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은 작가
송지은 작가 [본인 제공]

[뉴스페이퍼 = 이정현 에디터, 평론가] 모든 작가에게 첫 책은 특별하다. 첫 책에는 습작의 고민과 낯선 독자들에게 말을 거는 달뜸과 설렘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작가들의 첫 책을 다시 들춰보면 그들의 젊은 날의 고뇌와 데뷔한 시기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달되곤 한다. 그래서 매년 새해가 되면 각 신문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설과 시를 모아놓고 읽곤 한다. 신인 작가들의 첫 작품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은 간단한 감상을 메모해둔다. 일면식이 없어도 그들 중 누군가가 첫 책을 출간하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송지은 작가도 그 중 하나였다. 

소설집 『푸른 고양이』(푸른사상, 2020)는 송지은 작가의 첫 책이다. 201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알라의 궁전」이 당선되어 데뷔했으니 5년 만에 첫 소설집을 출간한 것이다. 수록된 7편의 소설들은 모두 궁지에 몰린 자들이 등장한다. 이런 식이다. 냉동고에 갇힌 외국인 노동자(「알라의 궁전」), 남편을 살해한 여자(「겨울바람」), 자진해서 캐비닛으로 들어가는 남자(「푸른 고양이」), 유학 자금이 끊긴 채 독일에 고립된 음대생(「동물의 사육제」). 폐쇄된 공간에 갇힌 이 인물들에게 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궁지에 몰린 인물들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지만, 그들은 자신이 왜 그런 상황에 던져졌는가를 납득할만한 답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씩 움직이면서 나아간다. ‘감금’의 알레고리에 내재된 의미는 대개 이렇다. 갇힌 다음에야 보이지 않던 것들과 돌이키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된다는 것. 춘천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작가의 경험과 기억은 소설 속 ‘감금’의 모티프와 어떤 방식으로 연루되었을까. 역에서 기다리던 작가는 자신의 음울한 소설과는 달리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동화작가가 꿈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동화구연대회가 유행이었거든요. 나가기만 하면 대상을 탔어요. 라디오에서 들은 동화를 스스로 리메이크(이것이 표절임을 나중에 알았죠)해서 실감나게 말하면 모두 좋아했죠.”

송지은 작가는 어린 시절 책과 라디오를 통해 알게 된 이야기를 각색해서 동화구연대회를 나간 경험을 말하면서 웃었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자연스럽게 국문과를 전공으로 택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문과에 가니까 월인천강지곡, 용비어천가 등을 필사시키고, 어려운 문학이론이나 통사론을 억지로 배웠어요.”

역설적으로 대학에 간 이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잊고 살게 되었다고 했다. 졸업 후 결혼하고 춘천으로 이주했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동화 작가를 꿈꿨던 대학생은 어느덧 50대가 되었다. 그녀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잊고 있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암중모색 그 자체였어요. 그야말로 무식하여 용감했다, 수준이었어요. 일 년 쯤 지났을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거의 매일 회의했어요. 글쓰기라는 욕망에 내 삶이 통째로 끌려 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 

소설집 『푸른 고양이』

작품 속 인물들이 유난히 가족관계에 영향을 받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하자 작가는 데뷔하기 전 가족과의 영별을 연달아 겪은 경험을 털어놨다. “등단 전 4년 동안 연달아서 가족을 잃었어요. 시아버님, 친정엄마 그리고 남매들 중 가장 친했던 여동생.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들 곁에 있어주고자 최선을 다했어요. 병간호에 대한 부담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글을 쓰지 못한다는 조급함이 컸죠. 마음을 가다듬느라 하늘을 수시로 올려 봤어요.” 여동생의 가디건을 걸치고 글을 썼던 기억과 어머니와 나눈 사소한 대화들을 얘기하면서 “가족은 글쓰기의 장애가 아니라 글쓰기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작가는 최근 작업실을 마련하고 그곳에 출퇴근을 하면서 중편소설과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중이라고 했다. 소설을 쓰는 작업은 곧 체력전이기도 하다. 작업을 하면서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작가는 덤덤한 표정으로 답했다.

“요즘 수정체의 탄성력이 심하게 감소되어 가까운 사물은 흐릿하게 보이는 반면 먼 것은 분명하고 또렷하게 보입니다. ‘생물학적 나이’가 주는 현상이잖아요. 그 영향이 큽니다. 눈앞의 것에 애면글면하지 말고 먼 것에, 가능하면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둬야할 때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누구를 만나도 성별이라거나 그의 피부, 주름 혹은 탄력 등등에 별 차이를 못 느껴요. 그런 외적인 것에 쏠리던 호기심이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니 관계가 깊어져요. 그런 현상은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과정으로 이어지죠. 단지 ‘신춘문예 최고령자 당선’이라든지 ‘늦깎이 신예작가’ 등등의 꼬리표를 달아주는 것을 볼 때는 씁쓸합니다.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 60년대 이전에 출생한 작가의 작품이 없는 것도 그렇고요. ‘등단 10년이 안 된’ 5,60년대 출신 작가들의 좋은 작품들도 많이 알고 있거든요.” 

작가는 ‘늦깍이 신예작가’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관행이 진부하다면서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의 『친구사이』라는 소설을 언급했다.

“그 소설을 아모스 오즈가 70세 즈음에 쓴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인습과 편견에서 그 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그 만큼 넓혀져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저도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지금 쓰고 있는 소설들에 대해서 묻자 작가는 “문학과 관련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읽고 재밌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는 중편 3편을 한 권의 책으로 묶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상황에서 한계에 치달은 인관관계’ 정도로만 말씀드릴게요. 이후로는 2년 전 써놓고 방치수준인 장편의 퇴고 작업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우리는 낮술을 마시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소설 얘기를 할 때 작가의 눈은 반짝였다. 이번에는 어떤 한계상황에 직면한 인물을 그릴 것이냐고 농담을 건네자 작가는 진지하게 답했다.

“중요한 것은 ‘막다른 지점에서 발견한 내면의 빛’입니다. 그것은 시작이고 비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왜 내몰렸는지에 대한 궁극의 이유는 그 자신 안에서 찾을 수 있으니까요. 교통사고를 당한 지인에게 들었는데요, 자동차가 전복되고 늑골이 골절된 상태에서 들리는 것은 자신의 심장박동소리뿐이었다고 했어요. 강렬한 간접경험이었어요. 한계상황에 부딪혀 멈춘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심장 소리, 그러니까 살아있다는 사실이잖아요. 제가 작중인물들을 한계 상황으로 내몬 이유는 그들에게 살아있는 진정한 심장박동소리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싶었던 거죠. 솔직히 그들은 나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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