소리가 있다.”며 “크라잉넛 한경록 역시 데뷔 20여 년이 넘은 1세대 인디밴드이자 출발 주자로서 ‘탕진잼’을 말할 것”이라고 했다. 1호 필진으로는 앞서 이야기한 멤버와 더불어 허연 시인, 이병률 시인, 황인찬 시인, 문보영 시인, 정현우 시인, 이현호 시인, 백민석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김유담 소설가가 함께한다.

“보이스프린트”는 제1호 ‘탕진잼’ 이후에도 사랑, 애도, 덕후와 같은 친숙한 주제로 독자들을 찾아가게 된다. 이들은 더욱 많은 독자를 만나기 위해 SNS 계정 운영과 영상 매체를 활용하며 ‘보이스프린트 책방’도 운영할 계획이다. 종로에 있는 작은 책방은 독자와의 만남, 낭독회, 공간 대여 등을 통해 활발한 소통을 이어가게 된다. 

도마뱀출판사 조동욱 대표은 “필진뿐만 아니라 젊은 작가나 주민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선후배 문학인을 포함한 여러 사람이 어울리는 만남의 장이 형성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지아 시인 역시 “단순히 책을 내겠다는 것 이상의 즐거운 문학 활동”을 지향했다. 책을 계기로 독자와 작가들이 소통하며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종로는 많은 문학인이 사랑한 장소”인 만큼 “머무는 동안 좋은 추억을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말로 앞으로 이어질 “보이스프린트”의 걸음걸음을 그렸다.

 

* 보도 이후 “보이스프린트” 1호의 발행 준비 중 편집동인이었던 조동범 시인에 대한 성추행 폭로가 있었다. 문제를 인지한 도마뱀출판사 측은 조동범 시인을 편집동인에서 제외할 것과 그의 원고 철회를 진행했음을 알렸다. 현재 “보이스프린트”는 편집동인 체제를 중단하고 편집자와 기획자를 보강하여 투명하고 평등한 단체를 만들 것임을 전해왔다.

이에 뉴스페이퍼는 “ 보이스프린트” 필진이 조동범 시인과 관련한 2차적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해 사진 일부를 삭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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